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이 절창화담] 저 지경이 저 경지가 되는 순간
[이광이 절창화담] 저 지경이 저 경지가 되는 순간
  • 이광이 집필노동자
  • 승인 2015.02.2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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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無㝵)

왜 스님은 여름에도 마후라를 하고 다닐까?
마후라는 머플러(muffler)로, 일본 들렀다 오면서 고생하는 말인데, 스님은 그것을 사철 두르고 다니는 것이다. 머플은 감싸다는 뜻이니, 추울 때 목을 감싸는 방한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으뜸이다. 

▲ 도법스님.
둘째는 멋내기 소품으로 쓰인다. 버버리 코트 옷깃 사이로 두 줄기의 긴 머플러 자락을 휘날리면서 우수에 젖을 때, 여자는 소리 없이 다가와 눈을 감는다.

이것은 보통 3월까지 이고, 여성들이 5월까지도 하고 다니는 것은 스카프다. 보통 마후라는 이 즈음에서 그 쓰임을 다하고 장롱 속으로 들어간다.

스님의 세 번째 쓰임은 타올이다. 아침에 얼굴 닦고, 스님들은 세수하다가 손을 좀 위로 올리면 바로 머리까지 감는 것이므로, 머리 닦고, 탈탈 털어서 매고 나오는 것이 마후라다.

네 번째는 손수건으로 쓴다.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마후라 깃을 들어 올려 콧구멍을 판다. 코를 푸는 것은 다반사고, 눈꼽도 그걸로 닦는다.

작년 가을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야단법석을 할 때, 마후라를 풀더니 발가락 사이를 닦는 것을 나는 봤다.

그 마후라로 찻잔을 닦는다. 행주로 쓰는 다섯 번째 용도에 사람들은 질겁을 한다. 스님은 마후라로 닦은 찻잔에 차를 담아 준다. 탁자에 흘린 물방울 역시 그걸로 닦는다. 내색을 할 수도 없고, 눈 찔끔 감고 뽕잎차를 마신다.

마지막 여섯 번째 쓰임은 바랑 끈의 조임 용도다. 기나긴 순례 길에 바랑이 자꾸 처지니, 마후라로 그걸 한번 묶어, 말하자면 요즘 배낭의 어깨끈처럼 사용했는데, 그것이 마후라 다용도의 시작이다.

내가 궁금해 했던 것은 마후라 두 갈래의 용도가 각각 다르냐는 것이었다. 스님 얼굴 닦는 것은 오른쪽이고, 내게 내미는 찻잔 닦는 것은 왼쪽이겠지, 설마 그걸 구분하지 않고 쓸까 하는.

절집 사람들은 “발가락 사이로 흘러나온 무좀약도 그것으로 닦는다”고 했다. 그래서 “쪽물, 황토물, 오배자 물들인 목도리 3개를 만들어서, 수건과 행주로 구분하기 위해, 오른쪽 갈래에 눈에 잘 띄는 빨간색 수를 놓아 드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망한 일이다. 스님이 그것을 구분할 생각도 없고, 하려고 해도 바람결에 뒤바뀌는 것이 좌우의 갈래이니, 애당초 부질없는 일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스님 곁에 가면, 냄새가 난다는 것을. 여섯 가지 용도의 마후라에서 풍기는 여름날 쉰밥 같은 꾸리꾸리한 냄새!

1년 쯤 지나서, 스님이 따뜻한 물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책상 위에 휴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 그 냄새가 냄새가 아니었구나! 무애라는 것이 저런 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으니.

저 지경이 저 경지로 넘어가야, 곰탕 한 그릇 먹는 것이 몇 만원씩 하는 채식 뷔페 보다 더 깊고, 막걸리 한잔 하는 것이 몇 백만원씩 하는 보이차를 마시는 것 보다 더 스님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 무릇, 가르침이란 저런 것이리라.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 본 것처럼, 무애(無㝵)를 지나면서 냄새는 향기로 바뀌고, 스님은 스승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꿉꿉한 여름날, 그 쉰밥 같은 도법스님의 향기가 그립다. 내게 ‘효천(曉天)’이란 법명을 지어주신.

**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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