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제3의 깃발'... 잠시 머물다 갈 돌풍"
"단비 촉촉히 내리는 감성의 정치 필요 할 때"

'사람이 온다.'
요즘 각계 전문가를 공들여 영입하는 더불어민주당 회견장의 문재인 대표 뒷전 플래카드에 써 있는 말이다. 12일 고졸 출신 여성으로 첫 삼성전자 상무를 역임한 양향자씨의 입당 회견을 하는 자리에도 이 글귀는 써 있었다. 벌써 7번째다.

이들 중 김병관 웹젠 의장,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 오기형 변호사에 이어 호남 출신으로는 네 번째로 양씨가 영입되는 것을 보면 최근 탈당해 안철수 씨의 품에 안기는 광주•호남 출신 의원들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어 보인다.

오늘은 그동안 한국 정치사의 굵은 획을 그은 권노갑 전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마저 더민주당을 탈당했다. 문 대표가 양향자씨와 입당 회견을 하던 바로 그 시각 국회 정론관에서다. 서슬 퍼렇던 1970년대, 80년대 억압의 시대에 온 몸으로 박정희, 전두환에게 항거했던 그들이고 보면, 분명 현재 벌어지고 있는 더민주당 탈당 러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 전남 구례 전통 5일장 풍경. ⓒ정동묵

이 나라를 사람 살 만한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민중의 의사를 애써 회피한 채 자신들의 기득권에 연연하며 변변한 투쟁 한번 하지 않은 당의 주류들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현재 문재인 대표가 딛고 서 있는 자리는 언뜻 '백척간두'로 보일법하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 싫어 떠난다는데,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적이 당황스러울 거다. 오늘 그는 제1야당의 한 축이던 동교동계가 떠나는 것을 보며 “많이 아프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모름지기 그의 마음 속에는 그동안의 과오에 대한 반성의 휘몰이가 명량 바다의 소용돌이처럼 휘돌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그가 크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안철수씨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그의 역량을 한 번 검증받은 바 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제3의 깃발'을 들었을 때 많은 국민이 호응했었지만, 그가 보여준 것은 별 새로울 것 없는 그저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뿐이었다.

신망 받던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그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내심 조마조마하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최 교수는 안철수와 결별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안철수씨의 ‘무이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정치는 ‘가야 할 바가 어디인지를 알고 가야 하는’ 사상과 이념이 있어야 하는데, '귀공자' 안철수씨는 책 속에서 배운 지식은 있되, 이를 궁극으로 체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이 나라 최고의 진보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를 모실 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새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의 앞에 줄 서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오판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안철수씨는 과거 14대 대선의 국민당 정주영씨나 15대 국민신당의 이인제씨, 16대 국민통합21의 정몽준씨, 17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씨와 다를 바 없는, 잠시 머물다 가는 돌풍일 뿐이다.

그 전의 대선상황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20대 총선거를 앞두고 헤쳐모여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또한 정치적 시기만 다를 뿐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렇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현 행태에 대해 아쉬움은 남는다. 나는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감동의 정치’를 주창해 왔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우린 말한다. 무릇 생물은 ‘크게 느껴 마음이 움직’여야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다. 하물며 국가의 제반을 책임지는 정치임에서랴.

▲ 김빈(34) 청년 디자이너가 11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후 문재인 대표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더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발등에 불 떨어져 당황스러운 문 대표의 입장에서 각계 전문가를 영입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의 뜻은 충분히 알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재 반도의 남단을 방황하는 애국 대중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저 새누리당도 하고 있지 않은가!) 감동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이버 입당 시스템 도입으로 10만 명이 모여 들었다고 해서 뿌듯해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표에게 감동해서 모여 들었겠는가. 지금은 이렇게 '외부 수혈'을 거들먹거리며 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이런 방법은 어떤가.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을 유지해 왔던 힘은 일반당원들 때문이었다. 나 또한 2002년 10월 개혁국민정당을 시작으로 그간 민주당원으로 살아왔다. 내가 만나본 기층 당원 중에는 열성적이고 빼어난 일반 당원이 지리산의 수목처럼 많다.

그들은 경향의 자기 지역에서 자신의 삶을 꾸리면서도 민주당원임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이런 많은 이들 중 군계일학의 빼어난 당원을 지역별로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캐치프레이즈가 '사람이 먼저다'였음을 잊지 않고 있다. 요즘 그의 뒤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맞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당원으로 산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당원에게 감동을 주려면, 그리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려면 집 밖의 사람 챙겨오기 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울 안의 제 사람 소중히 위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 가족의 가장이 제 가족 내팽개치고 밖의 사람 우선적으로 챙긴다면 어느 식구가 좋아하겠는가.

이번 주에는 경상북도 월성군지부의 어느 모범 당원을, 다음 주에는 충청남도 당진군지부의 아무개 열성당원을 문 대표가 지금 바로 그 자리에서 소개해 보자. 지역별로 몇몇씩 단체화해 소개해도 좋겠다.

심사위원회를 꾸려 각 지역위원장에게 추천받은 모범 당원들을 엄격히 심사한 다음 그 심사 기준도 제시하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토리를 장황하게 이야기해도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 평범한 삶 속에 눈물 적실 감동이 있음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 첫 고졸 여성 임원인 전남 화순 출신 양향자(49) 상무가 12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식을 갖고 있다. ⓒ더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하여, 일반당원에게도 꿈이 있음을, ‘사람 살 만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희망이 있음을 전국의 당원에게 그리고 국민에게 전파해 보자. 말하자면 문 대표가 당 대표로서 이들의 진정을 전달하는 스피커이자 매체가 되어 보자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국민은 지금 필요로 한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같이 메마른 정치가 여태까지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단비 촉촉히 내리는 감성의 정치를 해야 할 때다. 설령 이것이 승리를 위한 전술일지라도 현명한 국민은 눈 감아 주리라.

당황하지 말자. 지금 떠나는 이들은 어차피 민심을 호도하면서 떠날 사람들이다. 나 역시 지리산 아래 호남의 한 모퉁이에 살고 있다. 여간만 겉으로 말하진 않지만, 진정한 애국세력은 지금도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걷는 중이다. 누가 호남의 민심을 들먹이는가. 지역 여론 떠벌이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중앙과 지역의 정치모리배들뿐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감동을 주려면 싸목싸목 살며 민주당원과 이 나라의 국민임을 잊지 않는, 곳곳에 숨 쉬고 있는 대중을 다독여야 한다. 지금은 이것 이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없다.


** 정동묵 작가는?
1991년부터 여성지 <여원>을 시작으로 잡지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매체에서 연예 담당, 정치 담당을 거쳤다. 인터뷰이의 일생을 눈앞에서 들을 때마다 ‘나도 저처럼 살 수 있을까?’ 고뇌했다. 그들과 같이 웃었고, 함께 울었다.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하면서 큰 산 지리산 자락이 머무는 전남 구례로 귀촌했다. 내려와서 아이 한 명을 더 낳아 지금은 다섯이 산과 강을 쏘다니며 재미있게 놀고 있다. 글 쓸 소재가 무진장으로 널려 있는 구례의 삶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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