광주 예술의 거리 - 새바람이 불다

예술의 거리, 한 건물에 ‘화가의 집’이란 문패가 걸렸다. 네 명의 작가가 입주해 있는 이곳에서는 2017년 시시때때로 오픈 스튜디오와 함께 드로잉 퍼포먼스가 열렸다.

정해영 작가는 화가의 집 2층에 갤러리를 만들었고 벽 하나를 사이로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갤러리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다채롭다. 각각의 다른 주제를 가진 그림들이 예술의 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예술의 거리에 예술가들이 있다고, 작업실이 있다고 말을 건다.

커튼을 젖히고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선다. 한 작가의 작업이라 생각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주제의 그림들이 맨 얼굴을 하고 그곳에 있다. 작가는 17회의 개인전을 하면서 매번 다른 주제의 전시를 진행했다는 설명을 곁들여준다.

여전히 진행 중인 실험정신과 예술 탐구
 

ⓒ정해영 작가


한국화일까 들여다보면 재료가 아크릴이다. 서양화구나 하고 들여다보면 캔버스가 아닌 배합지다. 내용은 한국화인데 형식은 현대적이다.

작가는 “먹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전통적 개념을 탈피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먹을 놓자 채색이 보였다고 할까, 물론 현재도 먹이 주는 농담의 느낌을 여전히 즐기지만 먹과 분채와 석채가 주는 질감과는 또 다른 손맛과 붓 맛을 한껏 누리고 있는 중이다.”고 설명을 해준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작가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멈추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바로 실험정신이다. 작가는 “젊은 날로 끝 맞혀야 했을 재료와 형식에 대한 실험을 매번 다른 느낌을 찾아 실험 중이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실험정신이야말로 현재의 작가를 있게 한 원동력일지 모른다.

심사임당의 초충도도 새로운 재해석을 한 작가는 나팔꽃과 달, 나팔꽃에 걸터앉은 한 마리의 잠자리로 ‘유희자연_소근소근’시리즈를 완성했다.

둥근 원 안의 연두 빛의 빛깔과 원 밖의 초록의 색감이 어울리며 신사임당의 초충도 못지않은 고상함을 드러낸다. 빛의 댓잎들은 무당벌레와 청개구리의 연출로 단조로움을 피했고, 색색의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들판의 둥실 뜬 달과 납작 엎드린 사마귀는 개망초와 함께 다시 한 번 보랏빛의 나팔꽃으로 피어난다.

또 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살았던 집의 문창살이다. 여기서 작가는 창 안에 있다. 그리고 밖을 바라보거나 고즈녁을 즐긴다.

창살 너머 피안의 세계가 있다. 가지 못한 길, 망설이다 끝내 놓쳐버린 길들이 창살 너머에서 경계로 출렁인다.

그저 바라보다 - 유희자연

먼 길을 돌아 여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화제는 자연에 가까운 사물들이며 작업을 하는 것은 일상이다. 자연에서 흔히 얻을 수 있는 사념, 들꽃, 나무, 조그만 곤충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어딘가의 목표점을 향해 날고 있는 종이비행기가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살았던 시골의 풍경, 내가 가지고 놀았던 곤충과 자연적인 사물들이 내 모든 작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했던 일이 둔덕 높은 언덕에 앉아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일이었고 비가 와 개울이 불어나면 종이배를 띄우는 일이었다.

좋았을 때도 괴롭고 슬펐을 때도 종이비행기를 접었고 날렸다. 종이배를 띄울 때마다 나도 그 배를 타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 지금이 아닌 더 멀리 미래로 가고만 싶었다.

닿아야할 목표점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날려 보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도 없이 접어 날렸던 종이비행기와 띄어 보낸 종이배가 언젠가부터 내 작업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해주었다.
 

정해영 작가.

작가는 “예술의 거리에 화가의 집과 더불어 갤러리를 열었지만 고민은 점점 깊어간다. 젊은 날의 연장선인 듯 여전히 재료와 형식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은 내가 과연 심연 깊은 곳에서 예술이란 우물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예술의 거리에 화가도 있고 화가의 작업실도 있음을 공고히 천명하면서도 과연 작가의 어깨에 앉아있는 먼지의 더께를 털어낼 수 있을 것인지 매 번 내가 나에게 묻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고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생각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종이비행기를 날렸고 종이배는 물살 위에 둥둥 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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