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누리과정 예산 책임 교육감들에 떠넘겨
“내 탓이오!” 인정할 때 예산 협의 “급물살”

누리과정(만3~5살 무상교육) 예산 편성을 놓고 ‘보육 대란’ 운운하며 정부와 지자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몇몇 학부모단체들은 잇따라 규탄 기자회견을 열거나 해당 시·도교육감을 고발하면서 조속한 누리과정 예산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 김용국 정광고 교사.

모 학부모 연합은 어린이집은 교육기관이 아니라며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는 소위 진보 교육감들의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며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의회에 누리과정 예산안을 제출하도록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꼬리를 마는 지자체와 교육청도 있다. 경기도는 12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개월분 910억 원을 담은 수정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수원시, 평택시는 물론 전남도교육청도 누리과정 예산을 서둘러 편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광주어린이집연합회도 장휘국 교육감을 광주지검에 1월 11일 고발한 상태다. 누리 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 혐의로 말이다.

연합회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은 무상보육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상 보통교부금에 의하도록 하고 있다."며 "교육부장관이 교부한 교부금으로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집행하는 시·도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집 지원예산 729억 원을 책정하지 않고 유치원 지원예산 598억 원을 책정한 장휘국 교육감은 연합회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고발은 정당한가.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 잠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제1조를 살펴보자.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제1조(목적)는 “이 법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그 소속기관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설치·경영함에 필요한 재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가 교부하여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쓰여 있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어린이집을 ‘보육기관으로 볼 것이냐, 교육기관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되면 자연히 누리 과정 예산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도 얼음 녹듯이 풀릴 것이다. 하지만 이 판단은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이를 놓고 아직까지 4년 넘게 유권해석을 달리해 오고 있다.

하지만 법적 지식과 복잡한 법리에 아둔한 나로서는 쾌도난마식으로 쉽게 결론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성문법제도를 채택하고 있기에 현재 법에 근거하여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현행 영유아보호법은 어린이집을 보육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이 자명하다.

고로 어린이집은 교육감 소관 업무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누리과정 예산 파문의 잘잘못을 엄밀히 따지자면 잘못은 정부에게 있다. 정부는 그저 막연하게 “어린이집도 보육뿐만 아니라 교육도 하고 있으니까 교육기관이자나.”라고 코흘리개처럼 억지떼를 쓰며 적반하장 식으로 큰소리치며 그 책임을 교육감들에게 떠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편승해 각종 단체들도 상대적으로 대들기 쉬운 교육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정작 그들의 손가락이 향해야 할 곳은 정부가 아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저출산 극복 해결책의 하나로 5살 이하의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대선에서 당선된 이후인 2013년, 전국시도지사 간담회에서도 '보육사업 같은 전구 단위의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발언했다.

▲ 장휘국 광주광역시교육감이 전국 시도교육감들과 함께 지난 18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이준식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과 누리과정 보육료 문제와 관련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제공

그러므로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에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집권 3년 만에 얼굴을 바꿔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준해 제정해야 할 시행령을 제멋대로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동의도 없이 무턱대고 의무 지출경비로 돌려버렸다.

이런 후안무치한 만행에 시·도교육감들이 뿔난 건 당연하다. 시·도교육감들은 교육부가 아닌 보건복지부가 관리하게 되어 있는 보육기관(어린이집) 예산까지 시·도교육청에게 떠넘기는 것은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난다고 강하게 문제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예산도 1조7천억 원이나 부족하게 책정해 놓고 각종 지방채 발행을 통해 이를 메꿔 왔던 시·도교육청의 허리를 더욱 휘게 하고 있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있다면 광주어린이집연합회가 정작 칼날을 겨눠야 할 대상은 장휘국 교육감이 아니라 직무를 유기한 보건복지부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이런 몽니를 부리는 속셈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일부러 무상교육을 파탄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무상급식 같은 복지제도마저 축소하거나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둘째, 중앙정부 예산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자치단체를 흔듦으로써 중앙정부에 말 잘 듣는 지방자치단체를 만들어 제왕적 권력 맛을 보는 것이다. 이런 의도가 없고 서야 출산률을 장려하기 위해 고심한다는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정책집행을 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권력과 금권에 둘러싸여 살아 온 대통령이라 몇 십만 원은 그저 껌 값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그러기에 푼돈 때문에 생을 포기하거나 일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현실이 박 대통령에겐 그저 안드로메다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보임에 틀림없다.

복지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절대 악이 아니다. 서구 사회가 불안한 경제상황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는 이유는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사회안전망으로서 복지가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에 기업과 젊은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조적인 발상을 할 수 있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 발상을 할 수 있어야만 영화 한 편으로 현대자동차 150만대 판매수익에 맞먹는 수익을 올렸다는 스필버그에 필적할 만한 인재도 이 땅에서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 해 을미년 말에 이 땅의 지성을 대표하는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듣기에도 생소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았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하나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군주로 표현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 의미는 한 마디로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추이를 보건대 안타깝게도 이 말은 올해도 아직 유용하다.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혼용무도의 천라지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단추는 ‘내 탓이오!’를 말하며 반성하고 자숙하는 모습일 것이다. 나는 그 첫 목소리를 대범하게 정부가 냈으면 한다. 그걸 인정할 때 시·도교육감들과의 예산 협의도 얼마든지 급물살을 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것이 살아 있는 정치요, 아름다운 정치인 것이다. 이런 정치를 보길 기대하는 것이 한낱 망상이 아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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