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김해 봉하마을에서 보낸 3일
이제부터 시작, ‘잠시 잊고 있었던 다짐을 꺼낸다’

#001

▲ 5월 21일 오전 11시 30분. 우리 일행들은 광주의 참상과 진실을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씨 기념석 앞에서 묵념하며 그 업적을 기렸다.

하루쯤이야. 노무현 대통령 7주기 추모식이 내일 모레, 한 온라인 카페의 광주·전남 회원 몇몇과 봉하마을로 출발했다.

필자를 포함해 5월 묘역을 참배하지 못한 일행이 있어 차량 두 대에 분승한 우리는 망월동으로 간다. 시간 관계상 옛 5.18묘역에만 들른다. 올해는 옛 5.18묘역 입구에 있는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씨 추모설치물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이어진다.

그 봄날 나는 시골 중학교의 2학년생이었고, 신설된 학교 1회인지라 황토벌판인 학교 제방을 입힐 뗏장을 20개씩 학교에 가져가야 하는 숙제를 해야 했다. 친구 둘과 함께 리어카에 과제물을 싣고 학교에 가야 했는데. '폭도'들이 전남 해남의 무기고를 털기 위해 학교까지 가려면 지나야 하는 819번 지방도로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교 상태였고, 우리는 과제물 제출을 포기했다. 당시 819번 지방도로는 광주나 목포에서 해남, 진도, 완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중요도로였지만 비포장 상태였다. 그러니 그러한 정보와 경계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아니었던 것.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전쟁은 쿵-. 쿵-. 쿵-. 멀리서 들려오는 대포 소리로 드리워져 있거니와 중학생인 그 봄날 나의 기억도 그러하다. 이처럼 숱한 사연들을 가진 열사들의 묘역을 오가면서도 참배객들은 저마다의 ‘역사’에 따라 꼭 찾아보는 묘들이 있다.

내게는 이한열 열사의 왼편에 모신 박선영 열사(서울교대 재학중 1987년 자결, 21세)가 그렇고, 김남주(94년 암투병 사망, 48세) 시인이 그렇다. 일행 중에는 이남종(14년 분신, 43세) 열사의 묘에 소주 한 잔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

#002

일정은 오전 11시, 그린장례식장 주차장에 집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망월묘역을 벗어나 호남고속도에 진입한 일행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에서 모였다.

한 회원이 새벽부터 준비했을 김밥과 유부초밥, 다른 회원이 휴게소에서 사온 어묵탕으로 감사한 한 끼를 해결한다. 목포에서 온 3인과 광주에서 합류한 3인 이렇게 6인을 위한 식사가 차려지는 동안 나는 담배 한 개비를 태우러 흡연실을 찾았다. 그런데 결코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만난다.

흡연실 옆, 철재(鐵材)로 만든 휴게소 울타리 건너편에서 몇몇 아주머니들이 뭔가를 판매하고 있다. 크로즈업한 말바우시장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바로 옆의 섬진강에서 채집한 재첩이며 삶은 머위대, 말린 고사리와 같은 특산품을 팔고 있다. 이분들의 ‘고객’들은 울타리 안쪽의 여행자들이다.

‘밀거래’ 현장을 보고 있는 듯 마음이 짠하다. 왜 이래야 하는 것일까?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시인 함민복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시집을 낸 바 있거니와 묘한 경계에 피는 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본인들을 촬영하는 것이 분명한 망원렌즈를 들이미는 것을 보고, 이들이 긴장할까봐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른다. 기습적인 담배값 인상으로 열 받았을 애연가들이 담배 한 개비를 피우기 위해 이곳에 올 것이고, 그들이 이분들의 고객들일 것이니, 고객들의 욱 하는 마음이 구매로 이어지기를…….

#003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창원 어디쯤을 지나는 남해고속도로, 조수석에 앉아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 고압선을 촬영한다.

