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미얀마를 간다고? 그것도 1년씩이나?
남편이랑 애들은 어떡하고? 뭐? 너만 간다고? 왜 너희 집 무슨 일 있냐?

대단하다. 1년씩이나 가 있겠다고 맘 먹은 너도 대단하지만 니 가족들이 더 대단하다.
부럽다. 갈 수 있을 때 가야지, 먼저 가서 내 자리도 좀 알아 놔라...

1년간 미얀마에서 해외봉사를 하겠다고 하자 주변의 지인들이 보인 한결같은 반응들이었다.

▲ ⓒ황정아
▲ ⓒ황정아

영어도 안 되는 50대의 초입의 주부가, 가족을 두고 1년씩이나 봉사활동을 하러 떠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이 같은 주변의 반응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미얀마행이 확정되고 나서 또 수없이 들었던 말,

‘미안 미안 미얀마는 언제 가시나요?’

모 코미디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지난 몇 달간 ‘무모한 떠남’을 준비했었다. 영어도 안되고 맨날 아이들과 충분히 함께 있어주지 못 해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있으면서 나는 왜 미얀마로 떠나려고 한걸까?

미얀마가 사막화 지역이라는데 지구 시민으로서 사막화 방지 활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자?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3년 전, 아들과 함께 떠났던 인도 여행의 경험이 컸었다.

여성단체 활동을 마무리하고 떠났던 한 달 동안의 인도 여행은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 한채 살아왔구나, 내가 모르는 세계가 경험했던 세계보다 훨씬 더 크고 넓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 ⓒ황정아

여행기간 내내 보았던 노소를 막론한 구걸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책과 자료에서 간혹 보았던 3세계 빈곤 여성들의 모습인가? 헷갈려하면서 자식 키우는 어미의 입장인지라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구걸하는 이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걸렸었고 푼돈 적선이 이들에게 뭔 도움이 될까, 이게 잘 하는 짓인가를 또 헷갈려하면서 지갑을 열곤 했었다.

여행 이후 근 3년 정도,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3세계 빈곤 여성들의 문제를 좀 더 공부하기도 하고 지역에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를 모색해 보기도 했지만 그 실마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었다.

그러다 지난 해 여름, 선배를 따라갔던 술자리에서 우연히 미얀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 인연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로 마음이 가는대로, 절차가 진행이 되는 대로 물 흐르듯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미얀마에서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 ⓒ황정아

그리고 미얀마에서 2개월째. 날마다 40도를 웃도는 막강 더위와 바퀴와 전갈과 도마뱀을 비롯한 각종 벌레떼들, 외로움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람은 살고 있고 안 통하는 언어는 손짓 발짓으로, 각기 자기 나라 말로 자기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통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미얀마행을 결정하고 나서 가장 큰 걱정은 아무래도 가족들 일 수밖에....당연히 가족들이 반대하면 미얀마행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가족들은 ‘엄마가 하고 싶은 일 해야지’, ‘당신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며 나의 결정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었다.

▲ ⓒ황정아

일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 한게 살면서 늘 맘에 걸려 있었는데 다시 또 엄마의 외유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결정을 인정하고 존중해준 가족들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출국을 준비하는 동안 가족들과 훨씬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출국이후에는 거의 날마다 인터넷 메신저로 통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전과는 다른 가족 유대를 쌓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또 다른 감사한 이들은 시민사회단체의 선.후배들과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들... "1년씩 집 떠나있는 어려운 결정을 다 했다"며 건강히, 좋은 경험 쌓고 오라는 따뜻한 격려들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 ⓒ황정아

드디어 출국일, 인천 공항 가는 버스에서 결국 눈물을 보였다. 떠나는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고 떠나보내는 가족들은 걱정과 우려로 복잡한 표정.... 살아올지 죽어서 올지 모르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마냥 착잡하고 복잡한 심정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미얀마에서 2개월째. 날마다 40도를 웃도는 막강 더위와 바퀴와 전갈과 도마뱀을 비롯한 각종 벌레떼들, 외로움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사람은 살고 있고 안 통하는 언어는 손짓 발짓으로, 각기 자기 나라 말로 자기 말을 하면서도 말이 통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어떤 인연의 끈이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 1년의 미얀마 생활이 스스로 부과한 숙제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내가 원했던 일이니만큼 더위와 벌레들과 외로움과 제대로 마주해 볼 참이다. 내가 원하던 현장이 곧 이곳이리니...

** 황정아 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올해 3월부터 세계3대 불교유적지 중 한 곳인 미얀마 만달레이주 바간 타운십에서 1년 기한으로 한국엔지오 소속으로 현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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