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촛불 詩' 연재

신화인지 설화인지 촛불바다 출렁이고
석연경
 

그래 신화일지도 몰라
어느 봄 언저리 얼음여왕이 나타나
얼음 조각으로 된 퍼즐을 바다에 던졌지
새순 파릇한 수백 그루 참나무가 수몰되고
순풍 봄 바다에 살얼음이 끼었지
가슴에 박힌 거울 조각을 빼내려
얼어붙은 바다왕국에는
태양왕도 달여왕도 노란리본촛불로 빛났다지

 

아니 전설일지도 모르지
옛날 볕이 빽빽해서 따시던 우리 할매 동네
거대한 철 괴물 보초 세운 눈의 여왕이
허연 찬 서리로 대지를 감전시켰지
백내장 백혈병에 걸린 나무들 중음신으로 떠돌고
전설의 치우 한숙은 촛불이 되었다지
울울창창 초목촛불 거리로 나왔다지

아마 분노로 굴절된 설화일지도 몰라
강철여왕 집으로
얼굴이 발갛고 가시에 긁힌 촛불들이
서로 언 손 비벼주며 울고 가네
피투성이 촛불도 있네
파란 기와가 핏빛 촛불에 곧 눈이 데일 텐데
촛불 강불이 자꾸 불어나는데
눈보라 치고 초가 자꾸 닳아 가도
촛불 바닷불이 어둠을 더 환히 밀고 가는데
경이로워라 강철심장 던지기로
땅뺏기기 놀이 중인 강철여왕
촛불바다 거세게 출렁인다

 

여기는 2016년 지구별 코리아
예쁜 플라스틱 인형 우리 언니
촛불에 녹아 일그러지기 전에
볼이 볼록한 우리 언니
호주머니 커다랗다는 우리 언니
두껍아두껍아헌집줄게새집다오
왕관 없던 예쁜 드레스 우리 언니

 

언젠가 눈 뜨고 흘리던 딱 한줄기 찬 눈물이
뜨거운 촛농처럼 흐르는 날
그 때는 이미 배를 타야할지 몰라 기약 없이
언니언니우리언니새집줄게헌집달래요
활활 횃불이 하늘을 뒤덮기 전 아직은 초저녁
하얀 국화 머리에 꽂고
벌거벗어 부끄러운 우리 언니
눈물 걸음으로 조금은 우아한 맨발로 내려와
촛불바다 향해
삼궤구고두례 오체투지 자벌레가 된대요

 

미래의 오늘
스스로 환한 촛불들이 미소 짓는 봄
농민들이 춤추며 밭을 갈고
학생들이 노래하며 책을 보고
사람들이 제 자리에서 빛나는
참세상 대동세상 꽃길이다
불꽃축제 북이 둥둥 울린다
파란 기와 위 횃불 독수리 한 마리
눈을 빛내며 앉아
무궁화 꽃을 피우고 있다


 








석연경 1968년 경남 밀양 출생.
2013년 《시와문화》 시, 《시와세계》 문학평론 등단
시집 <독수리의 날들>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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