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칼럼에서 나는 한울고 학생들의 표정이 밝게 보이는 이유를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오늘은 이 점을 부연하고자 한다.

2014년 한국방정환재단이 실시한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 비교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다.

이런 상황은 200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6년 내리 유지되고 있다. 조사 영역 중 ‘교육’이나 ‘물질적 행복’ ‘건강’ 등에서는 비교적 상위임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행복지수에서만큼은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답은 첫 번째 답은 학업 스트레스이다. 다음 표는 유엔아동기금(UNICEF)이 2013년 발표한 '부유한 국가 아동의 주관적 웰빙' 조사 결과이다. 한국 학생들이 받는 학업 스트레스는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최고이며 평균치(33.3)의 두 배에 육박하고 있다. 그 여파로 학교생활 만족도 역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직접적인 요인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학습시간,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성적 경쟁, 대학 서열화로 인한 만성적 입시 부담 등을 꼽을 수 있다.

단순 비교이지만, 한국 학생들은 핀란드 학생들에 비해 학습시간이 두 배이며, 사교육 시간만 보면 무려 13배에 달한다고 한다. 10년 전 쯤에 한 유아교육 원로교수께서 들려주신 강남지역 사립유치원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었다.

유치원생 아이가 친구에게 자기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더라는 것이었다. 쉴 틈 없이 강요되는 학원과 레슨 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오죽 컸으면 그랬을까!

그런데 학생들을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되어 강요된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예로 든 강제 자율학습처럼 부모와 교사는 학생의 처지와 계획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관점에서 학생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공부란 하라니까 하는 것이지 자신의 내적인 욕구와는 상관이 없다. 주인의 요구에 순응하는 공부기계라고나 할까. 이들에게서 밝고 생기 있는 표정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한울고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제대로 공부를 한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희미하며, 심지어 초등학교 입학 이후 한 번도 공부라는 것을 한 적이 없다고 실토하는 아이도 있다.

물론 이들이 한울고에 오기 전에는 그러한 처지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성적이 낮은 만큼 학교에서나 집에서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고 스스로도 매사에 당당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울고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한 처지이니 공부 못하는 것이 더 이상 흠이 아니다.

더구나 학교에서도 성적이 낮다고 비하하지 않고 성적이 높다고 우대하지도 않는다. 교과 성적이 좋은 학생이나 예체능 기능이 좋은 학생, 심성이 고운 학생이 동등한 무게로 칭찬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 싸우지 않는 한 그들이 얼굴을 찌푸릴 일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한울고 학생들이 공부에 대하여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시험 기간이 되면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문제는 공부를 방해하는 오래된 습성들이 있고 학습부진이 오랜 기간 누적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묘책을 찾는 일이 한울고의 당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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