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어둠 몰아내고 새 아침 몰고 오길

김용국 <정광고> 교사.

나는 요즘 수업시간에 ‘닭’이란 단어를 꺼내지 못한다. 문법 시간에 단어의 실질적 중심의미 부분을 가리키는 어근을 설명하는 예로 무심결에 ‘닭’이란 단어를 예로 들었더니 고1 녀석들이 염려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선생님, 그러다 잡혀가요.”

웬 뚱딴지같은 소리?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왜?”

내 물음에 학생들은 '다 아시지 않느냐'며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눌한 선생쯤으로만 여겼다. 그래서 나는 어눌한 변명을 하며 의뭉스레 겁을 줬다.

“야, 내가 말한 닭은 그냥 닭이여. 근디 느그들이 생각하는 닭이 보통 닭이 아닌 그 닭 같은디? 그렇게 생각하는 느그들이 잡혀 갈 것 같은디?”

그러자 학생들도 너스레를 떨며 의뭉스레 물었다.

“그 닭이 먼디요?”

나는 다시 의뭉을 떨었다.

“이놈들아, 그 닭은 내가 젤로 좋아하는 통닭이제.”

그러면 이 녀석들도 역시 의뭉을 떤다.

“아하, 그 닭이요. 그런 닭은 기냥 콱 모가지를 분질러 가지고 튀겨 부러야 맛있는디요.”

“암만, 그라제. 하하하!”

이렇게 요즘 내 수업 시간은 종종 위험한 줄타기를 하곤 한다. 특히 나는 동물 이름을 들 때는 특히 조심하곤 한다.

12일 저녁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촉구 광주시국대회장에 여학생들이 직접 만든 종이팻말을 목에 걸고 참가하고 있다. ⓒ박시영

그런데 집에 오니 학생들이 내게 말한 “선생님, 그러다 잡혀가요.”란 말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 말을 하던 학생들의 표정 속에 무의식적으로 담긴 공포의 그늘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단어 하나로 한 인간의 삶이 거덜이 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어린 나이에 벌써 내면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꽃다운 방년 청춘들이 자신들이 사는 나라의 표현의 자유는 헌법 21조에 박제된 화석에 불과하다고 느낀 채 자기검열을 하며 낮은 포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사회인가.

학생들에게 내면화된 그 정치적 공포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보여준 민간인 불법사찰, 용산 참사, 쥐 그린 화가 구속, 세월호 사고, 연예인 블랙리스트, 백남기 노인에 대한 검찰의 사체 탈취 시도 등을 보며 자라온 학생들이 국가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감시당하고, 상처 입고, 죽어나갔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고,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권력과 자본 지상주의의 나라. 이런 나라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먼저 사과한다고. 기성세대 어른으로서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도 지금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숲에나 대고 말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말해주겠다.

지금 우리는 ‘이게 나라냐?’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란 건국 이래 최대 민간인 국정농단 사태 및 부패비리에 직면하여 지금 이 시각 국민들은 광화문에 1백만 명이 집결하여 새 시대를 갈망하며 박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촉구하며 촛불을 켜고 있다.

중고생은 말할 것도 없이 초등학생도 집회에서 연사로 나서 박근혜 정권을 손가락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아니꼽게 보는 세력들은 이런 학생들을 보면 학생들이 뭘 알겠냐며 집에가 공부나 하라고 한다.

12일 저녁 5.18민주광장에서 1만여명 광주시민이 참가한 민중총궐기대회. ⓒ광민회 SNS 갈무리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거야말로 살아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체험학습이 아닌가. 직접민주주의적인 민의 수렴이 펼쳐지는 광장, 정의가 불의와 꿋꿋이 맞서 싸우는 현장, 그리고 결국은 승리하고 말 역사적 현장에 대한 목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살아있는 공부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오늘의 이 역사적인 촛불이 보고 싶어졌다. 서울은 못 갔지만 눈앞에서 불타오르는 민주의 성지인 이곳 빛고을의 촛불이 보고 싶었다.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들볶이다 텔레비전을 끄고 어둠이 내린 시내로 차를 몰았다.

5.18민주광장엔 수많은 인파들이 ‘원 플러스 원’으로 손에 손을 잡고 나와 있었다. 그들은 꼭 쥔 촛불에 마음을 모아 대통령도 ‘원 플러스 원’이 되어버린 이 정권의 퇴진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저 촛불들이 모여 이 땅의 어둠을 몰아내고 새 시대의 아침을 몰고 올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두려움, 공포 없이 사랑과 청춘, 평화와 자유를 구가하며 생을 찬미하는 그날이 성큼 다가오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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