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탐방] 생애 첫 전시를 가진 작가 노 주 일

예술의 거리 자주 지나치는 곳에 작가가 있다. 자신이 속한 단체의 사무실 겸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작가를 오가며 오랜 시간동안 지켜보았다. 매일 마주치기도 하고 몇 년 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기도 했다.

늘 무언가를 하며 바빠 보였다. 묻지는 않았으나 어렴풋이 하는 일을 알고 있기도 했다. 그런 작가가 나이 마흔을 훌쩍 넘어 생애 처음으로 전시를 했다. 전시하는 동안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노주일 화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온기 한 점 없는 사무실 겸 작업실에서 이제 막 켠 온열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오며가며 질문하고 답했다. 왼쪽 창으로는 도시의 오래된 낡은 풍경이 그림처럼 보였고, 오른쪽 창으로는 큰 건물 뒤로 가려진 음산한 기운의, 도태되고 배제되어버린 공기들이 둥둥 떠다녔다. 신기하게 하늘은 푸르게 맑았다.

좋았다. 그리고 행복했다. 아침마다 단정하게 매무새를 하고 전시장으로 오는 길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시장에 앉아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같이 전시하고 있는 이상호 선배랑 이런저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상상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생애 처음의 전시였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작업을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개인전을 할 것이라 당연히 생각했다. 작가는 “그동안 허망한 일들을 하느라 하루 하루 미루다 보니 어느 새 마흔의 중반을 훌쩍 넘겨버렸다. 꿈꾸며 했던 일들에 대한 결과도 보장되지 않았고 작품도 없는, 결과적으로 작업에 대한 타이밍을 놓쳤다.”고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개인전이면서 이상호 선배와의 2인전 형식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시독려를 하면서 애정의 글을 썼다. 이상호 선배는 ‘2015년, 내가 방황하고 있을 때 노주일이가 내게 그동안 해왔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해보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고, 종용해서 첫 번째 전시회를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치루게 되었다.

너무 고맙기도 해서 언제 두 사람이 전시회 한 번 하지고 전했던 것이 <소묘 2인展>을 하게 되었고, 작가는 ‘그림 팔아 돈 생기면 새로 발굴한 맛난 집에 데리고 가서 밥도 사주고, 가끔 용돈도 챙겨주는 등 나에게는 여러모로 아주 귀한 선배다.’ 어느 날은 근엄한 얼굴로 “나랑 드로잉 2인展을 하자! 일만 열심히 하지 말고 앞으로는 화가로 서라. 내가 너를 이끌어 주께! 전시비용은 내가 데께. 너는 앞으로 그림만 그려라!” 며 진심으로 권해줘서 오래간만에 전시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전시장은 밝았다. 선배와 후배가 같이 한 시간은 끈끈했고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보냈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밤마다 꿈을 꾸었다. 1.2mm와 0.5mm, 0.1mm의 펜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드로잉을 작업하는데 있어 섬세한 실핏줄이 되었다. 밤과 새벽의 시간이었는데 마음은 오히려 밝고 고요했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고 즐겁고 신이 났다.

작가는 “하룻밤에 두 작품의 드로잉을 완성하면서 스스로 놀랬다. 이렇게 몰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늘 머리속에 고무풍선 몇 개를 둥둥 띄어놓고 살았는데 이번 전시회를 위한 작업을 하면서 맑아지고 명민해진 상태가 신기했다.”고 웃었다.

6점의 드로잉은 반어법을 가지고 있다. 그 중 <물에서 새를 낚다>와 <하늘에서 붕어를 낚다>는 허망한 일들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척한 사람들에 대해 부질없음이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민본동굴벽화도’는 인간의 모든 것을 흡입하는 것처럼 인간성 말살 과정을 그렸다. 하지만 작가는 한 점 희망을 남겼다. 날카롭고 뾰족한 죽창을 들고 혼신으로 다가가고 있는 단 하나의 형상이다.
 

물에서 새를 낚다 - 노주일.


작가는 “처음 작업을 시작하면서 민주화운동 중 산화한 열사들의 부모님 얼굴을 작업하려 했었다. 하지만 너무 촉박한 시간에 쫓겨 다음으로 작업을 미뤘고, 이번 전시만큼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느꼈던 것, 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드로잉으로 형상화해보자고 결론지었다.”고 작업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했다.

엎드려 선(線)을 그으며, 선(宣)으로 이루어진 화두(話頭)를 던졌다.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림을 보고 나를 반추하면 그림 안에 내가 있다. 작가가 원하는 그림 감상법이고 전시의 목적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모든 실패와 대부분의 망실은 더 나은 미래의 나를 위한 담금질이다. 이제 그 때가 왔다. 멀리 돌아왔으니 앞으로는 작업할 시간만 남았다.

작가의 생애 첫 번째 전시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 윗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98호(2018년 1월호)에 실린 것을 다시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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