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곳

츠빙거 궁전 박물관을 배경으로 피아노를 연주히는 남자. ⓒ차노휘


드레스덴에서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한 시간은 8시였다. 바로 숙소로 갈까, 하다가 며칠 전에 발견한 커피숍 Cafedu로 향했다. 걸어서 7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있었다.

아무리 노트북을 오래 켜놓고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격이 제법 저렴하고(환율 때문이지만), 직원이 친절하며 맛이 좋았다. 근처에 학교와 비즈니스센터가 있어서 나처럼 대부분 노트북이나 책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과 토론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1층이 주로 토론하는 사람들이라면 2층은 비교적 혼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2층 화장실 한 쪽 룸에 칸막이 없는 독서실을 만들어서 손님에게 편한 공간을 제공한다. 예약도 가능하다. 예약한 사람의 이름과 도착시간을 적은 팻말이 식탁에 놓여있다.

예약 시간만 피해 그곳에서 작업을 해도 된다는 배려다. 손님이 많아 합석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의자가 네 개인 테이블에 각각 다른 사람 네 명이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여행을 떠나면 그곳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현지인들이 많이 다시는 커피숍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글쓰기, 음악회와 미용실 가기 등이다. 프라하는 워낙 음악이 일상이 된 곳이라 길거리 공연도 수준급이다.

Bar에서 하는 라이브도 생동감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성당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파이프 오르간의 육중한 음과 아리아를 들을 수 있다. 일정한 입장료를 지불하면 입장이 가능하다.

성당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VIP 석이라고 해서 29유로를 지불했다. 길거리 음악이 듣고 싶어서 카렐교에 들렀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입장권을 손아귀에 쥐었을 때 이미 음악회에 다녀온 것처럼 영혼이 한 뼘 즈음 길어져서 인파 속을 가볍게 뚫고 걸은 적이 있다.

미용실 체험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머리를 손봐야할 정도로 어수선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미 모든 것을 체험한 것처럼 만족스러워서다. Cafedu 때문이다. 여행지이면서도 여행지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 이곳에서 나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숙소로 귀가할 시간인데 잠깐 Cafedu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Cafedu는 마감을 두 시간 앞두고 있어서인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1층 창가에 느긋하게 자리를 잡았다.

휴대폰을 단독 테이블 콘서트에 꽂아 충전을 하고 노트북을 켰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Peggy Lee 노래다. 너무 시끄러우면 이어폰을 끼려고 했는데 그냥 두었다.

내 귓속에는 아직도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정원에서 듣던 피아노 연주가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흰색 그랜드 피아노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던 초록 불빛까지도 덩달아서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이곳의 어둠은 유난히 빨리 온다. 체코 국경 인접한 곳에 있는 독일 드레스덴도 마찬가지다. 낮 동안 비를 살짝 뿌렸고 먹구름이 낮은 하늘에 덮여 있어서 내내 우중충했다. 우중충한 날씨가 짙은 어둠을 일찍 몰고 왔다.

츠빙거 궁전 내에 있는 미술관에서 플랑드르 화가 반 야크, 빛의 화가 베르메르와 라파엘로 작품에 실컷 눈독 들인 뒤, 4시가 지나서 나왔다. 바깥에 나왔을 때 절로 탄성이 터졌다. 궁정 건물 실내 창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어두운 공간에 출렁이며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낮에는 철 성분이 섞인 사암의 칙칙한 색 때문에 노쇠한 피부를 감추지 못했다면 밤은 그야말로 클림트의 화려한 금장식 패턴 두루마기를 연상케 했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미술관에 나와서 바로 보이는 요한왕 광장 한쪽에서 들리는 피아노소리였다.

