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권이라는 군사주권 포기에 이은 중국, 뉴질랜드와 FTA 협상타결 소식….
그제(17일), 마을 노인들과 FTA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노인들의 답변은 의외였다.

“이미 시골 장바닥에서 파는 농산물도 다 외국 것인데” “나라에서 한다면 말릴 수 없는 일” 그럼 가만있어야 하느냐는 내 질문에 노인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떠든다고 들어줄 사람들이 아니다” “젊은 사람도 없고…, 우리가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하는 말을 남겼다. 그런 노인들의 표정에서 절망과 체념 그리고 자포자기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친환경 유기농업을 실천하며 텃밭 농사를 해온지 9년째 접어든다. 지난 3월에는 농업 기술원에서 농부가 되기 위한 약초재배법 등 교육도 받았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 나주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한 친환경대학 유기 농업반에 등록하여 수강중이다. 교육을 받으면서 쌀 과수 약초 등 다양한 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을 만났고 보다 농촌의 실상에 더 접근할 수 있었던 점은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소득이었다.

묵묵히 자신만의 농사에 전념하는 농민들도 있었지만 농촌의 현실을 고민하고 농촌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농민들도 많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들과 이야기 도중 공통적으로 받은 인상은 농민들의 고민과 열정을 해결하고 북돋아주는 정부의 노력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 무서리 내린 숙지원. ⓒ홍광석
일부 영농법인에 지원한다거나 작지만 강한 농업이라는 뜻을 가진 ‘강소농’육성을 외치고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들먹이지만 문제는 그런 구호들이 평범한 농민들과는 거리가 있고 또 그것으로 농촌이 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정부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농민들을 위한다는 정부의 농업정책이 농민들과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지켜본 바로, 농촌의 문제는 힘들고 어려운 일 때문이 아니었다.

일에 비해 낮은 소득이 문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기를 쓰고 자식들을 가르치려고 했던 농촌 부모들의 마음도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즉 소득의 문제가 본질이었다.

수많은 젊은 농민들이 이촌향도의 대열에 섰던 배경에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했던 경제적인 이유가 첫째였다.

그 결과 농촌은 노인들만 빈사상태의 환자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반도체와 자동차 팔아 식량을 사먹는다는 비교우위를 고집하며 농업 생산량이 많고 가격 경쟁력이 우리보다 높은 중국 뉴질랜드와 FTA를 체결하여 다시 우리 농촌의 목줄을 조인 것이다.

그리고는 당장 쌀 등 민감 품목의 수입은 미루어졌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 농업의 전반에 미치는 타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수출로 돈을 벌어들인 대기업이 농민들을 지원하려는 계획이라도 있단 말인가? 쌀의 수입도 언제까지 미루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당장 뉴질랜드의 축산물이 들어올 경우 우리 축산 농가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면 FTA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앞으로 고품질 유기농업으로 승부를 걸어야한다고 말한다. 농업을 생산과 가공 판매하는 6차 산업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마치 6차 산업이 농촌을 살릴 대책이라고 강조한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유기농업이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대책을 쉽게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본이 취약한 영세농이 많은 우리 농촌의 현실을 안다면 6차 산업이 새로운 발견인양 떠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대책은 식품안전법으로 농가에서 생산 가공한 농산품의 판매를 제한하는 현실에서 농업 진출을 꿈꾸는 대자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버릴 수 없다.

주변의 농민들도 저농산물 가격 정책으로 농촌을 죽이고 가격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농산물을 수입하여 농민들을 골탕 먹였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배추밭을 갈아엎으면서도 절인 배추를 수입하는 나라. 이제 곧 갖가지 값싼 수입 농산물이 온 나라에 홍수를 이룰 것이다. 우리 농산물은 시장에서 밀리고 서민들의 밥상에서도 멀어질 것이다. 노인들만 남은 농촌은 더 빨리 붕괴되고 우리 농산물의 생산도 대폭 감소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더 낮아질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현재 우리가 농산물을 수입하는 주 대상국인 중국은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쌀 참깨 등 그동안 외화벌이를 위해 수출했던 고급 농산물의 자체 소비가 늘고 있다는 추세라고 한다.

앞으로 중국인들의 소득이 향상되면 다른 농수산물의 수요도 늘어나리라는 것은 상식적인 추정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당연히 중국의 농산물 가격도 오를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럴 경우 만약 중국이 국내 공급 부족을 이유로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한다면, 중국 농산물에 의지하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1차적으로 우리의 수입 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중국산 농산물도 먹기 어려워진다는 말이 된다. 물론 그 때쯤 정부는 수입 다변화하겠다고 설치리라.

그러나 만약 이상 기후로 인해 세계적으로 곡물과 여타 농작물 생산이 감소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쩔 것인가? 거기에 세계적인 불황으로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줄어든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고 무슨 돈으로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을 것인가?

식량 자급률이 2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우리로서는 끔찍한 가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신문 기사를 보니 정부는 중국 뉴질랜드와 FTA 협상 자료를 국회의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상임위원장에게도 A4용지 두 장 정도의 자료만 제출했다고 한다.

그런 자료를 주는 정부나 그런 자료를 받고 정부를 두둔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에게 “미친놈들”이라는 욕이 절로 나온다. 더 이상 털릴 것 없는 농촌, 그 농촌에 사는 나이든 농민들을 외면한 정도가 아니라 전시작전권 환수를 미루더니 종래는 나라의 식량주권마저 발로 차버린 작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숙지원에는 하얀 무서리가 내렸다. 나무에는 상고대라고 하는 서리꽃이 피었다. 아침 8시 기온은 영하 1도. 이제 본격적인 추위를 예고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혹독한 추위도 때가 되면 풀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잖아도 얼어붙은 농촌에 다시 중국 뉴질랜드와 FTA라니! 우리 농촌에 불어 닥친 FTA로 인한 혹한이 두렵기만 하다.

종자 팔아 엿 사먹자는 꼴인데 그렇게 식량주권마저 포기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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