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朋이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많은 이들이 익히 아는 논어의 첫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까지 사람을 불러 모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는 손님도 막지는 않았다.

찾아온 벗과 술상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이야기에 취하는 즐거움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살다보면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버선발로 쫓아나가 ‘不亦樂乎아!’를 외칠 여유가 없는 경우도 많은 것을 어쩌랴!

▲ 숙지원의 감나무. ⓒ홍광석

9월에는 추석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난히 손님이 많았다. 거기에 해야 할 일도 많은 달이었다. 고추를 말리고 참깨를 터는 일에서 마늘 양파 완두콩 심을 밭을 만드는 일, 또 김장 무와 배추 모종 심는 일, 거기에 겨울나기 화목까지 들이는 일까지!

농촌의 일은 대체로 몸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고 소소한 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밭일을 기계로 하지 않을 경우, 쇠스랑이나 삽으로 흙을 뒤집고 퇴비를 뿌리고 흙을 고른 후 비닐 멀칭을 하기까지 말처럼 뚝딱 끝나는 일이 아니다. 또 농촌의 일은 서둘러서 되는 일도 아니다.

우리 나이에 무리한 일은 몸의 각 부분에 골병드는 지름길이기에 한 시간 일하면 한 시간쯤 쉬어야 한다. 그렇다보니 일의 진척은 느릴 수밖에 없다. 30평 정도의 마늘밭을 만드는데 그럭저럭 며칠 걸렸는데 그런 일은 나의 몫이었다.

월동용 화목을 쌓는 일도 상당한 중노동이었다. 약 2m 길이의 화목을 11톤가량 들여오고 그걸 60cm 길이로 자르는 사람을 사서 했지만, 3kg정도 나가는 작은 나무토막에서 크게는 10kg을 훌쩍 넘기는 통나무를 옮겨 차곡차곡 쌓는 일은 아내와 나의 몫이었다.

▲ 겨울 난방용 화목. ⓒ홍광석

지난해 몸살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금년에 나무 쌓는 일은 사람을 사서 시킬 생각도 했지만 하루에 10만원이 넘는 일당이 아까웠다. 이틀이면 20만원, 거기에 새참과 점심 식사까지 하면…?

“안 쓰는 것이 버는 것!”이라는 서민스러운 논리와 “이틀 고생하면 한 겨울이 따뜻하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며 아내와 둘이서 팔을 걷었다. 그러나 나무를 자르는 속도에 맞추다보면 ‘쉬엄쉬엄’이 되지 않았다.

나무를 쟁이는 일도 요령이 필요했다. 큰 나무토막과 작은 토막을 섞어 쌓아야 움직이지 않는다. 가장자리는 우물정(井)자로 쌓지 않으면 나무더미는 피라미드 형태가 되고 만다.

그래서 생각하면서 손을 놀리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일의 속도는 더 느려지고 끝내는 일하는 사람도 지치게 된다. 중요한 월동준비는 끝냈지만, 허리와 근육 아픔을 풀기 위해 며칠간 뜨거운 물에 담가야만 했다.

몸이 벅차다고 배추밭과 시금치 밭, 그리고 하우스안에 겨우내 우리 가족이 먹을 채소밭 만들기도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때를 놓치면 겨울에 채소를 먹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 중에 몇 차례의 외출도 있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나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유기농 교육을 받아야했고 19일에는 멀리 상주까지 유기농 현장 견학도 다녀왔다.

인연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각자 일에 빠지고 시간에 쫓기다보니 반가웠던 손님도 차분하게 챙기도 어려웠고 붙잡을 여유도 갖기 어려웠던 것이다.

거기에 9월은 희망을 갖게 하는 뉴스조차 없었다. 무례하게 찾아온 손님 같은 뉴스, 암담했던 뉴스는 보고 싶지 않았다.

▲ 숙지원의 밭. ⓒ홍광석

속상하는 뉴스를 보느니 가급적 숙지원 꽃과 나무들을 만나는 것이 편했다. 덕분에 9월에는 보고 듣는 것만큼 더 역겨운 파렴치하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설치는 뉴스 밖에서 살았지 않나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엊그제가 추분. 앞으로 밤은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감은 붉게 익어가며 흙속의 생강도 향기 짙어가는 계절.

이제 몸살을 앓으면서 해야 할 일은 끝난 듯싶다. 고구마와 야콘 캐기는 놀이처럼 즐기고, 팥과 서리태 터는 일도 장난처럼 가벼울 것이다.

양파와 완두콩 심는 일은 아내의 몫이다. 마을 당산 나무에 가을빛이 번진다.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이내 사는 집만큼 편안한 곳이 있으랴 싶어 주저앉는다.

나도 이제 늙은 것일까?


201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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