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는 귀한 식품이다. 지금도 참기름은 고급 식품으로 쳐주지만 과거에는 약으로 썼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마 참깨나 참기름에 ‘참’자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도 진정한 그리고 최고라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 아닌가 한다.

참깨는 작고 가벼운 농작물이다. 작은 것에 빗대어 “깨알 같은…”이라는 수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참깨는 그 이름만으로 ‘아주 작음’을 상징한다. 아마 사람이 먹기 위해 재배하는 농작물 가운데 참깨보다 크기가 작고 가벼운 농작물은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참깨 농사는 일일이 손으로 씨앗을 넣고, 솎아주고, 김매주고 그리하여 낱알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여 베어 들이는 과정은 아직 자동화되어있지 않아 대부분 ‘깨알’만큼이나 사람의 잔손질이 많이 가는 일이다.

또한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심해도 가슴을 졸이며, 수확하여 말리는 일도 다른 작물에 비해 신경을 더 쓰지 않으면 안된다. 비를 맞히거나 터는 시기를 못 맞추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참깨는 비교적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에 잘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에 그만큼 농민들에게는 많은 땀을 요구하는 작물이다. 그럼에도 참깨의 가격은 늘 농부의 땀을 계산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노인 인구의 비율이 높은 농촌에서 참깨 농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해마다 참깨 수확은 줄고 있다는 통계가 보이는데 당연한 결과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실제 우리 마을만 봐도 그렇다. 노인들이 많은 마을이라 노동력의 부족으로 참깨 농사는 가족들이 양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을 넘기지 않는 현실이다.

시골 노인들도 배 작업 하는 곳에서 하루만 일하면 참깨 한 되 벌이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돈도 안 되는 농사로 고생하느냐면서 수입 참깨를 사먹는 편이 낫다는 주장을 감추지 않는다.

또 “내가 농사짓지 않으면 우리 참깨라는 말은 믿을 수 없다!”는 말로 시골 장터에 나오는 ‘우리 참깨’조차 불신하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이제 농촌에서 우리 참깨를 찾기 어려운 실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하겠다.

참깨는 우리 국민들이 선호하는 식품이다 보니 그 수요는 다다익선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게 수요 예측이 어렵기 때문인지 현재 우리나라 참깨의 공급량은 물론 수요량의 정확한 통계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농가에서 참깨를 혼작하는 경우가 많아 집계가 어렵고, 또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는 양도 많지 않아 국내 공급량의 측정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참깨는 수입 농산물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때문에 밀수품목 중에서도 참깨는 빠지지 않으며, 거기에 중국을 드나드는 관광객들까지 보따리로 들어오는 양이 많다고 알려졌다.

대체로 우리나라 참깨 수요량의 90%는 수입품이라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참기름을 들깨기름이나 올리브 같은 외국 수입 기름으로 대체하는 가정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심지어 옥수수기름이나 콩기름을 참기름과 섞어 참기름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경우도 적발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만큼 참기름의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점에서 참기름이라고 내놓은 기름이 실제로 참기름이라고 믿기 어려운 현실. 다만 인체에 유해한 기름이나 먹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야콘 재배 양을 줄이고 대신 참깨와 마늘 등 우리 식생활에 꼭 필요한 작물의 재배 면적을 늘렸다. 야콘은 기호식품으로 비싸거나 없으면 먹지 않아도 되는 식품이지만, 마늘과 참깨는 가격에 비해 탄력성이 크지 않은 우리 밥상의 필수 식품이다.

더구나 늦은 봄에 참깨를 심어 이른 가을에 수확하고 그 자리에 마늘을 심을 수 있으니 토지의 이용을 높일 수 있는 돌려짓기가 가능한 작물이다. 때문에 야콘 심었던 자리에 참깨와 마늘 재배 면적을 늘릴 작정을 했던 것이다.

나주시 농업 기술센터에서 ‘수지’라는 품종의 씨앗을 받아 온 것은 지난 5월 초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모판을 만들어 한 달 쯤 모종으로 키운 후 마늘과 양파를 뽑아낸 자리에 이식하였으나 날씨는 우리 편이 아니었다.

여름답지 못한 여름, 꽃이 필 무렵 잦은 비, 8월 들어서도 우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계속 흐린 날씨와 한 번의 돌풍을 동반한 집중호우에 꽃이 핀 참깨가 맥없이 넘어졌다. 줄로 묶었으나 세웠으나 한 번 넘어진 참깨가 기운을 회복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나빴다.

그런데 겨우 남은 것을 베어 말리는 시기에 다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으니! 농사에서 기회비용을 들먹이며 야콘은 포기하고 그 자리에 마늘과 참깨를 심어 실속을 챙겨보고자 했는데 ….

한 말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참깨를 베어 말려 털었더니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참깨 두 되가 전부였다. 자급자족은커녕 겨우 종자나 건진 꼴이다.

어제(12일) 나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친환경 유기 농업 교육장에서 만난 농민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이구동성으로 기상 이변의 심각성을 이야기했다. 여름철의 길었던 우기와 저온, 요즘의 심한 일교차….

이제 위도에 따라 차이를 보였던 그래서 예측 가능했던 옛날의 기후와 다르다는 말이었다. 가을은 빨리 추워지고 겨울은 맹추위가 예상된다는 농민도 있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서 민생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민생과 불가분의 관계가 깊은 기상이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불만도 쏟아졌다.

그렇다. 지난해 잘 되었던 농사를 금년에 망쳐버린 경우는 예전에도 다반사였다. 때문에 참깨 몇 되를 더 수확했느냐 못했느냐 하는 문제는 농민들이 겪는 다반사 중의 한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의 기상이 심각하게 바뀌고 있는 오늘의 상황이 아닌가 한다. 요 몇 년째 기후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니라의 많은 전문가들도 수목의 북방 한계선이 높아져가는 점이나 우리 해역에서 발견된 열대 어종의 예를 들면서 한반도의 기후를 걱정하는 형편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 세계 도처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기상이변으로 인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는 그치지 않는다.

길었던 봄 가뭄, 그리고 더워야할 여름이 덥지 않고 장마가 끝났다고 했음에도 길고 지루한 비가 계속되었던 올해의 우리나라 기후도 그런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이변이라고 하겠다.

기상이변은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의외로 국지적인 현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당할 줄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잖아도 위기의 농촌에서 기상이변이라는 요인까지 더해 농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뜻있는 농민들은 기후 변화에 맞는 농작물을 찾으며 농사방법의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농업이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식량 자급률이 20% 대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문제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시금 참깨 농사 실패를 통해 모든 농사가 하늘의 도움이 절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렇다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지금 농민들은 배추농사, 마늘과 양파 그리고 완두콩 농사 준비에 바쁘다.

201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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