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 그대, 올라오면서 보았는가?

“선암사는 봄이 제일 아름답지요?” 하고 스님에게 말했더니, “사시사철 언제나 그렇지요.” 한다. 고목에 매화필 때, 가끔 찾아가는 사람과 늘 거기 사는 사람의 차이가 그렇다. 가는 사람은 때가 있지만, 사는 사람은 때가 없다. 사랑과 삶이 그렇고, 추석에 만난 고향 집의 모자(母子)가 그러했겠다. 

맞아도 좋을 만큼, 가을비가 내린다. 산사는 비에 젖어 가을 색이 더 짙다. 은행나무가 손을 뻗듯이, 늙은 기와지붕 위로 노란 가지를 내밀고 있다. 산벚나무는 단풍보다 먼저 빨갛게 물들었다. 

불조전 앞에는 금목서가 지고, 은목서가 피었다. 은목서 향기는 앞뜰에 가득하고, 차꽃 향기는 뒤뜰에 가득하다. 구절초, 쑥부쟁이 같은 풀꽃들이 돌담, 무릎 아래 올망졸망 피었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이므로, 가지는 잎으로 가는 물길을 끊어 낙엽이 되게 하고, 서둘러 수정을 끝내야 하는 가을꽃은 짙은 향기로 나비를 부른다.

‘바람의 색깔/어지럽게 심어진/뜨락의 가을’
 

ⓒ월간 불광 제공


꽃이 바람의 색(色)이라는 바쇼의 하이쿠는 시간이 멈춘 선암사의 뜰과 같다. 고개를 둘러 어디를 봐도 집과 돌과 꽃과 문과 못이 어우러진 풍경은 느리고 은은하다. 

선암사는 곱게 늙은 자연 미인이다. 코가 너무 높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성형미인처럼, 불사라는 이름으로 시멘트 기둥에 나무 색을 칠하고, 머리에 팔작지붕을 얹은 요상한 건물들이 절을 점령하고 있는 시대에, 한 세기 전의 온전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조계종과 태고종의 오랜 분규로 선암사의 관리권이 순천시로 넘어가 있었던 동안, 부서지고 허물어진 곳을 고치는 일들만 허락되고, 대대적인 불사가 이뤄지지 않은 덕분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서 선암사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쪽에 전삼무(前三無), 뒤쪽에 후삼무(後三無)해서 여섯이 없다. 일주문을 지나면 어느 절에나 있는 해탈문과 사천왕문이 없다.

어간이 높게 만들어져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정면 출입구가 없다. 그리고 대웅전 배흘림기둥에 달아놓는 주련이 없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선암사에서 가장 멋진 조선시대 건축물, 원통전 안에 대들보가 없다.

 지금도 ‘호남제일선원’이라고 현판이 붙어 있는 달마전 근처에 선방 일곱 채가 있었는데, 해제 결제가 따로 없이 정진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찻물 끓이는 다로(茶爐)에 불 꺼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월간 불광 제공


없는 것이 많은 반면에 많이 있는 것도 있으니, 그것이 연못이다. 북쪽 차밭에서 내려오면서 보면, 장경각과 원통전 사이에 연못이 하나 있다. 또 삼성각 계단 왼쪽으로 200년 동안 비스듬히 누워 있는 적송 옆에 작은 연못 방지(方池)가 있다. 

조금 아래, 설선당 서쪽으로 정사각형 두 개, 쌍지(雙池)가 있다. 그 왼쪽 창파당 앞에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공양간으로 쓰는 적묵당을 지으면서 메워졌다. 뒷간과 일주문 사이에 있던 연못 두 개는 성보박물관이 들어서면서 하나가 메워졌고, 앞쪽 것 하나가 남아 있다. 

그리고 일주문을 벗어나 조금 내려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 중의 하나인 삼인당(三印塘)이 있다. 연못이 많은 이유는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지세 때문이라고 한다. 

선암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원년(742) 도선 국사 창건(혹은 백제 성왕 7년 아도화상 창건설) 이래 수많은 화재가 일어났고, 임진왜란, 정유재란, 여순항쟁, 한국전쟁 같은 고비 고비마다 소실(燒失)과 재건(再建)을 반복하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월간 불광 제공


영조 35년 큰 화재를 당한 뒤 재건하여 아예 산사 이름을 ‘청량산(淸凉山) 해천사(海川寺)’로 바꿨는데, 순조 23년 또다시 큰불이 나서, 이름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일주문 앞에 ‘선암사’, 뒤에 ‘해천사’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저녁공양 후 장엄한 예불이 끝나고, 총무소임을 맡고 있는 승범 스님과 차를 나눴다. 나는 가장 궁금한 것이 있었다.