고풍스런 풍경을 만나면 주위에 전신주나 전선, 비닐하우스와 같은 방해물이 없나 먼저 살피게 된다. 시간여행을 방해하는 피사체는 없는지 등등. 전신주나 전신주와 전신주 사이에 드리워진 전선만 없으면 사극의 한 장면을 촬영하기에 딱 좋은 프레임인데……, 하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깔끔한 사진에 방해물이 되는 전선들에 개의치 않고 촬영하고 있다.

전선과 전선이 서로 엉키면 안 되니까, 일정한 간격으로 네 개의 전선 사이에 설치해놓은 것들에 마음이 끌린다. 같은 길을 가면서 거의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지만 저마다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23일 봉하마을에서는 20대 총선 당선자들을 숱하게 만나겠지.

같은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의정활동을 잘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004

[노무현대통령생가]라는 이정표 하나에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유적지나 관광 명소의 이정표의 배경인 밤색 이정표를 보는데 벌써 눈시울이 젖는다. 드렁칡처럼 여기저기를 오가는 전선들이 복잡다단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005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더: 신고합니다. 저희 왔습니다. 가장 먼저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 아주 익숙한 장면이다. 사진을 다듬다가(트리밍) 평소 같으면 잘라버렸을 부분들을 도저히 자를 수가 없다. 드레스 코드를 검정으로 맞춘 한 여성과 남성이 좌우에 있고, 참배객들을 바라보는 경찰 한 명, 이 순간 이 세 사람을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그 순간을 담는 내가 있고, 뭔가 더 얘기하면 중언부언이 되겠지요.

#006

일행들은 5월 21일 오후 4시부터 경남 김해시 거북공원에서 진행 중인 노무현대통령 서거7주기 추모행사에 참가했다. 김해노사모가 주최하고 유관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다.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김경수 당선자의 인사말, 사회자와 주고받은 일문일답이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행사장 일대에는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은 사진들이 전시 중인데, 내가 꼽은 한 컷이다. ‘시계풀’이라고도 불리는 클로버 꽃으로 엮은 꽃목걸이를 누군가 대통령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에 걸어놓았다.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007

일행들은 김해를 떠나 부산으로 이동했다. 오후 7시부터 부산시민공원에서 '노랑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날 콘서트에는 이은미, 십센치 등 유명 가수들이 왔고 많은 시민들이 관람했다. 객석 중앙 관객들 틈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하여 20대 총선 부산경남 당선자들이 공연을 즐겼다.

“노랑콘서트를 함께 해주시는 부산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친노 가수 이은미입니다. 서거 7주기가 되어야 함께 할 수 있게 되네요. 제가 지금 드린 말씀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알만한 분들은 다 알고 계시죠.” 첫 곡 <어떤 그리움>을 부르는 동안 가수 이은미는 무대 아래 잔디광장으로 내려가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가슴이 뛴다>(2014.3.), <애인 있어요>(2011.6.) 등 이어지는 곡들은 이 콘서트를 위해 만든 것인 양 절절하게 다가온다. 객석 곳곳에서 춤추는 노란 풍선들만이 아니라 조명도 노란색 사용이 잦다. 객석으로 내려온 이은미의 뒤에 서서 환호하는 관객들을 촬영한다.

헤어스타일드 그렇고 오늘 이은미의 의상 콘셉트는 ‘어린왕자’인가? 비록 자리에 맞게 검은색 옷을 입었지만……. 행사장을 벗어나면서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008

5월 22일 아침. 전날 부산콘서트가 끝나고 일행 가운데 셋은 광주로 돌아가고, 자원봉사가 목적인 두 사람과 필자까지 셋은 봉하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늦은밤까지 ‘노삼모’ 멤버들을 만나 전남 담양 '죽향도가'에서 생산한다는 봉하막걸리를 마셨다. 노사모가 아니고 노삼모라고요?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과 가끔씩 만나 삼겹살을 먹는 모임이었노라,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었지만 그들이 서거 이전부터 대통령을 지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 아침, 전국 곳곳에서 온 자원봉사자 몇 분과 묘역 옆 행사장 부근을 산책했다. 묘역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잔디밭이 끝나는 대목부터 저수지가 시작된다. 저수지는 봉하의 숨겨진 절경 ‘자은(子恩)골’ 초입에 있다. 대통령은 생전에 자은골을 ‘봉하제일경’이라며 자랑했단다.

