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가 어느 암자에 도착해서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주인이 나오더니 주먹을 들었다.
조주는 “물이 얕아서 배를 정박시킬 만한 곳이 아니구나”하고는 그곳을 떠났다.

조주가 다른 암자에 도착해서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주인이 나오더니 역시 주먹을 들었다.

조주는 “줄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으며,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고 말하고는 그에게 절을 했다. <무문관, 11칙 주암감주>

▲ 지난 1일 찾은 전북 익산 미륵사지. ⓒ이광이

조주스님이 하룻밤 묵어가려고 어느 암자를 찾은 모양이다. 그런데 주인이 다짜고짜 주먹을 들어 보인다. 주먹감자, “엿 먹어라!는 뜻이다.” 거기에 “개놈의 자식”하고 댓거리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조주는 맞서 싸우지 않는다. 물이 얕아서 배를 정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떠난다. 두 번째 암자에서 똑같은 일을 당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다.

첫 번째 암자에서 조주는 대인의 풍모를 보인다. 마음이 크다. 물이 얕다는 것은 네 속이 밴댕이만 하다는 것이다. 나 같은 큰 배가 어찌 너 정도를 상대하겠는가! 그러고 떠나 두 번째 암자를 찾아 조주는 걷는다.

걸으면서 깨달았을 것이다. 내 마음이 저 주먹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화가 안 나는 것이 아니라, 화를 참고 있다는 것을. “이 큰 배가 저 얕은 물에 흔들렸구나!”하고. 크기는 하지만, 이미 흔들린 마음이다.

두 번째 암자에서는 달라진다. 그 주먹을 보고 인정한다. “당신은 이미 깨달은 분이시군요. 그러니 뭔가를 줄 수도 뺏을 수도 있고, 나를 살리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하고 받아들인다. 내 마음이 그 주먹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화를 참는 것이 아니고, 화가 안 난다. 본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니 절을 올릴 수 있는 것이리라.

첫 번째 마음은 그물에 걸리지만, 두 번째 마음은 그물에 안 걸린다. 이 삽화는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강신주의 책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를 읽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어 내가 살을 좀 보태봤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보수정비 중이었다.

** <절창화담>은 산사 이야기와 범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재를 맡은 이광이 님은 <무등일보> 노조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 그리고 도법스님이 이끈 조계종 총무원의 자성과 쇄신 결사에서 일 했습니다. 저서는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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