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매체를 이용한 회화작가 박구환

전남 담양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터널을 만들고 있는 숲을 통과하며 초록의 이파리들이 빛과 빛 사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으며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며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상큼했다.

담양의 작업실 방문은 두 번째였다. 이사한 다음 해였다는 기억 속의 작업실은 텅 빈, 너른 들판 속의 고적이었다면 지금은 도시와 별다른 경계가 있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부산함이었다.

마당 바로 아래를 비롯해 옆구리도 집으로 채워졌고 너른 들판 역시 곧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된다하니 작가의 말처럼 곧 조용한 장소를 찾아 작업실 이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치밀한 계산 속에서 진행한 소멸기법의 판화가 마지막 판화를 찍고 난 후 원판이 사라지는 것처럼 떠나야 할 때가 왔을 수도 있다.

주변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작가의 작업에 대한 열정과 부지런함이었다. 작가는 “다섯 남매를 키운 아버지로부터 부지런함을 배웠다.”고 웃었다.

25년 판화인생_그림이 된 생각과 칼

ⓒ박구환 작가

오랜 시간 목판화에 천착했다. 일본 유학 중 영감을 얻은 소멸기법의 목판화가 현재의 작가를 우뚝 세웠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판화 환경에서 대중화를 겨냥한 작가의 혜안은 시대가 요구한 예술이었을 것이다.

목판화는 애증이다. 붙들고 있기에는 노동집약적 생산물이며 똑같은 그림을 다수 찍어내는 그 이상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지배한다. 원화작품을 구매할 수 없는 생산예술이며 대량판매로 인해 가격경쟁력에서 이미 가치하락을 가지고 있는 불합리성과 작가의 지명도에 쏠림 현상이 극심한 것이 또 판화다.

작가는 “대중화 시장을 겨냥한 판화작품은 옵셋으로 찍어낸 포스터 같은 느낌으로 인쇄물처럼 취급 받기도 한다. 가격 경쟁도 일반적인 작품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이 저렴하며 이것은 결국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 생활이 안 되니 판화작가는 다른 장르를 찾아가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판화작품은 점점 대중과 멀어진다.

게다가 판화의 다산성을 이해 못하는 대중은 원화 한 점만을 소유하고 싶어하며 이점 역시 판매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작가들이 판화 작업에 쉽게 접근했다 접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25년이란 시간동안 살아남아 오히려 대중에게 다가섰으며 판화의 매력을 알렸다. 작가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점은 소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목판화가 디자인적 요소를 갖춘 극명한 색깔의 생산물이었다면 내 작업은 단조로움을 피하고 목판화에서 가장 열악한 회화성을 추구한 점에 있다. 목판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드러운 회화성에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일반의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섰을 것이다.”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변곡점_판화매체를 차용하다

거칠며 막힘이 없다. 미루는 일이 없이 정확히 부지런하다. 작업은 항상 그 무엇보다 먼저다. 일상이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도 일정분량의 작업은 새벽에 이미 끝나있다.

박구환 작가.

작가는 “거의 작업실에서 지낸다. 꿈결에서도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작업대에 앉아 이미지를 실험하려고 칼을 간다. 칼은 생각을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내 분신과도 같다. 40대 초·중반 전시와 페어에서 완판을 거듭하면서 판매와 작가정신에 대한 고민의 시간도 함께 주었다. 그 후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이 현재의 작업인 판화라는 매체를 이용한 회화작품들이다.”고 이야기 한다.

작업실 벽과 이젤에는 노란 잎을 가득 머리에 인 은행나무들이 즐비하다. 홍시처럼 붉은 꽃들도 뚝뚝 떨어진다. 나무 아래 밭을 누비고 있는 여인의 등도 눈여겨보지 않으면 판화와 다름이 없다.

여전히 소재와 색감은 편안하고 부드럽다. 70%~80% 칼로 제작된 작품의 나머지는 붓이 완성한다. 찍고 건조하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하는 판화이면서 회화인 셈이다. 목판화가 주는 한계의 갈증을 칼맛을 넘어 붓맛으로 완성한 결과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편안함, 지나온 추억의 일부분 되새김, 그리고 삶의 일정한계에서 위안과 위로, 위무를 받길 바랄 뿐.

** 윗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94호(2017년 9월호)에 실린 것을 다시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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