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 문화in] ‘문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범현이 문화in] ‘문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 범현이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7.06.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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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장전미술관 관장 남전(南田) 하 영 규

밝다. 그리고 일렁인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알았다. 바람개비를 닮은 마삭줄의 하얀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다가왔다. 솟을 대문, 오래된 전통 한옥, 윤기 나는 나무마루, 마당 곳곳에 심어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 사람이 들고나는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진도로 가는 길은 생각이 많았다. 국도 1호선을 따라 목포신항에서 세월호를 만났고 팽목항과 가까운 곳에 미술관은 위치해 있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순간 사라졌다.

동글동글 사람 좋아 보이는 하영규 관장은 “이곳은 하 씨 집성촌이다. 내가 태어난 탯자리이며 내 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다. 하미마을은 60호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데 한 때는 120호가 넘었을 정도로 450년 동안 큰 마을이었다.”고 설명했다.

전남1호 · 전국 20번째 미술관

전남 진도 장전미술관. ⓒ범현이

1989년 개관했다. 하 관장의 부친의 호를 따서 장전미술관(長田美術館)으로 명명했다. 개관 당시는 부모님의 성함을 한 자씩 따서 남진(南辰)미술관으로 불렸으나 10년 전 부친이, 7년 전 모친마저 타계하시자 하 관장은 2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고 ‘장전’으로 미술관 명칭을 개명한지는 6년이 되었다.

하 관장은 “조상 대대로 살았던 집터에 미술관을 개관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물론 선친이 하신 일이었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작업실도 그대로 두어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며 작업실을 보여준다.

물빛 두루마기와 중절모는 옷걸이에, 벼루에 갈다 만 먹이 금세 붓글씨를 쓰다말고 외출한 듯하다. 하 관장은 “살아있는 풍경이 10년 전 작고하신 부친이 곧 방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하관장의 부친인 장전(長田) 하남호(河南鎬) 선생은 예서(隷書) 장전체를 개발한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서예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군인으로 재직 시 고향을 떠나 있으며 늘 마음이 무거웠다.

퇴직 후 고향인 진도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은 신선이 된 듯 평화롭다.” 하 관장이 미술관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며 들려 준 이야기이다. 맞다. 짧은 시간 장전미술관에서 호사를 누렸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꽃들은 만개했으며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보물급 서화와 도자기 등을 감상했다.

하 관장은 “진도에는 세 곳의 사립미술관이 있다. 장전미술관을 비롯해 나절로미술관(이상은 관장), 진도현대미술관(정양 박주생 관장)이다. 3명의 관장은 자주 회동을 가지며 진도의 문화에 대해 논의하며 좀 더 발전적 방향을 찾아가려 노력 중이다.”고 소식을 들려주었다.

국보급 보물들의 집합소

미술관도 널찍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3층으로 이루어진 전시실은 1층은 설립자 장전 선생의 서화가 전시되었다. 장전체라 불릴 정도의 독특한 자신만의 서체를 개발해 보급한 선생의 서체는 글씨라는 한계를 넘어 미적으로도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2층에는 각종 고서화 전시를 했다. 대부분이 국가적 차원의 보물급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율곡 이이, 흥선 대원군, 다산 정약용 등의 서화에서 시간을 뛰어 넘은 묵향이 배어 나왔다. 3층은 가족실이나 기획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장전의 자녀들 대부분이 서화를 전공하고 있어서 전시가 가능했다.

하 관장은 “태어나서부터 보고 자란 형제들 모두가 아버지의 예술적 감각을 유전자로 물려받았다. 나 역시 퇴직한 지금은 당연히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재직 시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며 웃었다.

하영규 장전미술관장.

특히 1975년, 진도의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을 직접 보고 세계에 알린 프랑스의 피에르 랑디 대사가 장전 선생의 자택을 방문하여 5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첫 번째 작품인 쌍낙관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고민도 많았다. 변방에 위치한 미술관이어서 도심과 수적으로 차이가 나는 관람객은 물론이고 예향 진도에서 사립미술관으로 운영하기에는 재정적 여건이 어려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현대미술을 접할 기회가 소원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하 관장은 “소장작만으로도 기획 전시가 얼마든지 기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대미술을 접목한 전시를 시도 중이다. 에듀케이터로 상주하고 있는 주성원 작가에게 고마움을 갖는 이유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우리 미술관에 마음을 주고 있어 고맙다.”며 “선친의 뜻을 받들어 고향인 진도, 하미마을 안에서 우리 예술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펼쳐갈 것이다.

특히, 전국사립미술관들이 운영하는 <문화가 있는 날>은 자랑스럽다, 역시 진도는 ‘예향’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 이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91호에 실린 것을 다시 게재했습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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