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무조건 교실에 머무르도록
강제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에도 종종 손님들이 오신다. 동네 어르신들도 있고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부모 또는 공적인 임무를 띠고 오는 분들이나 수도권에서 오는 개인적 지인들도 있다.

▲ 이종태 한울고 교장.

그런데 지난해부터 그분들의 공통된 말씀 중 하나가 아이들의 표정이 참 밝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속으로 ‘그럴 리가… 우연히 밝은 아이들을 보셨겠지.’ 생각했었다. 많은 아이들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해체 가정, 왕따와 폭력 피해 경험 등 밝지 않은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반응이 지속되면서 차츰 생각이 달라졌다. ‘아,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지 않음이 이제 표정으로 나타나고 있구나!’ 그러다가 최근에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부적응 학생이 없다!’

뭐라고? 한울고에 부적응 학생이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한울고는 ‘부적응 학생을 위한 공립 대안학교’이지 않은가… 당연히 이런 의문이나 반문이 이어질 법하다.

실제로 한울고 재학생들 중에는 다른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전입 또는 편입해 온 아이들이 많고, 한울고 재학 중에도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거나 전학을 가는 아이, 학교 출석일수가 모자라 유급이나 자퇴를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이른 바 ‘부적응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통념에 반기를 들고자 한다. ‘학교 부적응’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일부 학생들이 기존의 학교 규범이나 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고 일탈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기존의 학교 규범이나 문화는 정당하다고 전제된다. 따라서 이를 벗어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신입생들과 함께 입학주간 행사로 등산을 하던 중에 한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기 오기 전 어느 학교에 다녔나?’ ‘순천의 한 여고에 다니다 왔어요.’ ‘좋은 학교인데 왜 그만두고 왔지?’ ‘너무 답답해서요…’ ‘뭐가 그리 답답했어?’ ‘매일 매일이 똑같았어요.’ ‘아하, 야자 말이구나?’ ‘예!’ ‘보통 몇 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지?’ ‘1학년 때는 10시이고 2학년부터는 11시까지예요.’ ‘… 공부하기 싫은 사람도 그때까지 꼭 있어야 하니?’ ‘예…’ ‘저런! 학교가 감옥이구나!’ ‘맞아요!’

▲ ⓒ한울고 누리집 갈무리

▲ ⓒ한울고 누리집 갈무리

이것은 기존 학교의 한 단면도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구의 언론들은 우리의 이런 학교 실상을 이해할 수 없는 진풍경으로 보도하곤 한다. 그러면서 굳이 입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한국교육을 은근히 폄하한다.

같은 PISA 강국이지만 핀란드에 비해 한국교육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낮다는 점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강제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는 학교 관리자나 교사들의 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나 성적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공부에 도통 관심도 없고 실력도 없는 아이들을, 또는 저녁시간만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무조건 교실에 머무르도록 강제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감히 그것을 비능률과 비교육의 극치인 동시에 나아가 인권유린일 수 있다고 본다. 부모가 원한다고 해도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왜 그런가?

우선 청소년들을 그 의사에 반하여 항시적으로 야간까지 학교에 머물도록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또 이미 오래 전부터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지금의 사회에서 그런 방식의 공부는 아무 쓸 데가 없다.

잘 나가는 기업들이 선호하는 인재 유형도 달라진 지 오래이다. 아마도 유일한 핑계는 대학입시리라. 매일 5~6시간씩 교실에 앉혀놓으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수능시험 점수를 몇 점이라도 올려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 ⓒ한울고 누리집 갈무리

▲ ⓒ한울고 누리집 갈무리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두 가지 치명적 맹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비록 몇 점의 수능 평균을 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실제로 그렇게 될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로 인해 아이들이 고교 3년간 잃게 되는 것들이 너무 크다. 인생에서 감수성이 최고로 예민한 고교 시절을 교실에서 문제집만 푼 아이들에게서 무슨 창조성이나 도전 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둘째, 사회 변화에 가장 둔감한 대학들조차도 이제 성적이나 수능 점수를 별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 수능고사 없이 수시입학 제도로 대학에 가는 아이들이 60%를 넘어선 지 오래지 않은가! 우리 학교에 ‘부적응’을 이유로 위탁교육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교사 지시 불이행’이라는 죄목을 달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야간 자율학습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방침을 따르는 대다수의 아이들과 달리 이 아이들은 교사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서까지 반항을 했고 그 결과 ‘부적응’의 딱지를 붙이게 된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다. ‘부적응’이라는 말이 아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억압하는 수단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일종의 제도적 폭력이다.

(061)360-0101 한울고 교무실 http://hanwool.hs.jne.kr/


** 이종태 한울고 교장은 경기고, 서울대 교육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참여정부와 국회에서 교육정책 활동과  지혜학교 이우학교 등을 거치며 대안교육 역사의 '산 증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13년부터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에 있는 공립대안학교 1호인 한울고 교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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