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와 ‘첫술에 배부르랴’ 사이에서

시민시장을 표방한 '윤장현호'가 출범한지 6개월이 지났다. 주변의 여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와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두 종류로 대별되는 듯 하다.

전국 광역자치단체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광주의 도약의 계기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전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고, 무언가를 보여주고 실행하기에 6개월이라는 시간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후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는 듯 하다.

올해 시행된 지방선거에서 가장 관심이 쏠렸던 곳은 대구와 광주였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지역권력의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가 대구의 관심사였다면, 광주는, 서울의 경우처럼, 시민운동가 출신이 과연 권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였다.

우리 사회가 지방자치를 시행한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동안은 주로 정치권 인사나 전문행정관료 출신들이 자치단체의 장을 맡아 왔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지방자치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방자치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상향식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가? 지역민들의 의견과 소망이 진정으로 행정에 반영되고 있는가? 그동안 지역은 각자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공동체적 전망을 확보하고 있는가? 중앙정부는 과연 지방자치를 지원할 확고한 의사가 있는가?

지난 20년간 시행해온 지방자치는 이런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각 지역에 따라 맹주역할을 하는 당이 존재하는 것도 한 요인으로 작동했다.

더군다나 올해 터져 나온 무수한 사건, 사고, 사태들은 ‘행정’이 과연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민들에게 심각한 고민과 의문을 안겨주었다.

이를 대표하는 사태가 ‘세월호’ 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순간은 ‘사고’였으나, 이후 이를 수습하고 대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태’로 확산시켜놓았다.

대다수 국민들은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에 여전히 ‘관치주의’가 뿌리깊이 내려있고, 최고위층에서부터 밑에까지 책임회피는 극에 달해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 한 사람, 시민 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한 절망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지난 7월 1일 시청 대회의실 민선6기 시민시장 취임식에서 시민들과 함께 선서를 하고 있다. ⓒ광주인

이런 상황에서 광주시민들이 바랬던 것은 ‘소통, 신뢰, 책임’이라는 문제였다고 보여진다. 불통, 불신, 회피에 넌더리가 난 시민들은 기존의 정치권이나 행정관료 출신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시민들의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새로운 리더십을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보다는 민이 중심이 되는 사회, 민의 지혜와 역량이 결집되어 만들어가는 사회를 기대한 것이다. 시민적 관점, 입장, 처지에서 행정을 바라보고 시행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유아에서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에 대한 생명권과 안전권의 보장과 확대, 교육, 취업과 고용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150만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는 일까지 너무나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임시장들은 국고 유치를 통한 지역발전이나 기업 유치를 통한 고용확대 등을 시정의 중심으로 설정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인프라 확대, 주택공급 확대 등과 같은 양적 성장정책이 수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여전히 어려운 처지이다. 더구나 세계경제의 위기에 따라 수출주도 성장,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이제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는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시민시장의 출범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패러다임을 실천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사고와 의지가 결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직된 공조직보다는 유연한 민간의 사고와 행위가 ‘안전과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실천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책임이 시민시장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진정한 의미의 협치(協治, Governance)의 실현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이 사회적, 환경적, 정치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신경 쓰지 않고 도시의 성장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전통적 도시는 자본의 한없는 욕구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고 데이비드 하비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도시권은 도시를 우리의 마음 속 바람에 가깝게 바꿔나가고 재창조할 권리이며, 개인적 권리가 아닌 집단적 권리”라고 주장한다.(『반란의 도시』)

▲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12월 1일 찬반논란을 거듭해온 도시철도 2호선에 대해 '건설확정'을 발표하고 있다. ⓒ광주시청 제공

도시를 자본의 욕구로부터 해방시켜서, 시민의 욕구와 바람에 맞게 바꾸고 재창조할 ‘도시권’을 광주시민은 지니고 있으며, 시장은 시민의 이러한 욕구와 소망을 담아내는 행정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이는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탁월성이나 헌신성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집단 지성, 집단 지혜’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고, 또 해결할 수 있다.

자공이 스승님인 공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식량(食)을 풍족히 하고 군사(兵)를 풍족하게 하면 백성들이 믿을(信) 것이다”고 대답했다.

자공이 다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할까요?” 하고 묻자, 스승님은 “군사를 버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군사가 없으면 어떻게 백성들이 평안하게 발을 뻗고 잘 수 있으며, 창고에 가득한 식량은 누가 지킬 것인지 궁금해진 자공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할까요?” 하고 다시 물었다. “식량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죽음이 있지만 백성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는 것이니라”고 공자는 대답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군사나 식량보다는 백성들의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봉건시대의 일이니, 세계가 하나로 묶인 글로벌시대이자 인터넷을 통해 세계 구석구석의 일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오늘의 현실에는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

공자가 살았던 중국 춘추시대는 전쟁과 침략이 지속되었고, 모든 나라가 ‘부유한 국가와 강력한 군대’를 최고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버리고, ‘식량’도 버리라고 하는 공자의 주장이 수용되기는 어려웠다.

‘법에 의한’ 강력하고 엄격한 통치를 주장한 ‘법가’의 이론을 받아들여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진의 시황제가 결국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것을 보더라도 공자의 주장이 당시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지난 11월 5일 이낙연 전남도지사, 권영진 대구광역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지켜본 가운데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헌향하고 있다. ⓒ광주인

그러나 중국사에 있어서 가장 단명했던 왕조가 진나라라는 점은 백성들의 믿음을 획득하지 못한 국가나 황제는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있고 창고에 넘치는 식량이 있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또한 역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 점으로 인해 공자의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아직도 그 유효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자는 앞의 공자 말씀을 풀이하면서 “이 때문에 위정자는 마땅히 몸소 백성들에게 솔선수범하여 죽음으로써 지켜야 할 것이요, 위급하다고 해서 백성을 버릴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국민/시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위정자의 문제임을 정자는 강조하고 있다.

믿음마저 버린다면 그 다음에 버릴 것은 무엇일까? 자공도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해보지 못한 듯 하고, 공자도 이런 지경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듯 하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시민들과의 소통과 이에 기반한 신뢰가 시장직의 출발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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