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정기고사인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기가 다가오면 교사들은 체증을 앓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진다.

바로 학부모감독제 때문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 보통 사흘에 걸쳐 시행되는 정기고사 때문에 하루에 두 분, 모두해서 여섯 분의 학부모를 시험 보조감독관으로 지정하여야만 한다. 일 년으로 따지면 도합 스물 네 분이니 그 부담이 얼마나 큰가.

중간고사에 즈음하여 나는 전화기 버튼을 누르고 말지만 좀 망설여진다. 내가 단지 학생의 담임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먹고 살기 바쁜 학부모의 시간을 뺏을 권리가 있는가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학년부장의 채근에 하릴없이 어금니 깨물고 뒷머리 긁적이며 버튼을 뒷맛은 영 찜찜하다.

“어머님, 저 죄송하지만 혹시 이번 시험에 보조감독 좀….”
학생의 잘못을 지적할 때의 기백은 어디 가고 마치 죄진 놈 마냥 목소리 낮춰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조심스레 부탁드릴 수밖에 없다. 흔쾌히 수락하시는 학부모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 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그럼 어떻게라도 시간 내 볼게요.”

▲ 광주광역시교육청.

이런 전화를 받으면 고맙다는 마음보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더욱 크다. 동료교사들도 이 시기만 되면 이번엔 어떤 분께 부탁드려볼까 고민된다면서 폐지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수군수군하곤 한다.
나 또한 이들과 뜻을 같이하여 말한다. 학부모감독제를 폐지하라고. 이 주장에 대한 나의 소견논거는 이렇다.

첫째, 학부모감독제의 시행 취지는 학생들의 부정행위와 교사들의 성적조작을 막자는 것이 주요 골자지만, 이러한 시행 취지는 학교 일선현장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내 견문이 좁아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학부모가 부정행위를 적발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또한 학부모는 절대 교사의 성적조작을 밝혀 낼 수 없다. 감사 권한이 없는 학부모가 무슨 수로 교사의 성적조작을 밝혀낼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둘째, 전형적인 부당한 갑을관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세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지만 학부모들이 주체로 대접받는 경우는 대게 학교당국이 아쉬울 때다. 학부모감독제도 그렇다. 시험 부정행위를 막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왜 하필 학부모에게 손을 벌리느냐는 것이다.

학부모는 학교의 주체 중 하나지만 약자인 을인 것도 분명하다. 시험 감독 거부 시 미구에 내 아이에게 불리함이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쉬 거부하지 못한다. 직장에 다니는 한 학부모로부터 직장에 휴가원을 내고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땐 고마움보다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용해 갑인 학교당국이 칼자루를 쥐고 학부모를 동원하여 자신들을 돕게 하는 것은 비교육적인 처사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셋째, 학부모는 무보수명예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쟁과 효율, 성장을 내세우는 비정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시간은 곧 돈임은 명백하다. 자신의 바쁜 일상의 시간을 쪼개 나오신 학부모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하는 것은 교육폭력에 다름 아니다.

자식을 위해 이 정도는 해주셔야 한다고 태연스레 말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처사다. 학교 당국은 담임교사들의 면구스러움을 다소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감독시간에 비례하여 그에 걸맞은 정당한 수당을 지급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학부모는 오히려 빈손으로 오는 것을 저어하여 하다못해 음료수 박스라도 사들고 온다. 특히 ‘스승의 날’에도 시험을 치르는 학교의 경우, 학부모는 전날부터 고민에 빠진다. 선물을 주면 뇌물로 비칠까 두렵고, 그냥 가자니 왠지 무성의한 것 같아 민망하고. 참, 학부모 노릇하기 힘든 세상이다.

넷째, 시험 관리와 감독에 대한 학교 당국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험에 대한 관리와 감독은 엄연한 학교 당국의 업무다.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약자인 학부모를 끌어들이는 것은 학교 당국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째,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학부모감독관 바로 옆에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은 옆에서 자신의 문제 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아 여간 부담이 아니라고 한다. 이로 오히려 시험을 망치는 기분이 들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 학생 또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광산구의 한 중학교는 교사들의 이런 고충을 받아들여 용기 있게 올해 학부모감독제를 폐지했다. 그렇다고 이 중학교의 이번 중간고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없었다. 폐지 후 학부모감독 부탁 전화, 예비전화, 확인전화, 감사전화 같은 절차가 사라져 교사들의 업무도 경감되고 교재 연구에 보다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이 학교 교사들은 말하고 있으니 같은 교사로서 참 부러울 뿐이다.

시교육청 차원에서 업무경감과도 배치될뿐더러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울며 겨자 먹기를 강요하는 정기고사 학부모 감독제는 당장 폐지해야 한다.

학생들은 담임교사의 볼모가 아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막연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학부모에게 시험 감독을 요구하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할지라도 본질은 일종의 책임회피요, 교육현장에서 자행되는 비교육적 갑을 관계의 종용에 불과하다.
머리숱이 부족한 나는 올 기말고사에서 더 이상 뒷머리를 긁지 않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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