동상을 배경으로 흰색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피아노는 어둠 속에서 초록 광선을 내뿜어 흡사 연주자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낮에도 길거리에서 아리아를 들었다. 성악가 두 명이 연주음을 틀어놓고 노래를 했다. 성능 떨어진 반주음 스피커와 소리를 되울려주는 벽이 없어 소리가 흩어졌지만 그 자체로 희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거리에서 아리아라니. 한참 동안 서서 드레스덴 거리 음악을 즐겼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찬기가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온기 있는 건반일까. 피아노 음은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첨탑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는 어둠 속으로 꼬리를 감췄다. 연주자의 손끝에서 선율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음악을 들으면서 광장을 돌았다. 조명에 금빛으로 빛나는 젬퍼 오페라 하우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가톨릭 궁정교회(호프 교회)와 트리니타티스 성당 첨탑들이 마천루를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젬퍼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차노휘
가톨릭 궁정교회(호프 교회)와 트리니타티스 성당과 레지던츠성을 배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차노휘
젬퍼 회화 화랑 내부. 1846년에 처음 생겼으나 제2차 대전 영향으로 1960년대에 다시 문을 열었다. 미술 소장품들 중 라파엘로 작품인 <시스티나의 성모(Sistine Madonna)>가 가장 유명하다. ⓒ차노휘


피아노 치는 남자를 보고 있으려니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영화 말미가 떠오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숨어살던 유대계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은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다.

피아니스트라는 말에 장교는 그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킨다. 의심 가득한 장교 앞에서 그는 굳은 손가락으로 둔탁한 음을 낸다. 마침내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몰아지경. 어떤 나약함도 공포심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과 몸짓.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선율이 만들어진다.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그곳을 어루만지던 그 선율, 쇼팽의 발라드 1번. 아직도 나는 그 연주곡을 귀가 아니라 눈으로 듣는다.

어찌 눈으로 듣는 것이 그뿐일까. 제2차 세계대전, 드레스덴의 폐허 또한 그랬다. 흑백사진의 나열일 뿐인데도 그곳에서 절망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다. 프라하에서 버스로 2시간여 거리.

아우구스트 1세가 지배할 당시 웅장한 건물들이 많이 세워져서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던 도시. 전쟁이 끝나갈 무렵, 14일에 걸쳐서 수천 톤의 폭탄이 드레스덴에 떨어졌다(bombing of Dresden). 이틀 만에 대부분의 건물이 초토화되었다.

의외로 사상자가 많았다. 아름다운 도시는 폭격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서 독일 피난민들이 드레스덴으로 몰려 왔다. 하지만 독일군이 영국의 코벤트리를 폭격하자 그 보복으로 영미 연합군이 드레스덴을 폭격했다. 피난 왔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뿐만 아니라 폭격과 화염폭풍으로 문화명소였던 건물 90퍼센트가 소실되었다. <피아니스트>의 마지만 장면 폐허 속처럼 드레스덴도 마찬가지로 잿빛이었다.

잿빛 폐허를 어루만지는 두 선율. 제2차 대전 때의 스필만과 현재 요한왕 광장에서 연주하는 젊은이의 연주가 시공간을 벗어나 화음을 이루고 있다. 연주곡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길거리 연주자 또한 피아니스트 영화 속 마지막을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준비해 온 여러 곡 중 한 곡일까.

스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라고 믿지 않은 독일 장교에게 폴란드 국적의 음악가 쇼팽의 음악을 연주한다. 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장교는 이 유태인이 진짜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는 믿지 않았다. 그저 더럽고 비열한 굶주린 쥐라고 생각했다. 연주가 시작되어 몰아지경이 되었을 때 장교는 본다.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연주에 완전히 빠져버린 장교는 그때서야 유태인의 가치와 존엄을 생각한다. 모든 존재하는 가치의 평등성. 하지만 피아노를 치던 남자의 몰골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위대했다. 연주가 끝나자 스필만은 다시 힘없는 상태로 돌아가지만 그전의 얼굴이 아니었다.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고 있었다. 장교는 알고 있었다. 전쟁은 감정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예술적 가치를 모른다는 것을.

