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급성신부전…유족·대책위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촉구

지난해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백남기(69) 농민이 25일 오후 1시58분께 숨졌다. 국가의 공권력에 스러진 지 316일 만이다.

서울대병원은 이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백씨가 급성신부전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 전남 보성 농민회 소속 백남기씨가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종로구청 입구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있다. 경찰은 백씨를 구조하기 위해 접근한 시민들과 쓰러진 백씨를 향해 20초간 물대포를 계속 쐈다. ⓒ민중총걸기 투쟁본부

백씨는 지난해 총궐기대회 당일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원 보장’ 등을 요구하다 저녁 6시57분께 서울 종로구청 앞 네거리 차벽 앞에서 경찰이 얼굴 정면을 향해 직사한 물대포에 맞았다.

물대포는 위에서 아래로 45도 방향으로 정조준됐고 백씨는 머리를 숙이면서 바닥에 뒤로 쓰러졌다.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뒤에도 계속 물대포를 쏴 백씨는 1m 남짓 뒤로 밀렸다.

이후 백씨를 구조하기 위해 접근한 사람들과 쓰러진 백씨를 향해 20초 가까이 물대포를 계속 쐈다. 당시 백씨는 이미 의식 불명 상태였고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백씨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외상성뇌출혈 진단을 받고 4시간에 걸쳐 뇌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못했다.

이후 의식을 잃은 채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왔으나 지난 23일부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 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

신장 기능 약화로 약물 치료도 불가능해 위중하다는 의료진 의견이 나왔고 결국 백씨는 자신의 생일 다음날인 25일 오후 1시58분께 숨졌다.

백씨의 장녀 도라지(35)씨와 부인 박경숙씨 등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백씨가 쓰러진 직후 가족과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왔다.

경찰은 물대포 살수와 백씨의 부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며 아직까지 과잉진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백씨 사망 직후 검찰과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유족과 대책위는 “백씨의 사인을 바꾸려는 시도”라며 부검을 반대했다. ‘물대포 직사’에 의한 사망이 확실한 만큼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후 검찰은 “일단 검시만이라도 하겠다”고 요청했고 유족 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검찰과 검시관이 오후 6시20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안치실로 들어갔다.

유족 측은 서울대병원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은 받지만 정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공식적인 장례절차에 돌입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1968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한 백씨는 유신 독재와 군사 쿠데타에 투쟁하다 몇 차례 제적된 뒤 1980년 퇴학당했다. 이후 고향 전남 보성으로 돌아가 농사를 시작했다.

가톨릭농민회에서 농민운동을 하고 1992년 전국 부회장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경숙씨와 자녀 도라지, 두산(33), 민주화(30)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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