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된장찌개에 들어 있던 돼지고기 한 점이 스님 입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내가 봤다. 나는 현행범을 보듯 곁눈질로 보고, 놀랐으면서도 안 놀란 척 했다. 그 동네에 기웃거린지 얼마 되지 않던 때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고기 한 점은 내 목에 걸려 꽤나 오래 갔다. 적당한 시간이 흘렀을 때, 내가 도법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육식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 ⓒ이광이

육식은 민감하고, 간단치 않다. 찬반이 엇갈린다. 원래 승려는 걸식했다. 받는 대로 먹는다. 고기를 받으면 고기를, 감자를 받으면 감자를 먹는다. 태국 승려들이 고기를 많이 먹어서 뚱뚱하고, 성인병에 많이 걸린다는 뉴스도 있다. 대신 남방불교는 한 끼를 먹고 오후엔 안 먹는다.

달마가 중국으로, 마라난타가 백제로 넘어오면서, 육식은 금해졌다. 그것은 오늘까지 1700년의 전통 속에 있다. 이렇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니고, 저렇게 보면 엄청난 문제다. 조계종에서도 육식을 공론으로 다룬 적이 있는데, 결론은 불허다. 질병의 치료 목적을 예외로 두고.

“육식은 피할 수 없지.”
“그래도 금육은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산 중에서는 가능하지만, 절을 벗어나면 육식을 피할 수 없어.”
그건 그렇다. 식당에서 파는 거의 모든 음식에 고기는 들어있다. 설렁탕, 곰탕은 물론이고, 비빔밥에도, 냉면에도, 하다못해 국수에도 멸치의 흔적은 있고, 계란의 고명은 있다. 육식을 온전히 피하려면 평생 절 밥만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계율과 실제생활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채식 뷔페에서 먹으면 될 것 아닙니까?”
“허허, 그것은 억지지.”
채식 식당이 도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비싸다. 조계사 앞 채식 전문점은 한 끼에 2만원이 넘는다. “그냥 소박하게 한 끼 먹으면 되는 것이지.”라고 스님은 말했다. 저 한마디가 육식논쟁을 다른 관점에서 가볍게 풀어버린다. 정작 고기는 중요한 게 아니다. 승복에 진짜 어울리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문제다.

조의조식(粗衣粗食), 남루한 옷에 거친 음식. 때로는 채식이 호의호식에 해당하고, 고기 들어간 것이 보잘 것 없는 음식일 수도 있다. 나는 채식 전문점에 앉아 있는 스님 보다, 곰탕 한 그릇을 먹고 있는 스님이 더 스님 같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된장찌개에서 고기를 한점 한점 들어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치사한 일인가?

**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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