귀한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이곳에 데려오곤 했다는 것, 오시는 분은 따가운 햇살을 피할 겸, 가능한 시간 동안 자은골을 산책해보시기를. 아침 햇살 덕분에 저수지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 모든 풍경들은 쌍을 이룬다.

저수지 주변에는 봉하마을 곳곳에서도 만나는 노랑꽃창포가 한창 피어나고 있다. 노랑꽃창포는 연못이나 습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아마도 이 꽃창포들은 대통령이 떠난 이후에 더 많이 심지 않았을까, 추모의 꽃들 가운데 하나가 된 셈이다.

#009

왼쪽에 저수지를 끼고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자은골로 접어든다. 저수지가 끝난 부분 습지에서 흥미로운 풍경 하나를 만난다. 국화꽃들이 한데 모여 있다. 꽃의 무덤이다. 추모객들이 한 송이씩 올렸을 국화꽃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얼마 전에 버린 것들도 있고. 한두 해 전에 버렸을 국화꽃들이 소멸의 의식을 치르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는 미처 꽃을 준비하지 못한 조문객들에게 국화꽃을 판매한다. 한 송이에 1,000원이었던가. 판매대금은 봉하마을 주민들의 수익으로, 마을 가꾸기에 쓰인다. 이번 7주기 행사가 끝나면 이 꽃 무덤도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추모식 하루 전인 22일에만 봉하마을을 다녀간 추모객이 3만 명이었다고 한다. 제 할 일을 다 한 국화꽃들은 썩고 분해되어 다른 식물의 자양분으로 환생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은 만나고 싶지 않다. 썩지 않는 슬픔이여 안녕!

#010

저수지를 등지고 행사장을 둘러본다. 며칠 전에는 김제동콘서트가 열렸고, 다음날은 추도식이 치러질 무대다. 무대를 바라보아 왼편으로 난 수로를 따라 걷다가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양편에서 대칭을 이루는 식물군을 만난다. 무슨 꽃이 저토록 화사하게 피었을까?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꽃이 아니라 나뭇잎이다. 봄에는 숱한 꽃들이 피어나지만 막 새순을 올린 잎들이 연출하는 연두색 물결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해마다 이른 봄이면 하는 생각인데, 어느덧 이것을 ‘잎꽃’으로 부르기로 했다.

지금은 마른 개울이지만 저수지의 물이 가득 차면 흘러내리는 물이 이곳을 거쳐 마을 앞의 화포천으로 흐르게 된다. 논과 습지를 적실 소중한 자원이다. 두 무더기 잎꽃 사이에 대통령의 묘역이 있다. 저수지에서 촬영한 나무 사진, 올해의 새순이 정말 꽃과 같다.

#011

묘역 입구, ‘노무현대통령 서거7주기 울산추모위원회’라는 명의가 담긴 펼침막을 앞세우고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다행히 계단이 있어 단체사진을 만드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이나 펼침막이 없다면 이곳이 어디이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멀리 대통령의 묘역이 배경으로 보이는 단체사진을 촬영한다면 펼침막은 군더더기가 될 수 있고, 군더더기는 제거할수록 좋다. 사진 속 물 위의 어느 지점이 되겠지만 추모 기간만이라도 촬영자만 오를 수 있는 설치물을 만들어놓을 수는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012

대통령 묘역 건너편 생태연못으로 간다. 예전에는 4~5개의 웅덩이가 있던 자리다. 화포천을 비롯하여 마을 일대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대통령의 노력과 자원봉사자들의 땀이 모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불과 며칠 전에 내민 연의 새싹들이 당차다.

