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소리 귀 기울일 때 애국심 절로 개화

이제 대한민국 길거리에선 애국가가 흘러넘치겠다. 특히 공무원 시험을 염두에 두고 있는 청년들 사이에서 그렇다. 지금쯤 한창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을 내 제자들에게도 법조문이나 영어 단어보다 애국가 4절이나 먼저 암기하라고 전화해야 할 판이다.

이는 지난 1월 26일 투철한 애국자이신 박근혜 대통령의 위대한 영도력을 받들어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애국자이신 존경하는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직자가 지녀야 할 가치로서 애국심과 책임성, 청렴성 등을 포함시킨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고 웃긴 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도덕성, 투명성, 공정성, 공익성, 다양성 등과 더불어 민주성까지 당초 개정안 원안에 있던 공직가치들까지 쏙 빼버렸다는 것이다. 아마도 헌법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란 걸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연히 민주주의가 가나안의 젖과 꿀처럼 달콤하게 넘쳐흐르고 있어서일 게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서로 작당하지 않고 비판과 견제를 통해 국민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모든 권력 창출의 기반인 국민의 기본권은 존중되고 있고, 국민의 의사가 잘 반영되는 대의정치가 활짝 꽃피고 있어서일 게다.

이렇게 잘 굴러가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에도 부족한 게 있었나 보다. 애국심이 말이다. 국민들은 뭐가 부족하다고 이 정권 내내 거리로 뛰쳐나와 경찰봉과 물대포에 맞선단 말인가. 세월호 4·16 참사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 시위를 하고, 누리과정 예산의 국가 지원을 요구한단 말인가. 4대 비리 하나 없어 국회 인사청문회를 가볍게 통과한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이 보기에 이런 행동들은 분명 애국심이 없어서다.

이런 국민들이 선량한 국민인 척 꼭 세금은 꼬박 꼬박 잘 낸다. 정부도 애국심과 세금은 별개라며 이런 국민들의 세금은 꼬박 꼬박 봉급과 성과급, 업무추진비 등으로 잘도 받아쓰시니 아이러니다.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더러워서 이런 국민들의 세금은 면제시켜 버리겠다.

그렇다면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유튜브를 뒤져봤다. 중2 도덕 교과 강의 동영상에선 “애국심이란 국민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나라를 사랑하며, 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라 정의하고 있다. 위의 시위자들에게 심정적 동조를 보내고 있는 나는 이 정의를 기준으로 나의 애국심에 대한 자아검열을 해봤다.

우선, 국민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느냐의 여부다. 2012년 한일월드컵 때 거리응원에 참여하였고, 쇼트 트랙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는 걸 보면 이 기준에 부합한 것 같다. 둘째, 나라를 사랑하느냐의 여부다. 우리나라의 경기 침체를 걱정하고, 대살육으로 이어질 전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걸 보면 이 기준에도 부합한 것 같다. 셋째, 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느냐의 여부다. 교사로서 내 직분에 맞게 가급적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려 했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에 노력했고, 세금 꼬박꼬박 냈으니 이 또한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 것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나는 이 동영상을 통해 식견 하나를 넓힐 수 있었다. 바로 애국심에도 ‘잘못된 애국심’과 ‘바람직한 애국심’이 있다는 걸 알 게 됐다. ‘잘못된 애국심’은 독일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 같은 편협한 국가주의,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자국 이기주의, 사대주의였다. ‘바람직한 애국심’은 인류 보편의 가치와 조화된 애국심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분별력 있는 애국심을 가리켰다.

나는 이를 통해 공직가치로 제시된 ‘애국심’은 상당히 추상적이라 그 범위를 가늠하기 어렵고, 헌법에 보장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걸 알게 됐다. 즉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애국심은 ‘잘못된 애국심’ 중 나치즘이나 군국주의를 야기할 수 있는 ‘편협한 국가주의’의 발로임을 알게 됐다. 이를 기화로 곧 중학생이 되는 아들 녀석을 나 같은 무식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도덕 시간에 졸지 말라고 훈계 좀 해야겠다.

애국심이란 건 절대 강요한다고 해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진 척’은 할 수 있을 뿐이다. JTB 손석희 앵커가 말했듯 높은 공직에 오른 4대 의무를 결여한 사이비 애국자들도 얼마든지 애국심을 ‘가진 척’ 할 수 있는 것이다.

애국심은 국가와 사회가 국민으로서, 개인으로서 나를 인정해 주고 공동체적 동질감을 가질 때 절로 이는 것이다. 애국심은 이마에 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거창하지도 않다. 묵묵히 4대 의무 지켜가고, 쓰레기 분리수거 잘하고, 줄서서 차타고, 비뚤어지고 역행하는 사회를 위해 가끔은 쓴소리도 하는 게 바람직한 애국심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제왕적 정부처럼, 군국주의 정권처럼 국민의 애국심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강요된 애국심을 통해 언론과 국민의 입을 막으려 들지 말아야 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수용하고, 겸허히 낮은 자세로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상처 입은 자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 이럴 때 애국심은 절로 개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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