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만든 세계표준시

1876년 7월 어느 날, 캐나다의 태평양 철도의 수석엔지니어 샌포드 플레밍은 아일랜드의 한 시골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타야 할 기차는 오후 5시 35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차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기차가 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세계는 하루를 0시에서 24시까지 표기하는 표준시 제도가 없었다. 열차시간표에도 오전과 오후가 따로 구분돼 있지 않았다. 프레밍이 타야할 열차는 이미 열 두 시간 전인 오전 5시 35분에 정거장을 지나간 뒤였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세계표준시계.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옛날 지구촌 각 지역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른 시간을 정오로 정해 지역의 기준 시간으로 삼았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고 자전하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정오를 맞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태양이 남중하는 정오일 때 유럽은 저녁이며 미국은 한밤중인 자정 무렵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편을 몰랐다. 지금처럼 세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기도 했지만 고작해야 걷거나 말이나 마차를 타고 천천히 이동했기 때문에 다른 곳과의 시차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느 곳을 가든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오면 그때가 정오였으며, 정오를 기준으로 하루의 시간을 맞췄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기차가 다니면서 지금까지 가졌던 시간의 세계관이 무너졌다. 기차 덕분에 먼 곳까지 여행이 가능해지자 지역과 나라마다 다른 시간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같은 영국이라도 리딩 지역은 런던보다 4분 빠른 시간대에 살았고 브리지워터는 14분이 늦었다. 기차를 타는 여행자들은 편리함을 얻는 대신 시간의 혼란에 직면했다. 앞서 예를 든 플래밍의 경우처럼 열차를 놓치거나 잘못 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영국은 일찍부터 전국의 각 시간을 하나로 묶었다.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공통의 시간기준인 ‘국가 표준시’ 채택했다. 그러나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아직 통일된 시간 개념을 정착시키지 못했다. 

특히 국토가 영국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넓은 미국은 무려 80개나 되는 지역시간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철도를 운영했다.

미국에 지역시간이 난립한 이유는 넓은 영토가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국토가 불과 1시간도 채 안 되는 경도 범위인데 반해 미국은 4시간이 넘는 경도 범위에 영토가 걸쳐있다.

그런데도 미국의 철도회사들은 시간통합의 노력을 게을리 한 채 본사가 위치한 도시의 고유 시간을 고집하면서 사세 확장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펜실베니아 철도회사와 뉴욕센트럴레일웨이는 시차가 5분밖에 안 나는 가까운 지역에 있었지만 통일된 시각표를 공유하지 않았다.

펜실베니아사는 필라델피아 시간에 맞추고, 센트럴 레일웨이는 뉴욕시간을 기준으로 열차를 운행했다. 이로 인해 사고의 위험성은 물론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전국각지로 14개의 노선을 운행하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는 승객의 불편은 상상을 초월했다.

승객들은 자신이 타고 온 회사의 시간표와 가야할 목적지로 운행하는 회사의 시간표를 일일이 대조하며 열차를 기다렸으나 계산을 잘못해 열차를 놓치거나 잘못타기 일쑤였다. 시간의 혼란은 미국의 철도망이 늘어날수록 점점 심해졌다.

길어진 노선만큼 시간의 편차는 더 커졌으며 이에 비례해 혼란과 불편은 가중됐다. 마침내 중구난방인 시간을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철도회사들도 더 이상의 시간혼돈은 영업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883년 극심한 시간의 혼란에 빠져버린 철도를 구하기 위해 미국철도연합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시간총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의 철도 경영자들은 수십 개가 넘는 시간 표준을 4개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전경.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현재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미국본토 네 개의 표준시는 이때 결정된 것이다. 미국이 국내시간을 통일하자 이제 관심은 세계시간의 표준화로 옮겨갔다. 당시 세계는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말미암아 무역을 비롯한 국제교류가 확대일로에 있었다.

이에 따라 세계 시간의 표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이때 아일랜드에서 시간표기의 착오로 기차를 놓친 샌포드 플레밍은 세계 측지선 학회에 참석해 세계시간의 불일치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상황을 유발하는지 역설했다.

그로부터 1년 후,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세계시간을 통일하기 위한 본초자오선 회의가 열렸다. 플레밍은 회의에서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그리니치 자오선을 기준으로 지구를 동·서로 24등분하는 1일 24시간 체계의 세계표준시를 주장해 관철시켰다.

기차는 지역과 나라마다 흩어진 시간을 편리한 국가 표준시 바꾸었을 뿐 아니라 세계의 시간을 하나로 묶은 일등공신이었다. 시간이 인간의 삶과 역사가 이루어지는 바탕이라고 할 때 기차가 만든 인류 공통의 시간 기준은 세계를 단일한 관계망으로 묶어 내 지구촌 시대를 만든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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