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2017년 11월 21일 오후 3시 50분, 시간이 멈춰버린 날!

어머니의 모든 것이 서려있는 밭(어머니의 놀이터)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어머니! 어머니!! 빨리 일어나 아들과 함께 집에 가셔야죠”

어머니는 이미 눈동자가 풀렸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밭 일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강복덕 여사.  ⓒ석산 진성영

그날 오전 10시, 늦은 아침을 챙겨드리고 어제처럼 호미를 쥐기 위해 밭으러 모셔다 드리고 나는 밭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구 집터 건축 잔해물을 치우기 위해 일을 하려는 순간!

"막둥아! 오늘은 쉬어라."

나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집에 가서 네 할 일을 하라는 거였다.

평소 같았으면 늘 어머니와 함께 하다 집으로 귀가했을 텐데 그날따라 해질 무렵에 데리려 오시라는 거였다.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와 보일러실과 장독대 일부 마무리가 덜 된 미장일을 하고, 이틀 전 글씨 작업 들어온 것을 마무리 짓고 나니 오후 3시 30분.. 부랴부랴 어머니를 모시러 밭으러 갔다.

차에서 내려 밭을 올려다본 순간! 이미 어머니는 얼굴을 땅에 묻고 기도하듯 엎드려 있었다.

"어머니! 일어나 보세요?

어머니 좋아하시는 탕을 저녁밥상에 준비 해났으니, 빨리 가셔야죠"

어머니는 두 눈만 끔뻑거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조도 보건소로 향했다. 동시에 119 헬기 호송 요청을 했다. 이미 어머니께서는 뇌경색으로 한쪽 수족마비, 언어기능 마비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조도 보건소에서 기본적인 응급조치를 끝낸 후, 119 구급전용헬기로 옮겨 탔다. 

일사천리로 시간과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목포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고 난 다음 목포에 계시는 형에게 인계한 후, 집으로 오던 길에 어머니의 마지막 손길이 닿았던 밭으로 향했다.

늘 쓰고 다니시던 때 묻은 모자, 구멍 난 목장갑과 수차례 꼬매고 꿰맨 흔적이 역력한 빨간 버선, 점심시간에 맞춰 복용해야 할 혈압약과 홍시, 얼마나 호미질을 했는지 날 선 듯 빛나던 호미만이 급박했던 몇 시간 전 일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어머니의 놀이터를 다시는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암담한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첫배를 타고 한국병원 중환자실을 찾았다. 주치의는 이미 수족 한쪽이 마비 선고를 내렸다. 너무나 편안하게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깊은 잠을 자고 내일 아침이면 “막둥아! 밭에 가자!” 할 것 같은 기대감... 그러나, 철저한 현실 앞에서 인정해야만 했다. 

인력으로 되는 것이 있고 사람의 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어머니와 함께했던 3개월의 추억만을 남긴 채. 여든일곱의 강복덕 여사를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던 어머니!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일을 사랑하신 어머니,

당신이 살아온 1세기는 참으로 훌륭하고 자랑스러울 만큼 숭고한 가치로 채워진 삶이었습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