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에서 전기오토바이 렌탈 사업을 하고 있는 모쪼는 관광 성수기인데도 작년에 비해 손님이 줄었다고 울상이다. 안되는 영어로 와이 낫? 하고 물으니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지금 미얀마의 여러 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고 외신에 보도가 되다보니 관광객의 유입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어를 읽을 수도, 말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3중고 속에서 그나마 리카인과 까친 지역에서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교전중이라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 3곳이나 된다니. 

ⓒ황정아

땅 덩이가 넓어서 그런가 아니면 남의 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입장이라 그런가 같은 나라 안에서 3군데씩이나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는데도 영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곳곳에서 전쟁 중이라니 무서운 일이고 우리 모두는 안전할 수 있냐고 했더니 모쪼는 이곳은 괜찮다며 웃는다.

미얀마에는 소수 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 수가 무려 135개 민족이나 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민족이 버마족(68%)이고 샨족(9%), 카렌족(7%)등 소수민족이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미얀마이다. 미얀마의 소수민족들의 민족 분쟁은 그 역사가 꽤 깊은데 이것을 이해하려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과 독립 이후의 현대사를 살펴봐야 한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식민지 시절 영국은 북부 산악지대에서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에게 자치권을 주면서 다수 종족인 버마족을 견제하려고 했고 독립 이후 자치권을 가졌던 소수민족들이 그들의 자치권을 요구했지만 중앙 권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불교를 국교화 하면서 기독교등 다른 종교를 믿는 소수민족들을 억누르기 시작하면서 민족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황정아

미얀마의 민족 분쟁중 유독 두드러지는 곳이 리카인 지역이고 리카인의 분쟁은 인권 침해 문제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아왔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리카인 지역은 안다만 해역을 사이에 두고 방글라데시와 인접해 있는 곳으로 소수민족인 리카인족이 주로 살고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는 방글라계 로힝야라는 민족(?)이 같이 살고 있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리카인족은 대부분 불교도이고 소수인 로힝야는 주로 이슬람인데 분쟁의 표면상 이유는 종교 갈등처럼 보인다. 

이슬람 남성이 불교도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불교도 남성들이 로힝야의 마을을 불태우고 로힝야 여성들을 집단 강간하거나 주민들을 살해하면서 보복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한다.(최근에는 로힝야 분쟁에 IS가 개입해 더 복잡해졌다고) 이런 종교 갈등의 성격을 띠고 있는 분쟁은 다른 소수 민족들이 자치권을 요구하는 분쟁과는 조금 양상이 달라 보인다.

내가 만나본 몇몇 미얀마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종교분쟁의 뒤에 군사정부가 개입해 있고 군부의 사주를 받은 일부 군인들이 승려의 신분으로 위장해 종교분쟁을 조장하고 확대시켰다고 말한다. 

ⓒ황정아

분쟁의 실체를 잘 살펴보면, 국내의 자원을 외국(중국)으로 빼돌리는 과정에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그 시기에 맞춰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하고 ‘마바따’라는 정치 승려들의 조직과 활동에 대해 이제는 많은 미얀마인들과 승려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자 하는 시민교육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분쟁 지역의 평화 구축을 위한 시민단체의 다양한 활동이 계속될뿐 아니라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화 교육도 진행되고 있다고도 했다.(물론 소수의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내가 만나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포함한 몇몇 미얀마인들은 로힝야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너무 단호했다. 로힝야라는 존재는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없는 존재를 만들어 미얀마를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

미얀마인들은 로힝야를 인정하지 않고 ‘벵갈리’로 호명한다. 벵갈리는 과거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했던 ‘조센징’ 이라는 의미와 맥을 같이 하는데 벵갈리는 방글라데시에서 불법 이주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시민권이 없고 미얀마 국민일수 없다는 것이다. 

한 활동가는 미얀마에는 인도계, 네팔계등 여러 민족들이 있지만 이들은 인도계 미얀마인, 네팔계 미얀마인이라고 하지 자신들의 이름을 별도로 만들어 미얀마로부터 분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인도적 측면에서 벵갈리는 도울 수 있지만 로힝야는 도울 수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

ⓒ황정아

외국인이 민감한 문제인 로힝야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한다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운 것임에도 (눈치를 봐가며)로힝야 이야기를 꺼내보면 거의 모두가 한결같은 반응이어서 어째서 로힝야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같은 반응과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군사독재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도 로힝야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군사정권의 논리가 시민들 사이에서 그대로 유지, 공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이런 의견을 미얀마인들에는 차마 얘기하지 못 하는 것이 또 이곳의 현실....ㅜ ㅜ )

어찌되었든 로힝야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국민적 정서가 이렇다보니 민주주의와 인권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 여사도 손을 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수치여사는 정권을 잡기 이전에도 그랬고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된 지금도 로힝야의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에 직면하고 있는 중인데 내가 보기에는 로힝야에 대해 수치여사가 개입하는 순간 미얀마 국민들은 싸늘하게 그녀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다 산적해 있는 국내의 도전 과제들을 풀어내지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힝야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수치여사의 처지가 아닌가 싶다.

한국과 미얀마의 현대사를 잠깐씩 보다보면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들이 보이기도 하고 민주화 과정에서 비슷한 상황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게 아닌가 싶다.

ⓒ황정아

분쟁지역의 주민들이 정부군과 반정부군 모두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현실은 6.25전쟁 때, 살아남기 위해 낮에는 국군 만세, 밤에는 인민군 만세를 외쳤다는 우리 부모 세대들의 슬픈 이야기와 닮았고 미얀마 시민들이 집권 여당과 88세대(한국으로 치면 386 세대에 해당)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높다는 점도 닮았다. 

특히, 독재에 대한 과거 청산의 측면에서 보면, 독재 시절의 유산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 한 채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200만 촛불 시민들의 모습에서 미래의 미얀마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친일과 유신독재의 잔당들이 박근혜 정권을 만들었고 그 부역자들이 국가를 말아먹은 한국의 상황은, 미얀마에서도 독재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 한다면(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몇 년 후, 또는 몇 십년 후 지금 한국의 상황이 미얀마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는 점에서 우려스런 지점이다.

더구나 현재 미얀마의 권력구도는 상,하원의 의원 25%를 군부가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고 정부기관의 곳곳에 군부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니.....

ⓒ황정아

지금 미얀마는 차별을 없애고, 평화를 구축하고 인권 증진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들이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중이고 국민들이 군부로부터 정부를 보호하기 위한 감시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힝야같은 특정 이슈에 대해 군사정부 시절의 논리가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는 점은 이해불가의 상황.... 반로힝야에 대한 정서가 혹여 군사독재시절의 잔재는 아닌지, 그것이 아니라면 로힝야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보편적인 인권 보호와 존중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본다.

** 황정아 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올해 3월부터 세계3대 불교유적지 중 한 곳인 미얀마 만달레이주 바간 타운십에서 1년 기한으로 한국엔지오 소속으로 현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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