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미얀마의 바간 지역이다.

바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인도네시아의 보로도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에 속하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약 23만의 인구가 우마차와 자동차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관광지답게 세계 각지에서 여행자들과 불교 성지순례하는 종교인들이 많이 방문한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건조지역이라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가 전지구적인 문제로 대두된지 오래고 미얀마는 이 기후변화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고 있는 지역이라 것이 국제사회의 일치된 의견이라 한다.

대표적인 이상 기후 현상으로 1990년대 이후 나타난 극단적인 기온 상승과 몬순 기간의 단축을 들 수 있다. 특히 바간이 위치해 있는 중부 지역(만달레이주, 사가잉주, 마그웨이주)은 건조지역으로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UN 기구들과 INGO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소속해 있는 한국의 INGO인 푸른아시아는 몽골과 미얀마에 나무를 심으면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주민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이 INGO의 볼런티어로 활동하기 위해 3개월째 바간에서 지내고 있다.

바간에서 보낸 지난 3개월은 그동안 익숙했던 많은 것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싶다.

새로이 적응해야 했던 것들 중 더위는 단연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의 폭염은 34~35도 언저리를 넘나드는 수준이었고 이마저도 ‘살인적인 더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는데 이곳의 더위는 이 ‘살인적인 더위’를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미얀마의 음력 설날인 '띤잔축제'는 4월에 시작되는데 이 축제와 함께 시작된 더위는 5월까지 두 달 동안 어마무시한 위용을 뽐낸다. 거의 날마다 40도~45도를 웃도는 기온에 뜨거운 열풍이 온 몸을 휘감으면 숨이 턱턱 막히고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은 피부 속을 파고드는 느낌이다.

이 뿐인가, 낮에 수돗물을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절대 온수 아님) 퇴근 후 돌아온 양철 지붕 우리 집은 후끈 후끈 찜질방 그 자체이다. ‘더워, 너무~ 더워’를 연발하며 생전 처음 겪어보는 ‘살인적인 더위’속에서 살아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을 무사하게 통과한 상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우기가 시작되어 가끔 보슬보슬 비도 오고 기온도 비교적 선선한 36~39도 사이를 유지 할뿐 아니라 한 번씩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시니 진심 살 것만 같다.

두 번째 적응 목록은 도마뱀, 벌레들과 함께 살아가기. 무심코 커튼을 젖히다가, 화장실 문을 열다가 터져 나오는 으어어어....하는 비명 소리.

아무데서나 불쑥 불쑥 코 앞에 나타나고 창틀이나 벽에 무슨 장식처럼 찰싹 달라붙어 꼼짝 않고 있는 도마뱀은 참 적응하기 힘든 상대다. 게다가 부엌이고 방이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방에 퍼질러 놓은 도마뱀 똥도 스트레스였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그러나 여전히 막강한 강적은 전갈. 전갈은 영화 속에서나 보던 갑각류인데 비가 온 뒤 이 친구가 마당에서 꼬리를 쳐들고 다니는 모습은 공포에 가깝다! 사실, 전갈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전갈에 물려 죽는 장면이 전부이고 영화의 영향 때문에 ‘전갈에게 물리면 죽는다’라는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는데 검색을 해보니 동남아 전갈은 아프리카나 중동 사막의 전갈에 비해 독성이 약하다고 한다.

독성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물려봐서 그걸 증명할 수는 없는 법, 물려 죽기는 싫어 저녁에 문 밖을 나갈 때는 손전등으로 발밑을 확인하고 다니는 습관이 붙었다. 또, 비온 뒤에 나타나는 주먹만 한 바퀴벌레 같은 곤충들 때문에 이곳에서 사는 일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지만 최근에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밝을 때는 내가 집 주인이고 밤에는 너희들이 주인이다. 내가 조심 할테니 제발 눈에만 띄지 말아다오~~그럼에도 힘든 건 여전하다...ㅜ ㅜ

세 번째 적응 목록은 뚜벅이로 살아가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동네 시장도 자동차로 가고 대형마트서 잔뜩 물건 사다 냉장고에 쌓아두고 절반 먹고 절반 버릴 때도 많았는데(마구 사고 마구 버리던 생활을 반성합니다. ㅜ ㅜ )여기서는 오로지 걸어 다니는 것만 허락되었다.

40분 걸어서 출근하고 40분 걸어서 퇴근하고 휴일이면 20분 걸어서 시장가서 무거운 짐들을 메고 들고 다시 20분 걸어서 돌아오는 생활... 더운 여름날 시원한 수박 한 쪽을 먹기 위해 수박 한 덩이를 낑낑대며 들고 집에 돌아올 때면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져서 수박이고 뭐고 내 동댕이를 치고 싶어진다.

쉬는 날, 세계적인 관광지인 바간의 파고다들을 돌아보려면 자건거든 말이 끄는 마차든, 전기 오토바이든 바퀴 달린 뭔가를 타야 하지만 나는 그런 걸 탈 줄 모르거나 너무 비싸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게 없다. 그래서 그 더위 속에서 벌겋게 얼굴 익혀가며 터벅터벅 걸어야만 한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ㅜ ㅜ

지금은 걷는 것도 많이 익숙해졌고 좀 멀리 나갈 때는 현지인들의 교통 수단인 트럭 버스를 이용하는 재능(?)도 생겼다. 또, 넘어지고 깨지면서 자전거도 배워 비틀거리며 가까운 거리를 다니기도 한다.

덤으로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외로움. 혼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인 외로움을 난생 처음으로 겪기도... 그동안 가족을 비롯한 동료들, 친구들, 마을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 속에서 복닥이며 살아오다 사람들 속에서 툭 빠져나온 느낌적인 느낌.. 같이 있는 한국인 동료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덩그런 집에서 느껴지는 적막함이란...

바간이 유명한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70년대의 읍내 비슷한 풍경인지라 외국인인 나는 저녁이면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그저 집에서 더위와 벌레들과 최대로 밀착해서 지내는 시간을 가질 수밖에. 게다가 유행가 가사처럼 혼자 먹는 밥은 어째 그리 퍽퍽하기만 한지....

한국에서 살던 생활과 판이하게 다른 환경 속에서 적응하느라 애를 먹기는 했지만 현지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 모습을 보면 내가 힘들다고 불평해왔던 것들이 투정 아닌 투정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돌 두세 개를 괴어 불을 때거나 화덕에 불 때서 밥을 해먹고 마실 물을 위해 새벽 일찍 또는 밤늦게까지 물지게를 져 나르거나(바간 지역의 물 사정은 매우 나빠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물을 얻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의 시골 마을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마을 발전기를 돌려 하루 2시간 정도만 전기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곳에서 보낸 3개월은 힘들어~!를 연발하며 새로운 환경에 몸과 마음을 적응시키는 기간이었고 알아듣지 못 하는 각종 지명이며 개발협력 분야의 낯선 언어들을 익히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제는 소통되지 않는 언어 스트레스와 맞부닥쳤고 ‘돌아서면 곧바로 잊어버리는 기억력’으로 이곳의 언어를 익혀보려고 애를 먹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안 외워져~를 연발하며 한동안 언어와 씨름하다보면 아주 조금이라도 귀가 트이고 말문이 열릴 수 있겠거니 하는, 참 막연한 기대를 가지며 용감무식하게 해외봉사를 떠나겠다고 마음먹던 그 초심으로 또 한 고비를 넘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자~~!!

** 황정아 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올해 3월부터 세계3대 불교유적지 중 한 곳인 미얀마 만달레이주 바간 타운십에서 1년 기한으로 한국엔지오 소속으로 현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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