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그리고 자유

영웅 광장. ⓒ차노휘


며칠 전부터 잠에서 깨면 눈만 감은 채 누워 있다. 오래된 이중창 너머에서 들리는 차 굉음이 제법 크다. 이렇게 고요한 새벽에 누가 속도를 낼까. 짙게 안개 낀 도로를 질주하는 차.

기침이 내 몸 위에서 질주한다. 연신 기침을 해댄다. 밤이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것! 억지로 참아보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기한다. 이것도 지치면 제풀에 꺾일 것이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뇌를 흔드는 기침에 눈을 뜬다. 햇살이 창살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이렇게 화창한 날을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람을 동반하지 않은 겨울 햇살이다.

하늘이 내 몸 상태를 알고 도우는 걸까. 나는 밤새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잔 것을 잊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켠다. 산책 삼아 숙소에서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영웅 광장으로 향한다.

봄 같은 햇살을 만끽하며 보도블록을 걸었다. 이름 모를 오래된 건물들과 플라타너스, 행인과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분주한 오전을 열고 있다. 살아 숨을 쉬는 이 땅. 이 땅 위의 숨 쉬는 모든 생물들의 움직임. 내 몸은 감기로 꿈틀거리며 더욱 더 생명력을 자극한다. 크게 호흡한다.

길 건너에서 바라본 영웅 광장은 사진보다 더 장엄하다.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과 그것을 있게 해준 위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광장이다.

영웅 광장 가장 자리엔 마치 그리스 신전 같은 열주(列柱)로 이뤄진 구조물이 반원형으로 만들어져 왼쪽에 7명, 오른쪽에 7명 등 모두 14명의 청동 입상이 서 있다. 열주가 시작되는 왼쪽 위에는 노동과 재산, 전쟁의 상징물이, 오른쪽 끝나는 윗부분엔 평화, 명예와 영광을 나타내는 인물상이 있다.
 

영웅 광장의 코린트 양식의 밀레니엄 기념탑(Millenniumi Emlékm). ⓒ차노휘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중앙에 우뚝 선 코린트 양식의 밀레니엄 기념탑(Millenniumi Emlékm)이다. 높이 36m라고 했다. 기념비 위에는 민족 수호신인 왕관을 든 대천사 가브리엘이 있다.

가브리엘 상은 사람의 두 배 크기로 조각가 죄르지 절러(Gyorgy Zala)의 작품이다. 신의 가호를 바라는 마자르족의 염원이 담겨 있다. 절러는 이 작품으로 1900년에 열린 파리 세계 엑스포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가브리엘 천사는 오른손에 헝가리의 왕관을, 왼손에는 그리스도의 사도를 의미하는 십자가를 쥐고 있다. 이는 이슈트반 왕이 헝가리를 개종시켜 성모 마리아에게 바쳤다는 의미이다. 그 아래에는 헝가리 민족을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끌었던 아르파드를 비롯한 초기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서 있다.

사람들은 광장 초입에 세워진 <BUDAPEST>라는 글자 장식물에 모여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도 인증샷을 날리고는 서양 근대 미술관으로 향한다.

광장 양옆에는 서양 근대 미술관(Szépmüvészeti Múzeum)과 헝가리 작가들의 현대 작품을 볼 수 있는 현대 미술 전시관이 있다. 서양 근대 미술관에는 엘 그레코, 라파엘로, 루벤스, 고흐,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로댕 등 유럽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스페인 회화 전시실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페인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만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날, 감기 기운이 있으니 실외보다는 실내가 낫겠지 싶었다. 하지만 미술관으로 향하려던 나는 주춤한다. 월요일이다. 모든 미술관이 문을 닫는 날이다.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 미술관에서 내내 시간을 보내면 아까울 것 같았다. 나는 광장 뒤쪽의 시민공원으로 향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시민공원에 안익태 선생 동상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안익태 선생 동상도 궁금했지만 바이다후냐드 성(Vájdahunyad Vár)을 배경으로 마련된 스케이트장에서의 활기가 아까부터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 성은 루마니아의 귀족이었던 바이다후냐드의 성을 모방해서 지은 것으로 현재는 농기구를 전시하고 있는 농업 박물관이다.

