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중 선생이 노랫말을 쓴 동요, ‘기찻길 옆’에는 어린이의 꿈이 달린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기찻길 옆 옥수수 밭 옥수수는 잘도 큰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기차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 큰다.

동요, ‘기찻길 옆’ 가사 전문이다.

▲ 윤석중 전 새싹회 이사장(아동문학가).

가난했던 시절, 기차는 이렇듯 정겹게 우리 어린이들의 힘나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귀엽던 아기들은 시끄러운 기차소리도 자장가로 들으며 무럭무럭 자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기차를 싫어한 어린이를 본 적이 없다. 덕분에 KTX 제복을 입고 기차를 오르내릴 때마다 내게 눈길을 주는 사내아이들의 표정에서 마치 어린 날의 나를 보는 듯한 기쁨을 맛본다.

일제 강점기,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윤석중 선생은 서울과 부산을 완행열차로 오가며 노랫말을 구상했다. 지축이 흔들리는 요란함에도 아랑곳 않고 쌔근쌔근 잘도 자는 아기를 묘사한 이 가사에서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기차에 대한 정서를 엿볼 수 있다.

기차소리가 요란한데도 어찌 아기가 잘도 잘 수 있을까? 요즘 부모들 같으면 아기가 잠에서 깬다고 민원을 제기하며 야단법석을 피울 일인데도 노랫말은 이를 너무도 태연하게 묘사하고 있다. 기차에 대한 근원적 호감이 배어있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노랫말이다.

옛 사람들의 정서에 파고든 기차는 교통수단이자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소통창구였다. 지금처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에선 이동의 자유가 주는 혜택을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요가 발표된 시절, 어느 누구도 기차를 타지 않고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에 기차는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존재였다. ‘기찻길 옆’이란 동요가 삽시간에 퍼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널리 사랑 받는 이유라 하겠다.

훗날 우리는 이 동요를 항일동요로 생각하기도 했다.

노랫말 중 아기와 옥수수는 억압받는 우리 민족을, 기차는 일제를 상징함으로써 일제의 압제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민족의 꿋꿋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 것도 같다. 하지만 이 동요가 발표된 시점이 해방 이듬해인 1946년이고 작사가인 윤석중 선생이 생전에 했던 말씀을 생각하더라도 이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선생은 어른이 슬프다 해서 아이들까지 슬프게 할 수는 없다며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가사와 재미있는 말을 사용해 동요를 지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뭐 그리 대수랴?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노래도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듣는 이의 몫이 된다. 그러므로 특히 어린이의 마음으로 이 동요를 부른다면 어떻게 여기든 그것은 자유다.

‘칙칙폭폭’이란 네 음절의 의성어는 이후 기차가 내는 모든 소리를 대표하면서 기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여기서 ‘칙칙’은 증기기관차의 피스톤에서 증기가 새는 소리고 ‘폭폭’은 석탄을 태운 연기가 연통을 통해 빠져나가는 소리다.

▲ 전남 곡성군이 운영 중인 옛 곡성역 증기기관차역에 어린이들이 기차를 타기 위해 오고 있다. ⓒ전남 곡성군청 제공

말이 사람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 할 때 우리는 기차라는 단어보다 오히려 ‘칙칙폭폭’을 통해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서정을 더 깊게 공감하며 맛본다. 언어가 주는 자유와 상상력으로 기차에 담긴 서정성을 마음껏 누리는 기쁨일 터다.

혹시 기차에의 향수로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오늘도 기차역을 서성거리며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어릴 때 불렀던 이 동요의 공로로 치부해도 맞지 않을까?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우리의 몸은 지금 너무나 편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동심의 세계를 잃어가면서 뭔가 영혼이 편치 않는 ‘앓음’을 앓고 있다. 치유의 삺을 위해 우리 어른들까지 동요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아직 동요를 부르고 꿈꾼다는 것이다.

단순하고, 순수하며 맑은 샘물 같은 영혼을 가진 어린이들은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아름다운 리듬에 실어 노래로 부른다. 그런 점에서 미지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달리는 기차는 동심이 머물기에 좋은 공간이다. 날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기차는 별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 목적지가 될 수 있을 것임으로.

어린이날이 들어있는 계절의 여왕 5월, 어린이를 위한, 가족을 위한, 여러 가지 캐치프레이즈가 난무하고 그에 따른 행사도 참 많다. 다 접어두고, 이번 달 오월에는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기찻길 옆’을 목청껏 불러보는 건 어떨까?

아이들에게도 그 어떤 선물보다 추억을 저축하는 놀이가 아닐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대라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그에 맞는 밝은 노래를 불러야 나라와 미래가 밝아진다고 믿었던 윤석중(1911~2003)선생. 그를 추모하며 오늘 조종간을 잡은 손으로 ‘기찻길 옆’이란 동요를 반주한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노래에 ‘칙칙폭폭’ 삶의 미래가 씩씩하게 달린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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