감정이 없는 전쟁은 존재하는 것들을 무참히 파괴한다. 그렇게 엘베강의 피렌체라고 불리었던 드레스덴도 파괴되었다. 사람이 일으킨 전쟁이었지만 폐허를 복원해내는 것도 사람이었다. 그들은 드레스덴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조각조각난 벽돌들을 일일이 번호를 매겨 역사박물관에 보관했다. 그때의 슬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폭격 당해 무너진 건축물들의 돌조각을 그대로 사용했다. 재건된 드레스덴의 건축물들은 불에 그을린 듯 거무스름한 색과 밝은 색이 어우러졌다. 과거의 슬픈 역사를 동시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레지던츠(Residenzshloss) 궁전 벽화인 <군주들의 행렬>. 101미터에 달하는 길이로 그려진 군주의 행렬 벽화는 1900년대 타일로 다시 제작하였다. 24,000개의 타일이 사용되었다. ⓒ차노휘
돔 형식의 프라우엔 교회 내부. 프라우엔 교회는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야 복원이 시작되어 2005년에 완공됐다. 그래선지 내부 장식이 화려하고 천장 성화도 색깔이 선명하다. ⓒ차노휘


약간 감상적인 인간이 된 나는 창문 바깥을 바라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성탄절 연휴 때는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혹시 모르니 이틀 먹을 음식을 사가야 한다. 무엇보다 이국에서 혼자 보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이러저러한 생각에 몰두해 있는데 프런트 쪽에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직원들이 마감을 하면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하고 있다. 한 직원과 눈이 마주친다. 내가 싱긋 웃자, 노래를 부르다 만 직원이 내게 와서 묻는다. 멤버쉽 신청을 해보지 않겠냐고.

내가 카페에 들어오면서 마감 시간과 크리스마스 연휴 때 가게 문을 닫는지, 닫으면 며칠 동안이고 언제 오픈을 하는지 등을 물었다. 내 질문을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직원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고 말한다.

카페 2층에 독서실처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일정한 돈을 냈을 경우에 출입이 가능하다. 출입이 가능한 사람이 멤버쉽 회원이다. 내가 29일 금요일에 떠난다고 하니 내 형편을 고려해주겠다고 한다.

24시간 이용할 수 있으니 시간 활용도 부담 없단다. 그러면서 그가 룸을 보여준다. 2층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일부였다. 그곳을 지나쳐서 들어간 곳은 제법 넓다. 창밖을 볼 수 있도록 배치된 책상과 의자, 사물함, 책꽂이에 가득한 책들까지.

무엇보다도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조용하고 진지하다. 금요일까지 사용하려면 100코룬을 내면 된단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0원 정도이다. 그렇지 않아도 연휴 때 조용하게 글 쓸 곳이 있었으면 했다. 흔쾌히 승낙하고는 내 신용카드에 출입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센서를 부착했다.

나는 프라하에서 제2부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익숙한 공간과 사람을 떠나왔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공간을 만나고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전쟁) 받아도 또 사람에게 위안(복원) 받는 것처럼. 아무리 혼자 하는 여행이라고 하지만 어찌 사람을 제외할 수 있겠는가. 서서히 나는 여행지가 일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스필만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연주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그 연주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자 주위의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오직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며 건반을 눌렀다. 공포심은 없어지고 온전한 ‘나’만 남았다. 그럴 때의 ‘나’는 생쥐처럼 숨어살면서 음식을 찾아 헤매던 비굴한 유태인이 아니었다. 가장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기를 원하는 ‘존재자’일 뿐이었다.

생생한 존재감. 그 존재감은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나는 Cafedu를 사랑한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할 이유를 제공한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곳, 프라하에서의 Cafedu의 다른 표현이다.
 

바츨라프 광장 위쪽에 있는 카페, Cafedu. ⓒ차노휘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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