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이합집산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지난 1월 31일 서울에서 ‘사회변혁 노동자당’이 창당대회를 가졌다.

한국 노동운동이 낳은 ‘또 하나의 결과물’이지만 정권의 탄압과 현실 노동운동의 약화된 지형은 그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최대 목표중 하나인 노동자 정당을 결성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기에 이번 기회에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운동을 잠시 짚어본다.

노동조합의 특성과 한계

▲ 정찬호 노동활동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이해를 대변해주는 가장 큰 무기는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정치, 종교, 성별, 인종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가장 넓은 대중을 포괄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등 소속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해를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권력 장악이라는 정치문제에 있어서는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노동조합의 임금인상만으로 사회를 바꿔보려는 ‘생디칼리스트운동’이 있었지만 특별한 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노동계급 독자 정당의 등장까지

초기 자본주의시대부터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본가 진영은 노동자를 통제하고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하며 법과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내며 공권력은 그 집행도구가 된다. 자본진영이 장악한 정치에 의해 노동자들의 삶은 좌지우지되고 생존 요구는 자본과 공권력에 의해 차단당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여러 정당들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독점자본가 진영(한국식 재벌정당)과 중소자본가 진영(자유주의 정당)이 정치를 선점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 권력을 장악하든 노동자들의 요구는 짓밟히거나 무시된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의 대안 찾기가 진행되며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정당’이다. 역사적 경험과 조직력이 미숙한 초창기에는 노동계급의 독자 정당은 등장하지 않으며 노동자들 다수는 자유주의 정당을 지지하게 된다. 일부 국가들에서 자유주의 정당들은 노동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세력들의 본성은 결코 가려지지 않는다. 사회 체제는 그대로 둔 채 자신들의 지분만을 확대시키고 노동자들의 요구는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떡고물 몇 개만 던져준다. 허나 그 마저도 경제위기가 도래하면 독점자본과 한 통속이 되어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정찬호 제공

이처럼 지지와 배신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거친 뒤에야 노동자들은 ‘믿을 놈 아무도 없다. 우리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라는 자각이 발생하며 본격적인 정치세력화운동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을 뛰어넘어 노동당, 사회당, 진보당, 공산당, 인민당, 민중당 등을 창당하여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진지를 구축해왔다. 이들 정당들은 각 나라의 투쟁경험과 자체 역량에 따라 참정권운동에서부터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그리고 사회혁명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낸다.

한국노동운동사에 등장한 노동계급 정당들

우리나라 노동계급의 초창기 정당은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조선공산당이 대표적이다.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탄압 속에 3차례 와해되기도 했지만 해방정국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이후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조선노동당으로 개칭) 이들의 활동은 미군정과 이승만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며 6·25전쟁을 통해 대부분이 죽임을 당하거나 월북하여 사라지게 되고 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 정당이라는 진지는 송두리째 뽑히게 된다.

6.25의 상흔은 ‘노동자 = 빨갱이’라는 레드컴플렉스를 낳았고 반공법 국가보안법은 노동계급의 사상과 정치세력화의 싹을 아예 제거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에 거대한 자양분을 공급해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은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운동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한편 사회주의를 모토로 하는 정치조직들 또한 영향력 확대와 정치정당 건설을 추구해보지만 정권의 탄압과 노선의 차이 등으로 소수화 되어간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은 정당 지지율이 10%를 넘고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일부 후보가 당선되는 등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며 무시 못 할 정치세력으로 급부상 한다. 이는 6.25 이후 레드컴플렉스를 뚫어낸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일대 전진이기에 충분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시련

그러나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는 거대한 암초를 만난다. 노동운동은 구소련 동구권 해체 직후인 1990년 중후반부터 노동계급의 사상이 퇴락하고 관료개량주의라는 독버섯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정치세력화운동은 합법의회주의와 파벌패권주의로 물들어갔고 ‘야권연대’라는 미명하에 계급타협이 진행되는 등 노동자들의 지지 또한 서서히 이탈해 갔다.

‘때는 이때다’라며 정권은 종북몰이를 앞세워 통합진보당까지 해산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일부가 정의당을 만들었고 노동자성을 강조하며 노동당을 등장시키지만 이들이 ‘노동계급의 정당이다’는 대중적인 신뢰와 지지는 아직은 약하다. 군소 정치운동 세력들 역시 국가보안법의 사슬에 묶여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작금의 상황은 1987년 이후 성장해온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운동의 혹독한 시련기임이 확실하다.

호남에서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자유주의 야당세력들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 된다’는 호남에서 지난 수십 년간 맹주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노동운동의 결과물에 의해 등장한 노동계급의 정당과는 티끌만큼의 연관도 없다. 그들이 탈당사태를 통해 호남의 맹주 자리를 다투지만 호남 노동자들은 ‘선거용 표 찍는 기계’로 간주 될 뿐이다.

ⓒ정찬호 제공

지난 시기 호남의 노동자들은 DJ와 노무현에게 몰표를 던져주었고 뭔가 바뀌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산 그리고 변함없는 노동탄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누가 노동자편인가?’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각종 공직선거에 노동자 후보가 고정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방선거의 경우 적잖은 후보가 당선되고 정당득표율은 20%대에 육박했다. 지금의 시련기를 벗어나 전국적인 지형만 갖춰진다면 호남 노동자들이 정치적 분출은 여느 지역보다도 강력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급의 정당만이 대안이다

힘이 약하다고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대다수 노동자 민중을 고통으로 내모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버티고 있는 한 노동계급과 인류의 미래는 그 어느 것 하나도 기약할 수 없다. 괴물과의 투쟁 그리고 새로운 미래, 인류 역사는 이 과업을 온전히 노동계급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똘똘 뭉친 노동계급의 정당만이 도달할 수 있다.

새로 출범한 ‘사회변혁 노동자당’ 그 갈 길이 멀고도 험하지만 노동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그 간 한국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 도상에서 발생한 각종 한계와 과제를 돌파해내기 바란다. 그리하여 괴물에 맞서는 선봉부대로 우뚝 서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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