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촛불 산문' 연재

오랜 세월 잊혔던, 그러나 온몸의 피를 뜨겁게 만들던 단어들이 거대한 태풍과 해일로 몰아닥쳤다. 민중 총궐기, 평화행진, 광장, 그리고 횃불…

지난 11월 19일 금남로에서 불타오르던 횃불은 1980년 5월에 처음 시작되었다. 한발 한발 옥죄어오는 계엄령의 공포를, 다가올 군사독재의 몸서리쳐질 악몽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전국 대학생들의 외침을 싣고 전남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그렇게 타오르던 횃불.
 

지난 19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분수대에서 횃불을 들고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민족민주대성회'를 재현하고 있다. ⓒ광주인

그 횃불은 탱크와 총으로 무장한 군홧발에 짓이겨졌고 이어진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간 동안 반란과 폭동, 종북과 내란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추방되었다.

그렇게 영구 추방된 듯 보였던 그 횃불이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광우병 사태 때 다시 한 번, 그리고 간신모리배들의 국정 농단이 전 국민적 분노로 타오르는 현재, 2016년 11월의 광장에서 다시금 타올랐다.

가슴이 뜨거웠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권,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정권, 이들의 득의양양한 여론몰이와 부정축재 앞에서 그저 냉소나 날리며 패배주의에 젖은 채 체념과 무기력으로 지나온 날들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서울의 광화문 언저리 어디쯤에서 ‘자신들이 살고 싶은 나라’를 위해 작은 촛불 하나 켜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을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36년 전 5월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니….”

바로 답이 왔다.

“아냐, 변한 건 많죠. 그때는 광주였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잖아. 엄마는 소녀에서 엄마가 되었고,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있죠.”

짧은 몇 마디에 담긴 통찰력에 가슴이 찡했다.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 그리고 우리가 있다고. 그랬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이와 성별을 넘어 이데올로기와 지역을 넘어 얼마나 많은 촛불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가?
 

19일 광주 4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여학생이 촛불을 들고 있다. ⓒ광주인

내가 든 촛불과 아이들이 든 촛불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며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횃불로 확산되고 있지 않은가? 사적 이익에만 몰두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온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 거대한 빛의 강을 이루지 않았는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무슨 큰 진리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자랑스레 떠들던 인사는 작은 촛불이 들불이 되고 산불이 되어 이윽고는 온 나라를 태우고야 말리란 걸 도무지 모르는 모양이다.

그 불이야말로 땅속 해충이나 병균을 태워 없애 새봄을 맞으려는 농부들의 건강한 의식임을, 태워진 재를 거름 삼아 새싹을 틔우려는 농심의 자연스런 발로임을 알 리도 없다. 그러니 자신이 해충이며 병균이었음을 극구 부인하며 저리 뻔뻔하게 버티는 것일 게다.

한겨울 추위가 닥쳐온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북풍한설을 애타게 그릴, 하여 이 성난 민심의 불꽃이 소리 소문 없이 꺼지길 간절히 소원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만 더 전하고 싶다.

추워질수록 불은 더 강렬히 타오를 것이라고. 몸을 덥힐 최고의 수단이 불인 까닭에, 그리고 광주의 횃불은 바로 그 온기의 전달자일 것이기에…. 

 








** 이진 소설가는 국어국문학 박사. 광주여대 교수. 2001 무등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창)(알레그로마에스토소)(꽁지를 위한방법서설)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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