그러나 기존의 넓은 잎은 84년 만의 5월 폭염을 견디느라 기진맥진이다. 물이 풍부한 습지이건만 따가운 햇살을 당해낼 수 없다. 문득 영랑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란 시는 1934년 4월 『문학(文學)』 3호에 발표되었다. 2016년-1934년, 82년의 시간차가 있다. 영랑이 한두 해 전에 이 시를 썼다고 가정하면 84년 전 그해 5월일 수 있다. 진짜로 무더운 5월을 영랑은 고스란히 기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013, 013-1, 013-2

생태연못을 지나니 정자 부근의 그늘 아래에서 다수의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보인다. ‘2016년 5월 22일 논생물 시민조사’가 진행 중이다. 오후 2시 30분에 논에 미꾸라지를 풀고 잡는 행사가 진풍경이라고 해서 기다리는 중인데, 예정된 시간표대로 가고 있지 않다.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난 꽃길을 만난다. 맨 앞의 자색은 수레국화(독일 국화이기도 하다), 그 다음 붉은 색은 꽃양귀비, 맨 뒤 노란색이 금계국이다. 사이사이 연두색의 잎들까지, 네 가지 색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국회 주요 4당을 상징하는 색들이다.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 정의당까지 내일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들 이곳으로 몰려온단다. 초점을 수레국화에(013-1) 꽃양귀비(013-2)에 각각 맞춰 촬영한다. 정체성은 분명히 그러나 상대당의 입장도 배려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펼치기를. 쫌!

#014-1, 014-2

동쪽으로부터 봉하마을에 진입하는 길, 이른 아침부터 추모객들의 차량으로 주차장이 되어 있다. 도로 아래에 노란 금계국이 가득 피어난 꽃길이 있다는 것을 마을을 둘러보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바람이 불고 노랑 바람개비는 노랑꽃에 묻힌 채 돌아가고, 연인의 마음을 얻는데 2프로쯤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이 길에서 프러포즈를 해보면 어떠할까?

#015-1, 015-2

마침내 논생물 시민조사 행사의 하이라이트, 논에 풀어놓은 미꾸라지와 민물장어와 메기를 잡는 행사다. 생에 처음으로 미꾸라지들은 하늘을 날고(015-1), 사람들은 논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풍경은 상상하시라.

#016-1, 016-2

5월 23일 아침, 추도식이 있는 날, 하루 이틀 전 주말에 봉하마을 찾은 추모객들이 많아 과연 오늘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찾을까, 행사 관계자들은 신경이 날카롭다.

점심 한 끼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예년의 상황을 반영하여 식수 인원을 1700명으로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플러스 알파로 200인 분을 더 준비했지만, 오후 두 시 무렵 배식을 끝내야 했다. 더 이상 밥이 없습니다) 김해시 내외동에서 바보주막을 운영하는 부부를 포함 자원봉사자들은 새벽 두 시부터 170kg의 돼지고기를 삶아, 수육을 만들어야 했다.

이른 아침 묘역으로 나간다. 국화 한 송이를 가방에 꽂은 중년 사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묘역 앞으로 다가가 헌화하고 묵념하는 그 모습을 연이어 촬영한다. 헌화를 위해 뒤편 배낭에 꽂은 국화 송이를 꺼내는 장면에서는 화살집에서 화살을 뽑는 전사의 풍모가 느껴진다.

봉하마을에는 단체로, 가족 혹은 지인들까리 오는 분들도 많지만 ‘나홀로’ 추모객들도 적지 않다. 저마다 어떤 사연을 가진 것일까?

#017-1, 017-2

어제 논생물조사가 진행되던 습지로 간다. 동쪽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 가드레일 아래에 넝쿨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데, 저마다 만개하여 장관이다. 마침 마을 곳곳에 야생화를 심고 가꾸는 분을 만나 이름을 물으니 마삭줄이란다.

