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시 연재] 순실의 나라
[오월시 연재] 순실의 나라
  • 김경일 시인
  • 승인 2017.04.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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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37주년 5.18광주민중항쟁 연재시

순실의 나라

김경일

                                       
부글부글 단풍 든다.

저 밑창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분노의 불길과 슬픔의 강물이
폭폭증으로 뒤섞여 물구나무를 서는 세월.
미처 아물지 않은 아픈 상처를 다시 호출하고
굳지 않은 딱지까지 후비고가는
낯바닥 두꺼운
순실 공화국이다.

프라다 신발짝처럼 나뒹구는 검은
어둑한 나라
차마 두 눈 뜨고 보지 못하고
짐작만 할 뿐
짐작만 할 뿐
귀 먹고 눈 먼 나라다.

죄 없이 배후가 되어
아수라장에 간 빈 지게꾼들
온 힘 다해 헤쳐 나온 어둠의 시대
또 다시 밀어 넣으려던
어처구니 없는 개 돼지의 시대다.
아, 미쳐 돌아가는 바람 속에서도
눈 한 번 꿈쩍 않는
위대한 나랏님 모시고 사는
순실의 나라다.

캄캄하여라
이제야 뭣이 중한 줄 알았으나
더 캄캄하여라.
이제야 그 중한 것들 못 지켜낸 줄 알았으나
이 캄캄한 밤길에 땅은 흔들리고, 비바람 거세다.
 
선장이 먼저 떠나간 세월호 뱃속,
피멍든 손톱으로 출구를 찾는 죄 없는 아이들처럼
깊은 절망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가만 있으라’ 구조를 기다리고, 인양을 기다리고,
퉁퉁 불어터져 다시 잊히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선택하였다, 이 시대
부엉이바위에 슬픔의 꽃이 지고 난 뒤
이 땅을 적시고 마을을 감싸고 흐르던 강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멈췄을 때
권력과 돈의 눈치를 보며 숨죽인 그 때,
우리들이 애써 골라서 이 길에 들어섰다,
침묵으로 동조하였다.

그러나 순정한 조국이여.
도끼를 들어 내 발등을 찍고 있는 민주공화국이여.
피 흘려 끙끙 울던 속울음 훔쳐 내고
이 도끼 다시 날을 세워
이 아픔 찍어 내야하리.
목숨 줄 연명하느라 잘못 든 길
피눈물로 다시 찾아야 하리.
저 얼어버린 냉가슴
구기고 비틀어대는 저 못된 손모가지를
단숨에 쳐내야 하리.

아아,
가장 낮은 것들이
가장 힘없는 것들이
드디어 주인공이 되는 나라
올곧게 지켜내야 하리.

끙끙거리며 속울음 울며
그래서 말갛게 고이는 눈물이 되어
우리들 모두 모여
어깨 걸어 행진하며
힘차게 부르는 노래가 되어야 하리
흠 하나 없이 당당한,
당당하게 이기는 승리의 횃불이 되어야 하리
기어이 이겨서, 끝내 이겨서 고운 꽃이 되어야 하리.
안하무인 된서리 추위 견뎌내고
더 붉고 환한 단풍으로 온 산하 물들여야 하리
그렇게 깨어나야 하리.
-2016년 11월 4일.

**김경일 시인은 1965년 완도 금당에서 태어남. 1991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등단. 현재 죽란시사회 동인, 광주전남작가회의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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