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국정ㆍ검정교과서 자유시장경제에 맡겨야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호가호위하듯 교육부는 10월 12일 오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발표했다. 이를 두고 정치계와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포털도 황우여 교육부총리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식 발표를 두고 ‘여야 이념 전쟁 돌입’이라는 살벌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11일 당정협의를 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논의하면서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 위원들은 현행 역사교과서의 좌편향 문제 등을 들어 국정화를 강하게 촉구했다고 한다.

▲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이 12일 광주시교육청에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인정 도서를 자체제작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나는 이들의 역사 퇴행적 발언과 인식에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금치 못하는 바다. 이는 한 마디로 독재적 발상이고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신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인식이다.

이는 지난 2013년 11월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한 정책리포트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는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다"고 지적한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다.

이런 마당에 뚱딴지 같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역사의 시계를 40년 퇴행시켜 유신시대로 돌아갈 생각인지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하고 있으니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이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주된 소견논거는 현행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국민을 기만하는 곡학아세에 다름 아라고 본다. 우선 이들이 현행 한국사 검정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고 했는데, 우선 좌편향적 또는 우편향적이란 기준은 무얼 두고 말함인지 이것부터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은 제쳐두고 한국사 교과서에 언급된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 북한의 핵개발 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서술한 것이 좌편향의 증거라고 제시했다.

이에 대해 집필진은 편찬기준을 따랐고, 중립적으로 서술했지만 극도의 우편향 눈으로 보기에 상대적으로 좌편향적으로 보인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식견이 부족한 내가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나는 북한과 관련된 사건이나 용어에 대한 서술이 긍정적이었냐, 부정적이었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담보하고 있느냐, 아니냐라고 생각한다. 사실에 입각해서 긍정적 측면이나 부정적 측면을 서술하면 역사가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다.

이를 망각하고 역사가가 정권의 입맛에 맞추거나 국수주의에 입각하여 오욕의 역사까지 긍정 미화한다거나 포퓰리즘에 입각한 서술을 하는 것은 역사가의 수치일 뿐이다.

또한 이들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자라고 했는데, 올바른 역사관이란 대체 무엇인가? 국가가 제시하는 역사관을 말함인가? 그럼 독재국가 정부가 제시하는 역사관이 옳단 말인가? 아니면 논란이 됐던 뉴라이트 계열의 집필진이 만든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내용을 진실로 믿는 역사관을 말함인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1945년 광복이 아닌 1948년 건국(건국절)으로 보는 역사관을 말함인가? 올바른 역사관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우둔한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지금까지 2010년부터 시행해 온 한국사 검정교과서로 수업 받고 수능까지 치른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지니지 못하고 있단 말인데, 무슨 근거로 이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이 배운 한국사 교과서는 불온서적이었단 말인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통탄할 일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앞서 밝혔듯이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란 헌법적(?)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국민일보에 의하면 OECD 34개국 가운데 현재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나라는 터키와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 세 나라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비춰 보면 한국사 국정화는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세계적 흐름에 명백히 역행하는 처사이고,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담 쌓고 살겠다는 역사적 퇴행의식의 반영일 뿐이다.

이 세상에 완전한 객관은 없다. 주관과 주관적인 객관이 있을 뿐이다. 역사란 역사가의 눈이다. 그 눈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역사는 변화하는 유기체요, 살아 있는 생명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서술할 뿐이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은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다양한 한국사 검정교과서가 그러한 다양한 눈을 반영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를 정권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한국사 교과서들을 좌편향이라 몰아세우며 중립을 가장한 우편향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좌편향은 하나의 빌미에 지나지 않고, 이는 현 대통령이나 현 여당 대표의 부친들이 일제강점 하에서 저질렀던 반민족적 매국 친일부역 행위를 감추기 위한 꼼수에 다름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 광주지역 역사 교사들이 12일 오후 광주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반역사적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다까끼 마사오’로 창씨 개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하에 일제가 세운 만주 군관학교의 장교가 되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투사와 지사들을 잡아들였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거리도 못 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씨는 일제 패망 직전에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였고, 그 모금을 주도했다는 친일매국 행위 의심도 사고 있다. 만약 이러한 친일 매국 (의심)행위를 감추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 사실라면 이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반민족적, 반국가적 폭거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 집안의 매국 치부를 감추기 위해 국가 기관을 동원하여 국민의 역사 인식의 왜곡을 불러 올 수 있는 작태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실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한국사 국정교과서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그것도 다양성이 넘치는 현대의 한 목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검정교과서를 배제한 단일 국정교과서만의 등장은 절대 반대한다.

이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우리 헌법 정신은 물론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위배되고, 국민의 역사의식을 우민화, 세뇌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칫 잘못하단 수많은 국민들이 유대인 학살에 아무런 양심적 꺼림도, 반성도 없었던, 타자성이 결여된 제2의 아이히만같은 평범한 괴물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 갈등의 해법으로 규제 개혁과 줄푸세를 내세우는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적용했으면 한다. 검정교과서도 따지고 보면 출판기업들의 시장상품이 아닌가.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해 소비자인 교사와 학생의 선택을 받는 교과서만 살아남는 것이다.

외면 받는 교과서는 절로 사장될 것이므로 국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사 국정교과서도 자유시장경제의 링에 올려 보내 검정교과서와 경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자유시장경제를 교란시키려든단 말인가.

다양성은 생태계의 가장 우수한 생존전략이다. 생물들은 획일성이 불러올 공멸을 잘 알고 있다. 다양성은 또한 생물의 하나인 인간의 우수한 생존전략이다. 획일성의 충돌을 피하고 다양성을 통해 상생과 조화의 원리를 실천함으로써 우리 인간 종족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단일의 국정교과서를 통한 획일성은 다양성에 기초한 다양한 검정교과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통해 우리 역사는 더욱 튼실해지고 우리의 미래는 더더욱 강건해질 수 있음은 자명하다. 역사의 자양분은 다양성이다. 21세기 우리 역사가 사는 길은 다양성의 존중에 있음을 명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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