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 사회안전망 다지는 계기로

관심과 연민은 소통의 기본이다

이 산하에 어김없이 또다시 꽃 잔치가 벌어질 판이다. 노란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다지는 물론이요, 하얀 목련, 배꽃 그리고 연분홍 복숭아꽃은 벌써 꽃망울을 수줍게 터트렸다. 개나리도 며칠 사이로 활짝 꽃잎을 펼칠 것이다. 바야흐로 머잖아 삼천리강산에 울긋불긋 화려한 꽃 대궐이 차려질 모양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꽃을 대하는 내 마음이 달라져 버렸다. 취미가 사진인 나는 다시 고개든 강토의 꽃잎과 꽃대를 보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사진 찍기가 머쓱해지고 만다. 눈 호강시키는 것이 꼭 죄짓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석삼년 전 4월 16일, 유달리 연분홍 벚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질 때 안산 단원고 여린 삼백여 꽃잎들이 진도 앞바다 맹골 수로에 짧은 한 생을 떨구고 말았다. 그것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료들의 직무유기로밖에 볼 수 없는 태만과 늑장 대응 때문에. 꽃잎들이 시퍼런 바닷물에 비명을 지르며 시들어 갈 때 그녀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2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침몰 장소에서 인양된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에 올려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해양수산부 제공

그녀가 청와대 집무실이 아닌 숙소이자 휴식처인 관저에서 피부 미용 시술을 받았다거나 청와대 외부에서 엉뚱한 짓을 했다는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말했다. “악이 승리하는 필요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의 무관심이다.”라고. 이 말을 뒤집으면 선한 사람들의 악에 대한 무관심이 악을 키우고, 악의 창궐에 대해 선한 사람들의 책임 또한 크다는 의미다.

2017년 3월 10일 11시, 헌법재판소는 이런 그녀를 방관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심판을 인용 선고를 내렸다. 그녀는 탄핵되어 옛집으로 쫓겨 돌아갔다.

그녀의 탁핵 사유가 세월호 관련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이나 직책성실 의무 위반이 아니라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개입 허용, 권한 남용, 비밀엄수 의무 위배 때문이라는 점이 애석할 뿐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알리라. 그녀의 가장 큰 탄핵 사유가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직무유기에 의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때문임을.

나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성석제를 흠모한다. 내가 그를 더욱 흠모하게 된 것은 그의 수필 ‘선물’을 읽고 나서다. 글쓴이의 개성이 가장 강한 장르인 수필을 통해 타자와의 소통 시 ‘관심과 연민’을 중요시하는 그의 따스한 인간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중학 시절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강아지가 밤 동안 울자 강아지 곁에서 함께 날을 지새우며 오히려 강아지가 자신에게 연민의 감정을 선물했다고 밝히는 글쓴이. 나는 그의 인간미 넘치는 행위와 깨달음에 흠뻑 빠져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맹자가 말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측은지심'이랄 수 있는 관심과 연민.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본성인 ‘관심과 연민’의 감정이 거세되었다면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침몰 장소에서 인양된 세월호가 잭크 바지선에 인양된 모습. ⓒ서해해경본부 제공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패배시켜 베트남전을 승리로 장식한 남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자신의 관 속에 자신의 애독서인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함께 넣어 달라 유언했다.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수령이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헐벗고 굶주린 당시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지니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탄생할 수 없었던 명저다. 

이처럼 관심과 연민은 사랑이고 기적을 일으키는 명약이다. 이런 관심과 연민이 거세된 자를 우리는 마땅히 괴물로 불러야 할 터이다.

일국의 대통령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박 전 대통령 그녀에게 ‘관심과 연민’의 몇 조각 부스러기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삼백 여 아이들이 서서히 수장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어찌 일신의 작은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와 일베 회원들은 상처 입은 유가족을 안아주기는커녕 정부의 대처 행태에 분노한 세월호 유가족의 시위를 보상금이나 많이 챙기려는 집단폭력 시위로 매도하며 유가족의 가슴에 깊은 덧상처를 남기지 않았던가.

이는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광포하고도 잔인한 짓거리가 아닌가. 하여 나는 약자에 대해 갖는 자연스런 인간 본성인 관심과 연민이 거세된 박 전 대통령과 일베 회원들을 괴물로 부름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오죽하면 유가족들은 자국의 대통령 대신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인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위로와 위안을 얻었겠는가. 유가족들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 정이 깊은 교황의 손을 잡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이런다고 세월호 특별법이 쉽게 제정될 리 만무하지만 이 하소연에는 자국의 폭력적인 공권력의 높은 벽 앞에 절망한 유가족들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함과 애절함이 담겨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라앉자 삼 년여 만에 세월호가 급작스레 떠올랐다. 삼년 동안 미동도 않던 6천 톤급의 선박이 단 며칠 만에 단박에 떠오른 것이다. 국민들은 해양수산부의 이 같은 저의를 의심스러워 할 뿐이다. 세월호는 박근혜 정권의 침몰증거 지우기란 음모론을 매단 채 3월 말경 목포 신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지난 2015년 4월 15일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전남 진도 동고차도 사고 해역을 찾은 한 유가족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광주인

세월호 진상조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침몰의 원인과 과정 등을 명확히 밝히고, 단순 과실 사고인지, 아니면 기획된 사고인지, 부실 구조의 원인 등에 대한 특검과 국정조사 등을 통한 철저한 재조사가 이뤄져야만 한다. 이것이 정치와 정의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초록 대지를 도화지 삼아 여기 저기 꽃 폭탄을 터트리는 춘삼월에 나는 박 전 대통령과 일베 회원들에게 성석제의 수필 ‘선물’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미물이랄 수 있는 강아지란 작은 존재와 더불어 밤을 지새우는 ‘어린 성석제’가 되길 빌면서.

그것이 타인과의 가장 기본적인 소통방식임을 깨닫길 빌면서. 그리하여 아직도 차마 눈 호강할 마음의 여유 없어 꽃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늦게나마 사과하고 위안의 악수를 나누길 빌면서.

덧붙여 조심스레 빌어본다. 4월 16일을 세월호 참사 국가기념 공휴일로 제정하자고 제안해 본다. 부패한 어른들의 탐욕이 부른 국가적 재앙에 짧은 한 생을 마감해버린 여린 꽃잎들을 추모하고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 곳곳의 안전망을 다지고 확인하는 계기로 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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