내가 스케이트를 타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활기찬 움직임만으로도 내 몸에 활기가 넘쳤다. 그들을 한참 내려다보다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바이다후냐드 성과 반대방향으로 잡았다. 그곳에 인공호수가 있었다.
 

바이다후냐드 성(Vájdahunyad Vár)을 배경으로 마련된 스케이트장. ⓒ차노휘


인공호수를 지나 화장실을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릴 때 내 눈에 안익태 선생 흉상이 눈에 들어왔다. 흉상 좌우에는 한글, 영어, 헝가리어로 선생의 약력 등이 새겨져 있었다.

서울시와 한국·헝가리 친선협회가 한국·헝가리 수교 20주년을 맞아 3만 달러를 들여 제작해 2012년 5월 11일 제막했다고 한다.

안익태 선생과 헝가리와의 인연은 1936년 부다페스트 교향악단의 객원지휘자로 유럽 무대에 데뷔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수년 간 부다페스트의 명문 음악대학인 ‘리스트 페렌츠’에서 수학하며 당시 헝가리 민요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음악가 졸탄 코다이(Zoltán Kodály)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안익태 선생의 흉상이 이곳 시민공원에 세워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당초 모교인 리스트 페렌츠에 세워질 예정으로 착공식까지 마쳤지만 학교 측의 반대로 이곳으로 옮겨왔다.

세계 3대 음악학교 중 하나인 리스트 음대에 쟁쟁한 헝가리 음악가도 동상을 세우기 어려운데 외국인의 흉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갑자기 부다페스트 공과대학교 메인홀에 있던 수십 명의 흉상들이 떠올랐다.

학교를 빛낸 세계적인 과학자와 노벨상을 받은 위인들이었다. 그들의 자존심을 읽을 만 했다. 한편에서는 인적이 뜸한 학교 기숙사 정원보다는 오히려 열린 공간인 시민공원이 많은 사람들이 오며가며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케이트장에 몰려 있었고 몇 사람은 인공호수 근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외로운 안익태 선생과 나뿐이었다.
 

영웅 광장의 안익태 동상. ⓒ차노휘


어느 날 K가 내게 말했다. “친일은 친일이이지만 문학적 성과는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니?” 친일 행적 작가 기념 문학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가 불쑥 내뱉은 말이다.

요즘 나는 확답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생각이 많아져서인 듯한데, 어떤 시각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 있어서이다. 답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것을 매번 깨닫는다. 그때도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지금, 그 답을 강요받고 있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가 변절자 천재를 만들기도 한다. 아리랑 등이 수록된 한국 환상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일본의 눈치를 살폈던 그. 나중에 친일 행적이 드러나 친일파 명단에 오른다.

공과 사는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여론뿐만 아니라 친일에 따른 과오는 분명히 명확히 해야겠으나 그의 음악적 재능이나 업적까지 함께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여론도 있다. 그는 만주국 국가를 편곡 지휘했고 그 전에는 일제 천황을 칭송하는 찬가 텍스트를 편곡했다.

천황을 칭송하는 텍스트는 그가 일본 음대 재학시절의 텍스트였다(공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만주국 국가 문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관계가 있다. 그는 확실히 친일을 했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그가 만든 애국가가 여전히 대한민국 국가로 불리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친일 논란은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하지 않은 역사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리되지 않은 역사는 계속해서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위안부 소녀상 철거 문제도 그 한줄기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기득권 세력에는 그때의 친일파와 궤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꾸 미뤄지는 것이다. 어쩌면 영영 정리를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술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심지어 행동하게까지 한다. 예술을, 나는 아름다운 권력이라고 달리 부르고 싶다. 그 권력이 목적성을 가지면 그 결과는 추해진다.

