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가는 길은 곡선이다. 저수지를 돌아가는 찻길이 구불구불하다. 하늘과 닿은 구릉의 선들도 휘어진 난초처럼 이어진다. 바람은 봄바람이다. 들에도 햇살을 받아 새싹을 틔우려는 것들이 반짝거린다. 하지만 땅은 여전히 누릇누릇하고, 파릇한 색은 아직 없다. 봄은 일주문 앞에까지 왔다.

개심사(開心寺), 마음을 열라! 개심하고 들어가야 보이는 것인지, 뭔가를 보고 개심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종각을 받치고 있는 4개의 나무기둥은 개다리소반처럼 휘었다. 땔감으로나 쓰일 것들이 저기 서 있네!

▲ ⓒ이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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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심검당(尋劍堂)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섰다. 심검당은 적묵당과 더불어 절집에서 선방이나 강원의 이름으로 흔히 쓴다. 칼을 찾는다는 뜻이다. 어리석음을 끊어버리는 지혜의 칼. 예리한 칼날 위에 머리카락을 훅 불면 단박에 두 동강이 나는 취모리검(吹毛利劍)의 칼, 그 칼은 어디에 있을까?

심검당은 대웅전 왼편에 있다. 대웅전은 멋진 배흘림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보물이다. 심검당은 거기에 비하면 초라하다. 본채는 그나마 반듯하지만, 옆으로 달아낸 덧집에 곧은 목재는 하나도 없다. 배흘림이 아니라 둔부까지 흘림인 목재들, 전혀 다듬지 않은 나무들, 기둥은 삐딱하게 서 있고, 들보는 헤엄치고 있고, 문턱은 활처럼 굽었다.

심검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웅전 우측, 무량수각도 그렇다. 앞은 반듯하지만, 뒤편에는 역시 뒤틀린 나무들이 기둥으로 서 있다. 해탈문을 받치고 있는 기둥도 야생의 나무 생김새 그대로다. 명부전도 휜 나무들을 기둥으로 썼다.

▲ ⓒ이광이

▲ ⓒ이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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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개심사는 처음 만나는 범종각 4개의 기둥, 심검당의 기둥과 들보, 무량수각과 해탈문과 명부전 기둥들 모두 반듯한 것이 없다. 오직 대웅전, 부처가 앉아 있는 대웅전만 위아래 균형이 맞고 조형미가 있는 목재를 썼고, 나머지 당우들은 굽고 휜 나무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것이다.

저렇게 펑퍼짐하게 살찌고 휘어진 기둥은 춤추는 조르바의 엉덩이를 생각나게 한다. 나무는 비탈에 서서 휠 것이고, 중력을 거스르며 성장하는 그 필연 속에서 곡선이 되었다. 바람을 맞아 굽어 휘지 않고는 한 생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춤추는 엉덩이 속에 인간의 온갖 욕망과 비밀이 숨어 있는 것처럼, 바람이 멈춘 나무의 굴절 속에 새들은 둥지를 튼다. 직선에 머무를 수 없는 것들이 휘어진 곡선 속에서 산다. 고통이 머무는 곳도, 고통을 숨겨주는 곳도 그곳이다. 오랜 시간들이 퇴적하여 생긴 그 속에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칼은 보이지 않는다. 금방 찾아질 것 같으면 ‘심검’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직 하나의
암시만, 일주문 현판에 걸어 놓았다. ‘상왕산 개심사’, 그대, 마음을 열어보라. 나는 심검당의 나무기둥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왜 대웅전보다 심검당이 더 끌리는지, 그것은 ‘버리지 않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 ⓒ이광이

바로 그 때, “어떤 이유이거나, 볼품없는 목재를 일부러 썼을 리는 없지 않나? 좋은 것은 먼저 대웅전에 보내고, 쓸 만한 것은 심검당 본채에 쓰고. 기왕 잘린 나무를 땔감으로 태워버릴 수는 없으니 그런 것은 덧집과 뒤편에 쓰자, 불사는 꼭 반듯한 목재를 써야 한다는 그 마음 하나만 버리면, 굳이 새 나무를 벨 필요가 없지 않은가, 모양이 무슨 상관인가, 밑 둥이 단단한 것은 기둥으로 쓰고, 좀 날렵한 것은 들보로 쓰자, 그래서 죽은 부처는 반듯한 대웅전에 모시고, 산 사람들은 굽은 나무기둥 속에 살면 어떻겠나!”하고 심검당은 옛 이야기들을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찾아보라던 칼은 혹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수험생도 나고, 감독관도 나인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문을 나온 나는 다시 구불구불한 저수지 물가를 돌아, 비산비야의 서산 내포 땅, 저 둥글둥글한 곡선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뻗은 길을 직선으로 달렸다.

**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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