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떨림

카렐교의 거리 악사.


프라하 시내는 이어폰을 끼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닐 만하다. 바둑판처럼 작고 네모난 돌이 촘촘하게 박힌 보도. 반들반들한 그것은 발바닥을 경쾌하게 자극한다. 오후 4시 10분이면 급격히 어둠이 내려 이십분만 지나도 사위는 칠흑처럼 어둡다.

다행히 어둠은 온기를 품고 있다. 회색빛 건물 측면을 훑던 바람이 매섭게 핥고 간 뺨에도 홍조가 핀다. 상점마다 입구에 걸린 전등이 앞서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주면 나는 백팩 어깨끈을 다시 한 번 고쳐 맨다.

노트북. 여권. 수첩. 따뜻한 물 한통. 휴대폰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 우산. 약간의 유로와 두 시간 전에 35코루나 주고 산 1kg 쌀. 외출할 때면 내 신체 일부처럼 매고 다니는 이것. 몇 킬로그램이나 나갈까, 낯선 이곳에서 내 존재를 증명할 물건들의 무게는?

물건은 물건일 뿐,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당신’에게 보낸 소리의 되울림을 듣는 것이다. 알맹이 없는 만담가 보다는 짧지만 진정성 있는 대답.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오롯이 당신의 가슴이 담겨 있는 메아리. 메아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공허하게 울렸다가 사라진다.

물결에 휩싸이듯 나는 떠내려간다. 주말이라 평일보다 세 배나 많은 인파들로 낯선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한적한 거리에서 튕겨 나온다. 가느다란 선을 따라 흘러나오는 음악을 동행자 삼는다.

온통 몸에 금칠을 하고 서 있는 사람, 공중 부양하는 사람을 지나친다. 거리마다 치장한 트리도, 하벨 시장의 구경꾼들의 활기도 가슴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침묵에게 자리를 내준다. 유난히 짧은 그림자가 나를 따른다.
 

구도심 성당 트리.
구도심 틴 성당.


귀속에서는 애처롭고 가느다란 바이올린 선율이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진다. 웅장한 첼로 선율이 베이스로 깔린다. 툭툭, 클래식 기타를 둔탁하게 뜯어내는 손가락이 둘 사이의 간격을 메운다. 허벅지와 발목에 힘이 들어간다.

군데군데 서 있는 가로등이 납작한 정수리를 어루만지기를 몇 차례, 나는 또 링반데룽처럼 구도심 광장에 서 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한 백색으로 피어나는 틴 성당 옆 10m나 되는 트리. 트리 주위로 크리스마스 장이 열리고 천문시계 앞에서는 악대가 음악을 연주한다.

사람들이 많아 소리만 듣는다. 구도심 광장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또 다시 무리에 휩싸여 떠내려간다.

무리를 헤치고 다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전날도 비셰흐라드(Vysehrad) 공원에 갔다가 강변도로를 따라 카렐교로 향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카렐교를 자주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40분. 40분 동안 걸으면서 화약탑, 구도심지 혹은 바츨라프 광장을 거쳐 카렐교를 지나면 오르막길 네루도바를 통해 프라하 성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하루 이틀 프라하를 거쳐 가는 여행객들이 꼭 들러보는 필수 코스이다.
 

카렐교 아래 상점.
네루도바 거리 야외 카페.


명소인 만큼 주말인 오늘은 카렐교가 더 북적거린다. 하루가 다르게 다른 사람들로 채워질 다리(거리). 하지만 이곳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바닥에 오체투지로 구걸하는 사람, 초상화 그리는 화가들, 악기 연주하는 음악가들과 장사하는 사람들.

카렐교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거리 악사라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아무나 그곳에서 연주를 하거나 초상화를 그릴 수 없다. 1년에 한 번 있는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충동적으로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나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활기 넘치는 다리는 예상대로 나이든 연주자 세 명이 재즈를 연주하고 있다. 중간 중간 그들이 발매한 시디를 홍보하면서 능숙하게 이어간다. 걸음을 멈춰 한 곡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나처럼 음악을 듣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각자 다리 난간에서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일어나서 일단 이곳에 왔으니, 끝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 풍경.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조금 걸으니 사람들이 꽤 둘러싸여 있는 거리 악사가 있다.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카렐교 아래에서 바라본 도심.


모자 달린 검은 망토 쓴 연주자들은 흡사 밤의 사도처럼 보인다. 악기도 색다르다. 바비큐 뚜껑이다. 만질만질한 것도 있지만 다양한 화음을 위한 것인 듯 군데군데 굴곡을 만들었다. 드럼처럼 바비큐 뚜껑을 손으로 때리면서 연주한다.

뉴에이지의 완벽한 화음. 나는 악사들의 연주를 듣기 위해 다리난간 벽에 등을 대고 쪼그리고 앉는다.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응시한다. 갈매기 무리가 운무를 펼치고 있다. 하나, 둘, 셋. 서로서로에게 메아리로 답해주는 그들.

존재하는 것들의 반응, 그 떨림. 떨림이 공기 중에 서로 얽혀 화음을 만들어 내고 그 화음은 구경꾼(청중)들에게 가서 머물렀다가 되돌아온다. 존재하는 것들의 시그널이다.

떨림을 전할 수 없는 존재는 외로운 것인가. 서서히 일어나서 하늘을 다시 올려다본다. 운무를 펼친 한 떼의 갈매기가 날아가 버린 빈 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인다. 이어폰을 끼고 프라하 성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프라하 성이 보이는 야경.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