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와서 ‘쓸데없는 일’을 했더니 사람도 보이고 별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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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왜 출가하셨어요?” 
템플스테이 할 때마다 궁금한 것을 물으라 하면 꼭 그것을 묻는다. 묻는 사람은 한 번이지만, 답하는 사람은 매번이다. 스님은 난감하나 묻는 사람의 얼굴이 진지하다. 나름 어렵게 꺼낸 것이고, 그렇게 서로 말문을 여는 것이라 답을 안 해줄 수도 없다. 나도 궁금했던 것을 “그럴 땐 뭐라 하십니까?”라고 기대서 물어봤다.
“그냥 인연이고 팔자라고 합니다.”

사문유관四門遊觀, 동에서는 노인을, 남에서는 병자를, 서에서는 사자死者를, 북에서는 승려를 만나, 생로병사의 해탈을 꿈꾸며 성문을 떠났던 29세의 청년을 떠올리면서 물었는데, 싱겁다.  
“스님은 법명이?”
“일학입니다.”
“한 마리 학鶴인가요?”
“하나라도 더 배우라고 해서 일학一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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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열리고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청년이 대학 4학년 때 이곳 반야사로 템플스테이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머리를 깎았던 이야기, 청바지를 승복으로 갈아입고 학생이 행자가 되었던 이야기들이, 산방의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가을밤.  

“우리 세대가 그렇죠. 책과 인터넷을 통해 불교를 만나고, 청화 스님의 책을 읽고, 염불선에 관심이 많았지요. 젊은이에게도 인생은 고해입니다. 졸업과 취업과 돈과 결혼, 누구나 거치면서 모두가 괴로워하는 일상적 통과의례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까? 단기출가를 해보고 싶었어요. 모든 스님이 다 도인인 줄 알았으니까요. 오대산 월정사로 가려고 했는데, 출가비용이 60만 원이었어요. 돈이 없어 포기했죠. 인터넷을 뒤져 보니까 반야사에서 템플스테이도 하고, 출가 체험도 하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전부 무료더군요. 그 길로 반야사에 내려왔죠.”   

행자는 주지 성제 스님을 은사로 수계하고, 일학 스님이 되어 벌써 10년이 흘렀다. 템플스테이로 왔다가 템플스테이를 총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천상 ‘템플’에 ‘스테이’ 해야 할 필연이고 운명이다.
반야사 템플스테이는 유명하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 상품으로 꼽은 템플스테이는 현재 120여 개 절에서 이뤄지고 있다. 반야사는 작년, 재작년 연속해서 딱 6개의 절을 선정하는 최우수 사찰에 꼽혔다. 본사도 아니고, 이름난 사찰도 아니고, 국보나 뛰어난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비결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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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프로그램 없어요. 그냥 편안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뭔가를 안 하는 거죠. 하라는 게 너무 많아요. 공부해라, 일해라, 열심히 해라, 잘해라,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데 우리는 그런 것 안 하고, 그냥 쓸데없는 얘기 합니다. 차담 자주하고, 많이 들어주고. 제 캐릭터가 좀 쉬운 사람처럼 보이나 봐요. 웃기고 만만하고 그렇죠? 하하.”
 
가을바람 불어 마음이 헛헛할 때 절에 가면 좋은 줄 안다. 그런데 스님들 만나 뵙기가 어렵다.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이런저런 속 얘기도 털어놓고, 위로받고, 지혜로운 한마디 새겨들으면 좋으련만, 저기 지나가는 스님의 걸음걸이 빨라 붙들 수 없고, 장삼의 바람 소리만 휭 하고 지나간다.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다. 사람들이 반야사를 찾는 이유도 가까이 앉아 ‘웃기고 만만한’ 일학 스님과 ‘쓸데없는’ 이야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계는 있지만 시간이 없고, 오직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며, 좋은 것, 이로운 것, 유익한 것, 쓸데 있는 것을 찾아 앞만 보고 뛰어간다. 그러다 넘어진다. 넘어져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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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시곗바늘을 정지시키는 것,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뒤를 돌아보고 반대방향으로 걷는 것,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그러니까 가장 쓸데 있는 것은 쓸데 있는 것을 안 하고, 쓸데없는 것을 하는 것이니, 반야사 템플스테이의 역설이 여기서 빛난다.     

