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새집을 짓고 난 후...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할머니가 새집에 놀러 오셨다.
갓김치, 파김치, 황 서리 젓갈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신 것으로 기억된다.

​"선상님! 젓갈도 좋아 하요?"

옆에 어머니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선상님, 선상님" 하는 할머니를 유심히 바라보며 의아하고 흐뭇한 표정을 함께 짓고 있었다. 그 후로 할머니는 밑반찬을 수시로 갖다 주셨다. 나는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내 글씨가 새겨 만든 석산 머그잔을 선물로 드렸다.
 

캘리그래피 석산 진성영 작가와 어머니(강복덕님)와의 다정한 모습(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소재) ⓒ석산 진성영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를 부를 때 "아들아", "막둥아" 보다는 동네 할머니가 불렀던 "선상님", "선상님" 하고 부르셨다. 또, 내가 어머니를 부를 때면 "네. 선상님", 때론 "네. 아잡씨"하며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나는 한바탕 크게 웃어넘겼다.

​반드시 오후 6시가 되면 저녁식사를 드셔야 했다.

어머니는 규칙적인 생활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키신 분으로 기억이 된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약을 드시고, 돌침대에서 어머니만의 운동을 하시면서 또 한 번 “아잡씨”, “선상님”을 외쳐댄다. 

이 시점에서는 화장실 다니시는 불편함을 해소시켜 드리기 위해 수년 전에 사드린 가벼운 은색 요강을 찾는 신호로 방안으로 요강을 갔다 드리면 “아이고 내 막도(아들)” 하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의 즐거움은 나의 즐거움이었다.
내가 새섬에 내려 간 목적 역시 어머니의 봉양이 최우선이었다.
그런 어머니께서 어울리지 않는 환자복에 산소 호흡기를 주입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

매일 따뜻한 탕도 끓여드릴 수도 없고, 어머니의 놀이터도 갈 수 없는 상황!

​얼마나 인간이 나약한 존재인가를 매일매일 느끼게 해주는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어머니의 “얼굴을 닦아드리는 일”과 “어머니, 어머니! 불러보고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훔치는 일”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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