가끔 나는 바그너를 생각한다. 그의 작품 중 탄호이저 서곡을 들을 때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반유대 사상의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더욱이 히틀러가 그를 높이 평가해 가스실로 유대인이 끌려갈 때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틀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안 뒤부터 나는, 그 음악을 들을 때면 가스실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은 ‘위증’일 수가 없다. 마음이 담긴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작품세계에는 여러 색깔이 있을 수 있다. 나이나 환경에 따라 사람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품과 그 작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선도 매력적이지만 악이라는 것도 매력적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체니 온천. ⓒ차노휘
동물원 입구. ⓒ차노휘


나는 착잡한 감정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그의 흉상을 일별하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내 눈에 이국적인 풍경이 잡혔다. 바위산 위에 독수리가 앉아있는 형상이었다. 그게 뭔지 보고 싶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세체니 온천을 지나, 좀 전에 봤던 바위산(?)이 보이는 곳으로 가까이 갔다. 도로를 건너 거의 담장 앞에 왔을 때에야 그곳이 동물원이라는 것을 안다. 동물원 담장을 따라 매표소가 있는 정문까지 갔다.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늘 그렇듯 동물원이라는 자체가 싫다. 어떤 권한으로 동물을 구속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한국의 동물원에 비해 좀 더 환경친화적일까, 라는 생각으로 담장을 따라 왔지만 일부러 돈을 내고까지 감금된 그들을 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동물원을 등지고 호수 의자에 앉았다. 먼 풍경은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여전히 보이고 옆 의자에서는 젊은 청소부 아가씨가 부지런히 휴대폰을 보고 있다. 나는 다리에 힘을 풀고 어깨를 낮췄다. 나른한 졸음이 밀려왔다. 한숨 낮잠을 자도 괜찮은 날씨였고 풍경이었다.

어제 길을 무작정 걷다가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자유의 광장(Liberty Square)에 발길이 닿았다. 그곳이 특이했던 것은 기념상 아래에 개인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찬찬히 둘러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광장은 나치 독일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당한 헝가리(유대인)인을 묘사하는 부다페스트 홀로코스트 기념 동상이었다. 1943년 독일의 헝가리 침공 70주년을 잊지 않기 위해 2010년 세웠다.

나치 독일의 상징인 새가 헝가리의 상징인 대천사 가브리엘을 공격하는 모습이다. 그 앞에 전시된 개인 물건들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전시였다.
 

자유 광장 홀로코스트 기념 동상. ⓒ차노휘
홀로코스트 기념 동상 앞 개인물품 전시. ⓒ차노휘


헝가리 사람들, 유대인들은 이곳에 개인물품을 가져다 놓았다. 기념상이 설립되고 얼마 후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기념비 앞에 작은 돌도 놓기 시작했다.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 꽃과 양초, 안경, 신발 등. 작은 개인 물건들과 사진 등이 기념상 앞길에 늘어서서 관광객들과 시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헝가리 정부의 태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독일과 동맹을 맺고 유대인을 최종 추방하고 대량학살 자리를 마련한 것이 헝가리 정부라고 주장한다. 헝가리 당국이 기념상을 만듦으로써 유대인들이 나치 죽음의 수용소로 추방당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을 스스로 면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위조하지 말고 국가 수준의 헝가리 대학살을 인정하라는 이들의 소극적인 외침인 셈이다.

물론 반대편 입장도 있다. 헝가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나치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대부분의 영토를 잃었던 헝가리는 2차 세계 대전에서 영토 회복을 약속했던 나치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광장 소비에트 기념비. ⓒ차노휘
로널드 윌슨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상. ⓒ차노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2차 세계대전 때에 헝가리를 점령했던 나치군을 물리친 소비에트 지원군에 감사를 표하는 기념비가 나온다. 그곳에서 2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유럽을 또 한 번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은 냉전 과정에서 헝가리의 스탈린 세력을 몰아낸 미국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자유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독일, 러시아와 미국의 과거가 버젓이 공존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시공간이다. 레이건 동상 너머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비둘기 떼가 낮게 날면서 호수 위를 한 바퀴 돈다. 호수 수면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설마? 호기심에 나는 일어나서 물속에 손을 넣는다. 따뜻하다. 부다페스트에는 온천만 1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이곳은 온천호수였다. 그래서 졸릴 정도로 공기에 온기가 묻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따뜻한 호수 너머 스케이트를 타는 무리들과 웅장한 섬, 푸른 하늘과 구름을 만지듯 봤다.

그리고 호수 주변에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은 지금 시대의 저 연인들은 알고 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저리 푸른 웃음을 나누며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의 아름다움을.
 

시민 공원 온천 호수. ⓒ차노휘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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