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 11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김장 배추만 뽑아내면 숙지원의 금년 농사는 마무리된다.

병충해를 덜 받는다기에 다른 집에 비해 일주일쯤 늦게 심었고 화학비료를 하지 않은 탓인지 배추는 아직 속이 차지 않았다.

그래도 100포기를 농약 없이 키웠음에도 70% 이상 생존율을 보이고 있으니 실패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내는 금년에 김장은 20포기만 하고 남은 배추는 눈밭에 두었다가 내년 봄까지 먹을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연금생활자인 우리에게 텃밭 농사는 소득 사업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가 조금 덜 자라고 배추 속이 덜 차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와 배추 외에 자두 매실 감 등 과일 고추 마늘 양파 등 양념류 그리고 상추 비트 시금치 등 채소류를 가꾸고 있는데, 한 마디로 자급자족을 목표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실천하고 있으니 유기농법으로 키운 깨끗하고 안전한 무와 배추를 먹을 수 있다면 그뿐, 더 이상 바라지 않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숙지원에서 가꾸는 모든 농작물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 성장촉진제 같은 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비닐 멀칭을 하고 농협을 통해 구입한 퇴비를 사용하는 것마저 없다면 거의 자연농법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우리 밭에서 수확한 과일은 벌레 먹은 것이 많고, 채소는 구멍이 숭숭하고, 알뿌리는 크기가 들쑥날쑥 고르지 못해 시장에 내놓기 어려운 즉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사실 유기농법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름철 들끓는 해충들 그리고 각종 질병에 쓰러지는 작물들을 보는 일이 결코 마음 편하게만 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역시 고민 끝에 친환경 농약을 골라 한두 번 뿌린 적이 있다. 그러나 친환경 농약이라고 해도 찜찜했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나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농약에 의해 내성이 길러진 요즘의 해충들은 농약병의 설명대로하면 거의 죽지 않는다.

약을 치면 잠시 도망갔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밀물처럼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럴 경우 다시 농약을 쳐야만 한다.

처음에는 시골 농부들이 사나흘거리로 약통을 짊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실제 경험해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신 여기저기서 들은 대로 발효액 목초액 난황유 식초 소주 등 들은 대로 갖가지 약을 스스로 만들어 시험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는 별로였다.

농약이란 분노만으로 아무 때나 뿌리는 것이 아닌데 그 점을 몰랐던 결과였다. 어린아이들이 병에 약하듯 식물들도 어린 시기에 해충들의 표적이 되고 어린 시기에 병에 잘 걸렸다.

그런데 작물이 어느 정도 자라서 해충과 병에 대한 자체 방어력을 갖게 되기까지의 시기를 읽지 못한 채 혼자 바빴던 셈이다.

이제 작물을 보면 그런 시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약을 뿌리는 방법이나 횟수도 조절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게 되었다.

아직도 고추 탄저 병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는 속수무책인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단위면적당 최소한 절반 정도 수확하여 자급하고 있으니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시장에 팔 것도 아닌데 모양과 때깔이 조금 떨어지면 어떤가. 출하를 앞두고 화학 비료나 성장촉진제를 뿌린 농산물에 비해 우선 맛이 깔끔하고 안심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다.

소득이 높아지고 식품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많은 소비자들이 더 깨끗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찾는다고 들었다.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요구하는 태도는 아무리 극성스러워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생존권 차원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친환경 농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하고 싶다. 소비자들도 이제 과일과 채소를 모양과 크기나 빛깔만으로 판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고, 전반적인 먹거리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농민들이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약이나 성장촉진제를 뿌리는 까닭은 크고 빛깔 고운 농산물을 최상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알았으면 한다.

내년부터 유기농산물에 대한 규제와 심사가 강화되리라고 한다. 소비자들도 원산지 파악, 유기농에 의한 생산여부 따져보고 직거래 등의 방안을 찾아보는 태도야말로 나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첩경임을 알았으면 한다.

밥 한 그릇에 필요한 쌀의 원가는 아직도 300원 정도다. 식당에서 밥 한공기의 가격은 1천원이다. 요즘 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에 1천원이다.

우리나라 한 끼니 배를 채울 공산품 중에 1천 원짜리가 있는지 찾아보고. 또 김치 한 포기 담으면 4인 가족이 몇 끼니 먹는지 계산해본다면 농산물 가격이 비싸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정부와 언론이 나서서 물가 주범이 농민들인 양 호들갑을 떨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우리 농민들이 생산하고 싶은 의욕이 날 것이며 농촌이 살아날 것인가!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체널마다 건강에 관한 강좌가 그치지 않는다.

그 덕분인지 모임에 가면 이제는 저마다 식품의 영양, 식물의 약성이며 전문적인 의학 지식까지 줄줄 꿰는 사람들을 본다.

그만큼 개인과 가족의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사례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는 것이 많다고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을 찾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최근 주말농장과 도시 텃밭 등 농사를 통해 가족들이 먹는 채소를 자급하려는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앞으로 중국 뉴질랜드와 FTA가 비준되면 수입 농축수산물의 봇물이 터질 것이다. 서민들에게는 더 값싼 농산물이 다행스러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고 먹느냐하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본다. 병든 농산물로 인해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 점은 결국 우리 모두의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정말 유기농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유기농의 성공률이 낮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격도 높은 편이 아니다.

일반 농산물보다 2배의 가격은 받아야 타산이 맞는데 그걸 알아주는 소비자들이 많지 않아 매우 불리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응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지금도 주변에는 땅도 살리고 국민들의 건강도 살리자는 취지로 퇴비를 만드는 법, 약 없이 해충을 쫓는 법을 공동으로 공부하면서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는 농민들이 많다는 사실도 전하고 싶다.

정말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식이 바뀌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정부도 유기농에 대한 정교한 기준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건강한 농산물을 안심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믿음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