“승려에게 딱 하나를 금(禁)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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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교는 금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신부는 금혼(禁婚), 목사는 금주(禁酒) 한다면, 스님은 거기에 금육(禁肉)이 추가된다. 혼인하여 처자식이 생기면 부양해야 하고, 돈이 들어가고, 욕심이 생기고, 그것은 결국 수행에 방해 요소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방해가 안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합니다. 비구대처가 공존했고, 이판사판(理判事判)이 공생했던 근대 불교사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정직성입니다."

"승려로서 금해야 할 진짜 한 가지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나를 속이면, 남을 속이고, 결국 다 속이는 거지요. 승려도 때에 따라서 술 마시고 고기 먹을 수 있다고 봐요. 된장국 먹으면서 멸치를 골라낼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몰래 먹는 것은 안 됩니다. 금주라는 간판 뒤에 숨어서 마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대처(帶妻)와 은처(隱妻)는 차원이 다른 거예요.”

말이 화살이다. 동진 출가한 비구승답게 칼칼하고, 뚝뚝 부러진다. 선암사는 태고 보우 국사를  종조로 한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태고종은 선암사를 1총림으로, 봉원사, 백련사, 법륜사, 청년사 4본사를 두고 있다. 

승려 8천여 명의 한국불교 2대 종단이다. 종법에 따로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승려 혼인의 길을 터놓고 있다. 대처 비구는 7대 3의 비율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수계산림’(수계를 위한 마지막 행자교육) 중이어서 행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요즘 출가자 수가 대폭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태고종은 이미 결혼을 한 사람들이 이혼하지 않고 출가할 수 있고, 또 사유재산을 인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시대의 흐름으로 봐야 하는지, 종교 세속화의 한 갈래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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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밤새 조금씩 내리더니, 새벽까지 이어진다. 나는 일찍 매표소까지 걸어내려 갔다가 서서히 되돌아 올라왔다. 가을이 깊어가는 산사의 숲길을 어슬렁어슬렁 걷는 것보다 더한 매력이 어디 있을까? 

낙엽이 쌓인 흙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한 모퉁이를 돌면, 작은 무지개다리를 만난다. 거기서 큰 무지개다리와 이어진 미음 자 길을 한 바퀴 돌고, 계곡 아래로 내려간다. 

승선교(昇仙橋, 보물 400호)의 지상 반원은 물에 비친 반원과 만나 원(圓)이 된다. 그 원을 통해 보이는 강선루(降仙樓)가 선암사의 백미다. 

들어가면서 보이는 편액은 성당 김돈희의 글씨이고, 나가면서 보이는 편액은 석촌 윤용구의 글씨인데, 석촌의 것에 대해 누군가 ‘갓 쓴 선비가 두루마기 차림으로 세찬 눈보라를 견디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글씨’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있다. 

더 올라 오른쪽으로 휘면 당우 한 채를 앞에 두고 계란처럼 긴 타원형 속에, 작은 섬이 있는 연못, 삼인당이 나온다. 선암사 사적에는 신라 경문왕 2년(862) 도선 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연못의 섬은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밖의 타원형은 ‘자각각타(自覺覺他)’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삼인(三印)’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테두리 길을 따라 저 우아한 연못을 걷는다. 비 내리는 가을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흐르고 흘러 고요한 소멸에 이를 것이니, 그러므로 ‘생즉시멸(生卽是滅)’인가? 
 

ⓒ월간 불광 제공


아, 절에 들고 나는 길목에 연못을 파 놓은 것은 아름다운 공간에서 쉬어가라는 뜻이 아니구나! 불교의 정수인 무려 5개의 사자경구를 풀지 않고는 연못을 벗어날 수 없도록, 그것은 화두(話頭)이거나,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 들어가도 나올 때는 마음대로 나올 수 없는, 무문관(無門關)같은 것이 아닐까? 

까마득한 옛날 선암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도선의 모습, 이 길을 따라 절에 찾아온 초발심 출가자에게 묻는 선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올라오면서 연못을 보았는가?”           
           

** 이광이는 전남 해남에서 1963년에 태어났다. 조선대, 서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신문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산과 절이 좋아 늘 돌아다녔다. 한때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면서 불교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됐다. 음악에 관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다.

** 윗 글은 월간<불광>에 연재 중인 <이광이의 절집 방랑기>를 출판사와 필자의 허락을 받고 재게재한 것 입니다. (www.bulkw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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