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일본 정부와 벌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관련한 협상은 대단히 잘못됐다. 10억 엔 우리 돈 100억 원으로 협상을 마무리 짓고, 이 정도 선에서 해결했다 치고 잊어버리고 넘어가자는 생각이 담긴 협상이라고 본다.

▲ 김선호 전 교장.

우리는 지난 2009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을 결성하여, 잊힐 뻔했던 역사를 들춰내 지금까지 싸워오고 있다. 시민모임이 싸워온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를, 최근 일본 정부와 벌인 위안부 협상과 비교해 보면, 정말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민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일본 나고야 회원들의 20년이 넘는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기각 당했던 일이 있었다. 뒤늦게나마 몇몇 사람들이 시민모임을 결성하고 움직이기 시작 하던 중, 일본 재판정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99엔, 우리 돈 1,000원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을 보고 분노한 시민·학생들이 시민모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시민모임은 일본정부와 전범 기업 미쓰비시를 압박하기 위해 10만 명 서명운동을 벌였고, 원만한 협상을 위해 10만 희망릴레이를 벌이기도 했다.

421쪽에 달하는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협상 자료집>이 이미 역사로 남아있다. 협상의 주된 내용은 ‘역사적 사실 인정’, ‘사죄’, ‘미불임금 및 위자료 등의 금전 지불’, ‘근로정신대 사건의 역사적 기록을 명기하기 위한 기념비 건립’ 등이었고, 협상은 비교적 잘 진행되었다.

마지막 협상에서 미쓰비시가 끝내 “할머니 개인에게는 금전을 지불할 수 없고, 대신 일본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에게 장학금 형태로 지불하면 어떤가?”라는 전혀 명분 없는 카드를 내밀어, 1년 10개월 간 이어온 33번째 협상을 마지막으로 그 협상은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10만 명이 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협상을 벌인 우리 정부에 묻고 싶다. “위안부가 일본군의 성노예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았는가?”, “그 사실을 배경으로 한 분명한 사죄를 일본정부로부터 명확하게 받았는가?”, “보상과 배상금에 대하여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선에서 협상이 이루어졌다고 보는가?”, “적어도 10만평 이상의 부지에 일본 정부의 사죄를 담은 위령탑 건립과 위안부 역사기념관이나 박물관을 구상했는가?” 지금까지 정부의 발표 내용을 보면 위 4가지 사항을 만족시키는 항목이 하나도 없다.

▲ 광주광역시청 앞 평화광장에 세워진 소녀상. ⓒ광주인

우선 100억 원 하나만 가지고 말해보자. 시민모임은 일본에서 3번 다 패소한 재판을 광주로 끌고와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법과 고법에서 모두 승소했다. 지금 대법원에 계류 중이지만, 미쓰비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각각 1억 원 이상을 배상해야 한다.

그러니 10만 명의 위안부할머니들은 적어도 10조원(10만 명×1억원=10조원)은 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치우는 것을 전제로 했다니, 정부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왜 돈이 필요 없으랴만, 사실 90을 넘겼거나 그에 가까운 할머니들에겐 돈보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에 따른 인권 회복과 명예 회복이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죽기 전에 사죄를 받고 그 사죄에 따른 배상금을 당당하게 받아, 만분의 일이라도 원한을 풀고 나비처럼 하늘나라로 날아가고 싶은 것이 이 분들의 소원이다.

독일은 총리가 직접 무릎 꿇고 주변국에 진심어린 사죄를 했고, 90조원에 가까운 배상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선열들은 800만 명 이상이 동원되었고, 국내 징용으로 최소 200만 명, 해외 징병과 징용으로 100만 명 이상이 강제 동원되어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희생되었다. 일본은 배상과 사죄는커녕 진심어린 반성도 없다.

정부는 이러한 일본을 나무라기에 앞서, 할머니 개인의 인격과 인권은 물론 국민과 국가의 자존심마저 팽개쳐버린 100억 원짜리 협상과 관련해,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잘못돼도 너무 잘못된 협상이다. 국격 회복은 고사하고 치욕스러운 협상이다. 정부가 설립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은 화해와 치유의 재단이 아니라, 분노와 상처의 재단이 되어버렸다. 이 협상은 모두 무효로 해야 맞다.

**윗 칼럼은 전교조광주지부가 발행하는 <광주교사신문> 188호에 실린 내용을 재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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