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그림을 통해 바라본 근대사회

19세기 중반의 유럽사회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산업화 기계화 등의 영향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번영의 시대를 구가했다. 기술의 발달은 예술 분야에도 실험적 관심을 유발해 미술계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형식이나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며 고유한 개성을 발휘하고자 했다. 즉 그림의 주제를 신화나 역사적 사건에서 생활주변으로 옮겨오면서 창의적인 작품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화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기차였다. 그들은 낭만적 설렘을 안고 기차에 오르는 대중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유와 낭만이란 새로운 주제를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열차 속 남루한 민중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몰고 온 극심한 빈부격차를 그림으로 비판하며 사회계몽을 부르짖기도 했다.

▲ 기차역(The Railway Station.1862)- 윌리엄 파웰 프리스.

영국의 풍속화가 윌리엄 파웰 프리스의 그림 <철도역>을 보면 수십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정거장 플렛폼에 모여든 사람들을 묘사한 이 그림은 자유를 누리는 도시민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돼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불과 반세기 전 봉건제와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시절이라면 대부분 농노계급에나 해당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시민혁명이 일어나 왕과 귀족이 사라지고 기차를 비롯한 근대문명의 혜택을 입은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시민이 되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록 무질서해 보이지만 도시가 갖는 다양함 속에 익명의 자유로움이 물처럼 스며있다. 한마디로 프리스의 그림에는 구속과 억압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자유와 활력이라는 코드가 넘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차에 탄 사람들의 지치고 고단한 삶의 모습을 켄버스에 담아 지배계층을 비판한 그림도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오노르 도미에가 그린 <3등열차>를 꼽을 수 있는데, 이 그림은 서민이 탄 3등 열차의 남루한 모습을 예리하게 묘사했다.

그림 속에는 거칠고 가난한 서민들이 기차에 탄 승객의 모습으로 나온다. 그들은 기차를 탔음에도 여행자다운 설레임이나 즐거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초점을 잃은 시선에서 삶의 비애마저 묻어나온다. 그들은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늘 소외되고 뒤쳐졌기 때문에 궁핍하고 초라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 <삼등열차> - 오노레 도미에(1863-65) 캔바스에 유채. 65.4 x 90.2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남루한 그들의 소지품은 곤궁한 삶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소품과도 같다. 도미에는 이 그림을 통해 가난하고 미래의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동시에 그들을 소외시키고 빈곤으로 내모는 지배계층을 비판했다. 이 그림은 후세 미술사가들이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는다.

가난한 사람들의 곤궁한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당시 사회구조와 모순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도미에와 같은 화가들은 미술이 단순히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작가 내면의 감성만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 비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두 그림의 대비를 통해 도시의 야누스적 민낯을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당시 도시는 성공한 사람에겐 낙원이지만 낙오된 사람들은 봉건시대의 농노보다 더 비참하게 살아야하는 고난의 땅이었다. 오히려 인간소외라는 전례 없는 고통에 직면해야 했다.

산업혁명이 완결된 19세기 중반, 사람들은 자유와 행복을 찾아 도시로만 몰려들었다. 그러나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 모두가 다 자유와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임금노동자로 전락해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기차역에는 여가가 생긴 부루주아가 몰려드는 반면 도시의 뒷골목은 누추함과 궁핍함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두 화가의 그림이 분명한 대비를 이루며 ‘양극화’라는 요즘의 사회 이슈를 환기시킨다. 프리스는 도시의 풍요를 획득한 자들의 자유로운 생동감을, 도미에는 빈곤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가난한 사람들의 궁한 모습을 화폭에 담음으로써 그 시대에도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심했음을 알려준다.

▲ <생 라자르 역>- 클로드 모네(1877).

그럼 화가들이 이 극단의 주제를 다루면서 왜 기차와 기차역이라는 동일한 장소를 주목했을까?

근대도시의 기차역은 도시의 자유로운 모습을 집약해서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공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지의 세계로 떠남이 예정된 역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사람이 모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유쾌함과 명랑성이 있었다.

반면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며 도시의 모퉁이로 내몰린 가난한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기차와 역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걸인이거나 허름한 3등 열차에 지친 몸을 싣고 도시와 변두리를 일하기 위해 오가는 도시 빈민도 있었다.

기차는 이처럼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많은 화가들의 발길을 부르는 매력적인 장소가 된 이유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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