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어머니의 밭 어귀에는 가을 햇살을 머금고 사람 키를 훌쩍 넘긴 커다란 수수들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염병할 놈들이 그 많던 수수 빗 자락도 다 어따 딘져 버리고” 남아난 게 하나도 없다면서 수수를 뽑기 시작했다.
 

지난 가을, 수수를 털고 있는 어머니(강복덕 님) 모습 (전남 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소재) ⓒ석산 진성영


아마도 기존 집터를 부수고 그 위에 새집을 짓는 과정에서 세간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토로인 듯싶었다. 허가야! 시골에서는 수수빗자루를 얽어 매 만들면 수수가 다 달토록 쓰는 일이 다반사다 보니 그런 푸념 섞인 혼잣말을 했던 것 같다.

한 여름 척박한 땅위에 자란 수수는 쉽게 뽑을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호미질을 하면서 깊게 뿌리내린 수수를 깨기 시작했다. 나 역시 어머니와 함께 수수를 깨어 수수깡만 별도로 잘라 집 앞 베란다 난간에 매달아 놓고 며칠 동안 수수 알맹이가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시간만 나면 어머니는 수수를 털기 시작했다.

그토록 어머니는 쉼 없이 수수 털기에 여념이 없었고, 알맹이를 채로 거르고 물로 헹궈 미니 도구 통에 넣어 찍어 수수가루를 만들었다. 내가 도구 통에 넣고 찧으면 어머니는 그 사이에 물을 조금씩 부어 수수가 잘 찧어지도록 했다.

수수깡은 다시 새끼줄로 꼬아 묶어 창고에 매달아 놓으라고 하셨다.

시간 날 때 수수빗자루를 만들 거라고 하셨다.

수수는 1.8리터 페트병에 3개 반 정도가 나왔다.

어머니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이틀 전, 어머니께서는 수수를 물에 담가 놓으라 하셨다. 저녁밥은 쌀에 수수를 넣고 수수밥을 해 먹자고 했다. 어머니는 평소 밥을 할 때면 흰 쌀에 콩이나 녹두를 넣은 밥을 좋아하셔서 늘 상 밥을 할 때면 혼합 밥으로 어머니께 밥상을 차려 드렸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나는 수수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힘들게 가을걷이로 수확한 수수는 그렇게 딱 한번 해 먹고 더 이상 해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한차례 시골집을 다녀온 길에 독 항아리 속에 담긴 수수를 가지고 목포로 올라왔다. 때마침 서울 가족들이 어머니 병문안 차 내려왔을 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3년 정도를 내다보고 내려온 시골행이었지만, 어머니와의 시간은 90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새섬의 소소한 일상들이 저물어 간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