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무지 고갱을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갱은 가난했다. 고갱이 한살 때, 아버지는 페루로 이민 가던 배 안에서 죽었다. 가족은 페루에서 5년을 살고 빠리로 귀향했다. 청년은 돈벌이를 위해 배를 타기도 했다. 23세에 은행에 취직하면서 삶은 안정됐다. 이듬해 덴마크 여자와 결혼했다. 자식 다섯을 낳고, 풍족하게 살았다. 그 무렵부터 그림을 틈틈이 그렸다. 가죽의자에서 허리를 돌릴 때보다, 그림 그릴 때 행복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취급을 받았다.

▲ 고갱의 <수다를 떠는 브르타뉴의 여자들>.

그는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저축한 돈과 그림을 팔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축은 곶감처럼 사라졌고,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가족과 덴마크로 갔다가 혼자 빠리로 돌아온다. 그림을 그리고, 고흐와 만나 그림을 얘기하면서 30대를 보냈다. 43세에 타이티로 간다. 거기서 훗날, 표현주의의 새 지평을 연 그림들을 그린다.

그림, ‘수다를 떠는 브르타뉴의 여자들’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입은 수다를 떨지 않고 닫혀 있다. 얼굴은 심각하다. 대신, 하얀 고깔과 빨강 초록의 앞치마, 연두색 잔디, 푸근한 대지의 색깔, 그런 것들, 말하자면 색이 수다를 떤다는 것이다. 표현주의가 그렇다고 한다.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 3년 동안 그린 그림을 들고 빠리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47세에 다시 타이티로 간다. 뱃삯이 없어, 갖고 있던 그림들을 헐값에 처분했다. 자기 예술을 몰라주는 프랑스는 지긋지긋했다. 타이티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춤추는 사람들을 그렸다. 거기서 7년을 살고, 더 먼, 마르키즈 제도 히바오아 섬에서 홀로 오두막을 짓고, 아무 가진 것도 없이, 오직 붓 하나 들고 살다가, 눈을 감았다. 향년 55세, 그 섬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화가 친구에게 물었다.
“나는 도무지 고갱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예술도 좋지만,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그것이 그렇다네.”
“다른 건 좋아, 까짓것 어차피 한세상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좋지. 그림이 좋아서 은행 때려치운 건 이해가 돼. 근데 말이야, 저 남태평양으로 두 번째 떠난 건 납득할 수가 없어.”
“글쎄, 흔치 않은 삶이지”

“그 양반 그림을 누가 알아주나? 사후에야 유명해 졌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엔간하면, 은행 경력도 있겠다, 금융계에 다시 취직해서 평범하게 살지, 그림도 틈틈이 그리고, 머 할라고 이역만리 태평양으로 가느냔 말이지. 죽을 땅으로.”
“고갱은 은행 그만두고 시간이 많은 보험회사에 들어가기는 했어. 결국 2년 버티다 거기도 사직하고 말았지만. 누가 알아 주냐고? 누가 알아주고 말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네, 예술가는 자기가 알아.”
“뭘?”

“이것이 작품인지 아닌지를, 내가 그리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것은 새로운 무엇이며,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것인지, 아닌지를, 누가 잘 그렸다거나 못 그렸다거나 그건 별 의미가 없어. 내가 가장 먼저 알지. 고갱은 거기서 뭔가를 찾았을 거야.”
“니체처럼 말인가? 신에 구속되어 있는 바보 같은 놈들, 너희들은 나를 해석하려면 하나의 기관이 필요할거야 라고 말했다든.”

“고갱은 거기서 혼자 새로운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지 않나.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입으로 수다를 떠는 모습을 그리지 않고, 강렬한 색깔을 대비시켜 색채로 수다를 떠는 듯한 그림들, 빠리의 화가들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던 표현주의, 그렇게 한 세상을 열었지. 고갱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비극적 삶을 마친 것 같지만, 아마도 화가로서 고갱은 행복하게 눈을 감지 않았을까?”
“신은 죽었다. 네가 너의 신이다. 나는 오직 춤출 줄 아는 신만을 사랑한다. 그런 건가?”

“빠리는 고갱이 죽고 나서야 고갱을 알아보고, 열광하지. 예술가의 삶이 그래. 자기 방식대로 춤을 추며 사는 것. 자유로우면서도 고독한.”
“…”

**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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