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봉열차에 탄 사람들이 이끈 러시아 혁명

1917년 봄,스위스에 인접한 독일 서남부의 작은 국경 도시 고트마딩겐에서 세계역사를 바꾼 기차 한 대가 독일 북부를 향해 출발했다. 창문도 없고 승강문도 밖에서 굳게 잠가놓아 훗날 '밀봉열차(The Sealed Train)'라 불린 이 열차에는 레닌을 비롯한 러시아 혁명가 32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레닌 일행이 이 기이한 열차에 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17년,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서둘러 귀국해 혁명을 이끌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러시아로 돌아갈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1차 대전 중이라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적국이어서 마음대로 독일 국경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레닌은 고심 끝에 독일을 상대로 자신을 러시아로 데려다 줄 것을 요청하는 과감한 정치협상을 벌였다. 결국 프랑스, 영국과 맞서느라 힘에 겨운 독일은 레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동쪽의 적인 러시아가 레닌에 의해 혁명의 늪에 더 깊이 빠져 힘을 쓰지 못한다면 독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역.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레닌이 독일 땅을 지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노동자들한테 퍼뜨려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일이었다. 독일이 레닌에게 내준 열차가 그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도록 밀봉한 상태로 운행된 이유다.

레닌은 이 기차를 타고 스웨덴을 거쳐 러시아에 도착해 그해 10월, 카렌스키가 이끄는 과도정부를 타도하고 혁명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져 소련이 탄생한 것이다.

20세기 인류역사에 거대한 회오리를 몰고 온 러시아 혁명을 이야기할 때 밀봉열차의 비화를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여러 요인이 서로 실타래처럼 얼키고 설키는 중첩과 상호작용의 결과로 성립된다고 볼 때, 아주 사소한 미시적 요소라도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에 있어 레닌이 타고 간 밀봉열차는 지엽적 요소에 불과했으나 실은 혁명의 성패를 좌우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모름지기 혁명은 최적의 시기가 그 성패를 좌우하는 법이다. 레닌이 제아무리 뛰어난 혁명가라 할지라도 그 중요한 순간에 열차를 타지 못했다면 세계의 역사는 지금과 다른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변수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구와 생명체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존재론과 비슷하다고 할까?

레닌은 러시아로 가는 밀봉열차 안, 그 숨 막히는 순간에도 ‘4월 테제(강령)’라는 볼셰비키당의 혁명전술을 작성했다. 그러고 보면 이 밀봉열차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온 레닌이 혁명에 대한 신념을 굳게 다진 의지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기차는 러시아혁명이란 거대한 역사적 격변의 문을 열어젖힌 혁명도구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기차는 훗날 혁명에 저항하는 반혁명 세력을 물리치는 데도 지대한 공헌을 하기에 이른다. 혁명이 종결되었을 때는 드넓은 러시아 영토 구석구석까지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 역할도 수행했다.

볼셰비키가 비록 레닌의 탁월한 지도력에 힘입어 혁명에는 성공했으나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차르(황제)와 귀족세력이 남아있었으며 노선갈등으로 갈라선 맨셰비키가 건재함으로써 갓 태어난 볼셰비키 혁명정부를 위협했다.

게다가 혁명의 불길이 러시아 국경을 넘는 것을 염려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자본주의 열강은 이들 반혁명세력을 지원하고 있었다. 결국 두 세력은 서로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적(혁명세력)백(반혁명세력)내전이다.

백군은 차르 군대의 장교, 기병대, 지식인, 부르주아 등 극우파와 사회혁명당원들이 힘을 모아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반면, 혁명군인 적군은 소수인데다 차르 군대의 패잔병까지 섞여 있는 형편에서 백군과 정면으로 맞서기엔 힘이 부쳤다.

하지만 적군은 통일된 군사력과 철도라는 히든카드가 있었다. 백군으로부터 도처에서 압박을 당했지만 전국의 철도 네트워크를 장악한 적군은 기차를 이용하여 병력을 배치하는 등 기동력을 앞세워 백군의 공세에 맞섰고, 그 중심에는 레닌의 동지 트로츠키가 있었다.

블라디미르 레닌 (Vladimir Lenin).

기차를 이용해 백군의 공세에 맞선 트로츠키의 전략과 전술은 참으로 탁월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 ‘나의 생애’에서 “최전방 지역을 군사 기지와 연결하는 기차 덕분에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고백할 만큼 기차의 뛰어난 군수능력을 이용했다.

그는 레닌이 독일에서 귀국하던 날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열차에 병력과 무기를 싣고 대기했으며, 백군이 공세에 나서자 스스로 방탄열차를 타고 다니며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

트로츠키의 방탄열차는 무선전신시설을 갖추고 무기와 실탄, 의약품과 생필품을 구비한 이동지휘소였다. 그는 이 열차를 타고 무려 2년여 동안 러시아 전 지역을 종횡무진 누비며 전쟁을 독려했다.

트로츠키의 활약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쥔 적군은 1920년 가을 무렵, 끝까지 저항하던 백군을 무력화시켰다. 마침내 러시아 혁명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내전에서 승리한 적군은 기관차에 붉은 깃발을 달고 러시아 방방곡곡을 돌며 사회주의 세상이 도래했음을 알렸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1991년 겨울, 숱한 화제를 남기며 ‘소련’은 해체되었다. 이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러시아혁명을 실패한 개혁으로 만들고 말았다.

소련이 몰락하자 레닌의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뀌고 레닌광장에 세워진 레닌의 동상마저 성난 군중에 의해 철거된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의 시작과 끝을 함께 달린 기차는 아직 남아있다. 레닌이 귀국 때 이용한 기관차는 지금도 페테르부르크 역 유리관 속에 잘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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