‘마삭(麻索)’이란 원래 삼으로 꼰 밧줄을 뜻하는 삼밧줄의 한자말. 마삭줄은 삼밧줄 같은 줄이 있는 덩굴나무라 하여 붙여진 이름. 그러나 마삭줄의 줄은 간단한 밧줄로 쓸 수는 있지만, 삼과 비교할 만큼 튼튼한 덩굴은 아니다. 정보를 검색하다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

“농산물을 수확하여 옮길 때는 물론이고 산에서 나무 한 짐을 등에 지고 내려오려 해도 튼튼한 줄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출세를 하고 큰일을 하려면 ‘줄’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전관예우가 어떻고 고액의 수임료가 어떻고 정치권은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 그런 ‘줄’ 때문에 시끄럽다.

#018-1, 018-2

마삭줄을 촬영하다 익숙한 향기를 맡는다. 마삭줄은 일부이고 도로 가드레일 밑에는 인동초 덩굴이 수십 미터 띠를 이루며 자라고 있다. 관계자에게 물으니 대통령께서 고향에 돌아와 가장 먼저 심은 식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인동(忍冬, Lonicera japonica)은 줄기가 마르지 않고 겨울을 견디어내 봄에 다시 새순을 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금은화라고도 불리는데 흰 꽃과 노란 꽃이 한꺼번에 달리기 때문이다. 인동초는 고난의 길을 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남 김해 고향마을에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이 인동초를 심은 뜻은 무엇일까? 은색은 흰색의 소복을 떠올리게 한다. 금색은 노란색, 길 건너 묘역의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려던 두 대통령의 뜻을 우리가 제대로 이어받고 있는가 돌이켜봅시다.

두 대통령을 잇겠다면서 서로 갈등하는 지금, 우리들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반목하고 갈등했어야 했는가.” 이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모식에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행한 추도사의 일부다. 현 정부와 여권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여소야대의 국회를 만들어주었지만, 과연 정권교체를 이루기까지 순항할지에 대해서 물음표를 찍는 사람이 다수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동초를 심은 뜻은 무엇일까?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인동초의 또 다른 이름은 겨우살이덩굴이다. ‘겨우’ 사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019

 

이번 7주기 추도식에서 언론의 최대관심사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같은 당 국회의원들의 행사 참가였고,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였다.

국민의당 대표를 태운 버스가 VIP들을 위해 마련한 봉하방앗간 주차장에 도착하였지만 안철수 대표와 몇몇 의원들은 끝내 하차하지 않았다. 주차장 출입을 직접 통제하는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곁에 머물며 이 버스가 묘역입구까지 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다른 정치인들처럼 버스에서 내려 왜 당당하게 사저까지 걸어가지 않는 것일까? 노무현문화재단 측 관계자가 국민의당 대표 일행을 태운 버스에 올라 묘역 입구로 차량을 안내했다. 이후 과정은 실시간 영상으로 많은 분들이 보았을 것이다. 사저 입구에서 유가족들, 행사의 내빈들과 만나 추도식장까지 가는 길, 취재 열기는 정점을 찍었다.

경호원과 경찰들, 우산까지 펼쳐 보호막을 만들며 입장해야 하는 것일까? 23일 아침에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혼신을 다한 작품들을 따라온 배우들이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것처럼, 박수와 카메라 스트로보의 불빛 세례를 받으며 당당하게 입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

#020

추모관에서 만난 대통령, 노란 리본으로 형상화했다. 21일 부산콘서트에서 들은 이은미의 노래 한 자락이 되살아난다. “잃어버린 것들이 이제(서)야 아프다. 목이 메어온다. 잠시 잊고 있었던 다짐을 꺼낸다. 이렇게 우리의 상처는 아물어간다. 다시 꿈틀거리는 사랑이 되었다. 가슴이 내 가슴이 뛴다.”(이은미 <가슴이 뛴다> 중)

/사진.글: 곽진영 <인문의 향연> 편집주간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