산사의 밤은 깊어가고, 무슨 가을비는 저렇게 세차게 내리는지, 적막강산에 오직 빗소리뿐이다. 방에 돌아오니, ‘반야사에 머무는 동안 꼭 해야 할 7가지’가 벽에 붙어 있다.

‘오직 나만 생각하며 혼자 걸어보기, 밤하늘에 별을 10분 동안 봐주기, 핸드폰 끄기, 나뭇잎 만져보고 꽃향기 맡아보기, 나무 껴안아보기, 아무 생각 없이 10분 이상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기, 문수전 올라가 보기.’

그렇다. 전부 쓸데없는 것들이지 않은가! 쓸데없는 것들이 여기서는 가장 쓸모 있는 것들로 환생하고 있다. 방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다가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이 들었다. 창으로 스미는 으스름한 빛과 빗소리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이다. 비가 저렇게 내리면 도량석을 어찌할까 걱정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 세찬 빗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가늘어지더니 결국 끊어지고 비는 소리 없는 보슬비로 바뀌었다. 새벽 5시 3분, 그때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목탁이 걸어 다니는 소리,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고요한 산사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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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고, 스님의 발에 미물이 밟혀 죽지 않도록 하는 경적 소리이기도 하고, 누워 있는 사람을 미안하게 하여 일어나도록 하는 소리다.

도량석이 끝나고 스님이 법당에 들어가 쇳송을 할 때, 5시 13분, 거짓말처럼 다시 비는 후두두둑 소리를 내며 굵어졌으니, 딱 10분을 허락하는 이것은 무슨 조화인가! 

영동 반야사는 충북과 경북의 경계에 있다. 백두대간 줄기인 백화산에서 흐르는 물이 산허리를 돌아 연꽃 모양의 형세를 이룬다. 그 꽃의 한가운데 반야사가 앉아 있다. 신라 문성왕 13년(851) 무염 국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보물이다.

등창이 난 세조가 여기서 목욕을 하여 치료되었고, 그때 ‘반야般若’를 어필로 하사했다고 해서 반야사가 되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대웅전 뒤로 난 산길을 따라 문수전으로 올라갔다. 문수전은 아래로 강이 굽이치는 벼랑 위에 서 있다. 강은 이틀 내린 비로 물이 불어 급하게 흐르고 있다. 백화산 봉우리마다 새벽안개 피어오르고, 골과 능선에는 색이 곱게 단풍이 들었다.

가슴을 열어주는 바람과 맑은 기운들이 지나간다. 흐르는 것들, 난간에 기대어 강물과 바람과 안개가 흐르고 흩어졌다가 모이고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문수전에서 내려와 돌다리를 건너면 한 10분쯤 거리에 관음상이 서 있고 둘레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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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은 포행길이고, 명상의 길이다. 거기 이렇게 쓰여 있다. ‘맨발로 걸으며 낙엽을 밟아보고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어보세요. 괜찮아 고마워 사랑해라고 걸으면서 나에게 속삭여 보세요.’

일학 스님은 토굴을 짓고 있다. 자꾸 초발심이 흐려지고 물들고 나태해지고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아 염불선을 붙들고 천일기도에 들어갈 생각이다. 천 일 동안 템플스테이는 더 넓고 더 깊어질 것이다. 나는 떠나기 전에 “스님에게 템플스테이는 회향廻向입니까?” 하고 물었다.

회향은 배움에서 가르침으로 반환점을 도는 것이다. 스님은 “회향이라뇨? 내가 수영을 못하는데, 물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건져 줍니까?”라면서 웃는다. 웃기고 만만하고, 38세의 눈 푸른 스님을 반야사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이광이는 전남 해남에서 1963년에 태어났다. 조선대, 서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신문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산과 절이 좋아 늘 돌아다녔다. 한때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면서 불교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됐다. 음악에 관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다.

**윗 글은 월간<불광>에 연재 중인 <이광이의 절집 방랑기>를 출판사와 필자의 허락을 받고 재게재한 것 입니다. (www.bulkw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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