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무대인 근대 추리소설, 승객이 열광하며 새로운 대중문학 시대를 열다

기차는 사람들에게 이동의 자유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여행의 대중화를 통한 견문의 확대를 불러옴으로써 대중의 지적성장을 이끄는데도 한몫했다.

과거에 비해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진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면서 사물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다르게 갖기 시작한 것이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는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제 다양한 경험과 주제의식을 갖게 된 작가들도 새롭고 독특한 형식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과거에 없던 낯선 장르문학이 탄생했다. 바로 추리소설의 등장이다.

근대 추리소설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학 장르였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집어넣어 독자의 궁금증을 야기했다. 그 수수깨끼를 풀어줄 열쇠 는 신문, 기차, 전화와 같이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었다.

이를 증명하듯 세계 최초의 추리소설인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서 미스터리한 범죄를 알려주는 것은 신문이며,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도 범인에 대한 조사와 추적이 기차에서 자주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1908년부터 제국신문에 연재된 이해조의 정탐소설 ‘쌍옥적’도 그 배경이 경인선 철도다.

이처럼 명료한 논리와 고도의 예측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은 기차를 비롯한 근대 문명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근대문화가 탄생시킨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와 ‘에밀 졸라’의 소설에 등장한 기차,
에거서 크리스티에 의해 추리문학의 꽃으로 재탄생

초창기 유럽 기차역의 서점 가판대에 로맨스나 미스터리한 내용을 담은 소설이 유난히 많았다. 당시 철도 승객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잡지는 영국에서 발행한 ‘라비(Li Vie)라는 잡지였다, ‘코넌 도일’은 여기에다 ‘셜록 홈즈’를 연재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코넌 도일’은 작품 속에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을 탐정으로 등장시켜 범인의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열차 시간표로부터 단서를 찾는 등 재미난 스토리로 유명세를 얻었다. 독자들은 정교한 논리와 치밀한 구성으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코넌 도일의 범죄와 추리소설에 열광했다.

기차를 문학작품의 배경으로 활용한 소설가는 수도 없이 많지만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가로는 톨스토이와 에밀 졸라를 꼽을 수 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할 때 기차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갔으며, 주인공 안나의 안타까운 자살 장면에도 기차를 등장시켰다.

“빠르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급수탑에서 철길 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간 안나는 지나가는 열차에 바짝 다가가 멈추었다. 그녀는 첫 번째 차량의 한가운데가 자신의 정면에 보이자, 그 밑으로 몸을 던지려고 했다.”(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중에서)

에밀 졸라도 ‘인간 짐승’을 쓰면서 기차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졸라는 소설을 쓰기 전 기관차 이름은 물론 직원들의 월급과 사건을 일으킬 때 필요한 세부적 내용 등 철도에 대한 자료를 꼼꼼히 조사해 작품에 반영했는데, 이 때문에 철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졸라의 소설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부역장은 그곳에서 음습한 도박벽을 충족시겼는데,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우연히 포켓이라는 카드 게임을 접했다가 불붙기 시작한 도박벽은 비할 데 없는 재미를 제공하는데다 현실을 깨끗이 잊게 해주는 속성 때문에 그후로 점점 심해지더니 끊을 수 없는 습성으로 변해버렸다.(……) 깊은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열기 속에서 죽어가는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 폭행당하는 여성의 비명 소리처럼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기적 소리, 음울하게 울리는 기적 소리와 기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 (에밀 졸라의 소설 ‘인간 짐승 ’증에서)

이 소설에서 기차는 산업화를 촉진시킨 문명의 이기임과 동시에 인간의 야만성이 극단으로 발휘되는 상징공간으로 그려진다.

즉 작가는 기차와 범죄라는 두 축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기차를 계획적 살인이 이루어지는 공간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철도가 파생시킨 문명의 그림자에 주목했다. 졸라는 파리와 르와브르 사이를 달리는 열차에서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설의 모티브로 삼아 감각적 문체로 미스터리하게 그려내 독자를 열광시켰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철도 문학으로서 추리소설의 백미는 셜록 홈즈의 열렬한 독자였던 에거서 크리스티가 1934년에 발표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다. 이 소설은 당시 사법제도가 제 구실을 못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할 것인지를 묻는 문제작이었다.

하지만 폭설에 갇힌 열차 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두고 탐정과 범인들이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벌이는 날카로운 신경전이 독자의 흥분과 재미를 더 유발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프랑스로 가는 열차 안. 모두 14명을 태운 열차가 폭설 때문에 예정에 없는 정차를 하는 동안 한 부호가 살해된다. 아무도 열차에 들어오거나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승객들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었고 서로 간에 알리바이를 입증해 준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굴까?(범인은 승객 모두다) 트릭과 반전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정교한 플롯과 고품격 스토리 또한 압권이어서 출간 즉시 많은 화제를 뿌렸다. 소설의 유명세에 힘입어 1974년에는 범죄영화에 정통한 미국의 시드니 루멧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다시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연을 가장한 사건과 불특정 인물 상호간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기차

근대 추리소설에서 기차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소설의 배경이 될 만큼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다수의 사람을 낯선 곳으로 실어 나르는 기차가 로맨스와 호기심, 스릴 등 온갖 재미난 상상을 하기에 알맞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행이 주는 낭만적 흥분과 설렘을 안고 기차에 오른 승객은 우연을 가장한 사건과 불특정 인물 상호간의 관계를 자연스레 구성할 수 있는 안상맞춤의 공간이었다. 게다가 달리는 기차라는 특수한 공간은 밀실로 활용해 살인 등 범죄의 시발점으로 설정하기에도 적합했다.

에거서 크리스티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서 이런 방식으로 소설의 뼈대를 구성했다. 기차가 허구의 소설 속에서 사건의 논리적인 패턴을 유지하며 사실감을 극대화하는 문학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추리소설이 상업성을 갖고 널리 보급 된 것은 철도의 공로

추리소설이 상업성을 갖고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과정을 살피다 보면 19세기 기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독서풍경도 한몫했다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를 단일한 관계망으로 묶어내고 시공의 단축이라는 놀라운 생활혁명을 이룩한 기차지만 여행자 입장에선 권태와 지루함이란 단점도 있었다. 장거리 승객은 편리함을 얻는 대신 긴 열차 여행이 주는 단조로움과 무료함에 직면해야 했다.

더구나 지금과 달리 사회교류가 드물던 근대 초기의 사람들이 난생처음 만난 낯선 이들과 오랜 시간 서로 마주 앉아야 하는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프라이버시(Privacy)란 개념이 생겨났다. 프라이버시란 ‘사람의 눈을 피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프리바툰(Privatun)에서 유래된 말로,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혼자 있을 권리라는 뜻이다.

결국 승객들은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며 처음 보는 낯선 상대와 눈이 마주치는 난감함을 피하기 위해 책 속에 얼굴을 파묻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았고, 이를 재빨리 눈치 챈 상업 자본은 대중적 흥미와 상업성을 노리고 추리 소설은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추리소설은 기차 승객을 중심으로 읽히고 철도망을 따라 세계 각지로 유통돼 삽시간에 대중화되기에 이른다. 기차는 이런 방식으로 추리소설이란 신생 장르문학을 탄생시킨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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