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그는 계절의 떨떠름한 단상

술 담그는 계절이다. 매실, 개복숭아, 오디….
서양처럼 열매 자체를 숙성시키는 술이 아니라 우리는 주로 30도 이상의 소주에 담그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술을 사러 마트에 갔더니 술 담그기에 좋은 매실과 오디가 쌓여 있다. 또 8병 들이 소주를 박스 채 안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도연명은 술을 근심을 잊게 해준다는 뜻을 담은 망우물(忘憂物)이라고 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도 술도 현재의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망우물인지 모를 일이다.

갑자기 전에 보았던 술에 관한 기사가 생각나 인터넷을 열었더니 각종 통계 자료가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술 연간 소비량은 1인당 12.5리터 정도, 음주 가능 연령대의 인구를 기준으로 해서 1주일에 13.7잔, 즉 술 마시는 사람이 소주 2병 쯤 마신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술의 도수로 보면 단연 러시아가 높지만 술 마시는 횟수로 보면 우리나라가 1위라는 통계도 보인다.

얼마나 정확한 통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른 나라 국민들에 비해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점만은 사실인 듯싶다.

술을 자주 마시는 원인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회식문화’ 때문이라고 하는 대답이 많았다. 1차에서 끝나지 않은 회식의 뒤풀이가 2차 3차로 이어지고 ‘술이 술을 마시는 현상’까지 나타나 술 소비량이 늘 수밖에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개인적인 관찰이지만 우리나라 술 마시는 사람들의 속도는 매우 빠르고 단시간에 마시는 양도 많다. 술이 소통과 인간관계의 매개로서 기능하는 측면도 없지 않겠으나 살펴 보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 행태는 한풀이 혹은 억하심정의 해소 수단으로 술을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로 거칠게 마시는 편이다.

그리고 자신만 바쁘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강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음주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잦은 까닭은 그런 술좌석이 만든 부작용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검색하다가 눈에 띤 사실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장소의 1위가 술집이 아니라는 점이 의외였다.

이 역시 정확한 통계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술을 마시는 곳은 집이라고 하는 대답이 35%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2위인 고기집이 26%라는 대답에 비해 월등히 10%가량 높다.

더 관심을 끄는 통계는 무엇 때문에 술을 마시는가 하는 설문에 대한 답변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26%, 분노을 풀기 위해 25%, 기쁨을 나누기 위해 21%, 스트레스 해소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각각 16%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나름대로 분석이지만 나타난 술 마시는 곳이 집이라는 사실과 술 마시는 이유를 연결하여 추론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달래는 매개로 술을 택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화병(火病)]은 인간 감정 중의 하나인 우울 불안을 삭이지 못해 간의 생리 기능에 장애가 나타나는 정신과 질환으로 울화병(鬱火病)이라고도 하는데 서양 의학에서는 설명이 안 되는 병이라고 한다.

때문에 한국의 문화적인 ‘억울함과 분노’와 관련된 독특한 정신과 질환으로 인정되어 [화병]이라는 용어 자체가 국제적인 통용되는 병명이 되었다고 한다.

의학적인 설명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 중에 고착된 화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요 나타나는 증상도 다양하다고 하는데 아무튼 다른 민족에게서 찾기 어려운 희귀한 화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특수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주로 남도 지방의 60대 이상 사람들이 보았던 병 중의 하나. 이름 하여 ‘가슴애피’라고 하는 병인데 주로 여성들에게 많았다고 기억한다.

특별히 나타나는 외적인 상처도 없는데 시나브로 야위는 여인들, 작은 충격에도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누워 가슴을 쓰다듬으며 몸을 가누지 못하던 여인들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한 병의 원인이 모진 세월을 살면서 가슴에 쌓인 분노와 불안 원망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병이라는 사실을 이해 한 것은 내가 그 여인 또래의 나이가 되어서였다.

당하고도 말 못하고 살았던 세월의 흔적, 허기진 가난, 그 가난 속에 죽어간 자식에 대한 그리움…, 어른들은 말이 막힌 여인들의 병을 한(恨) 때문이라고 정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울화병이 그것이었지 않나 싶어진다.

남성들에게도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에 밀린 좌절과 절망, 또 갖가지 폭력과 죽음의 공포로 인한 불안 그리고 자신과 가족을 괴롭히는 가난으로 인한 병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표나게 앓는 화병을 앓는 남성들이 적었던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름 생각이지만 남성들의 긴장을 완화하는데 술이 한몫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더러 터무니없는 허세와 과시 그리고 폭력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경험적으로 술은 남성들의 화병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약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거기에 거의 일반적으로 술에 따르는 담배도 화병의 완화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허리춤에 두 손을 지르고 구부정정한 모습으로 사지를 늘어뜨리고 고샅길을 걷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팔을 걷어붙이던 마을 아저씨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 내 판단이 훨씬 사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본다는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화병은 사라진 것일까? 양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울화병을 키우는 요인은 더 많이 더 복잡하게 지뢰밭의 지뢰처럼 널려있다고 본다.

지능화된 교묘한 통치 방법, 기계화된 시스템으로 인한 비인간화, 그리고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 키우는 경제 정책, 생명을 지켜주는 안전망이 없는 사회보장, 거기에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듯 총체적인 부실로 인한 생명의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 등이 우리 국민들의 [화병]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회 제도 전반을 지배하는 정치제도의 문란과 그에 따른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경제 사회적인 불평등과 인간 소외는 예전에 비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내면적으로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치형태와 끊임없이 위기를 조성하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군사 독재의 수법도 변하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봉건 질서를 깨야한다고 하면서도 그런 봉건 질서를 은연중 조장하는 권력 기관과 언론 등 지배집단의 논리는 국민을 집단 최면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사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침이라는 요인도 있지만, 영토 살고 있는 국민은 그대로 있는데 현재의 지배집단이 몰락하거나 권력의 주체가 바뀌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회의 지배 세력들은 자신들의 몰락을 국가가 망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국민에게 충성을 강조해 왔고 지금도 국민들을 그 길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에 대한 충고조차 ‘종북’ ‘좌빨’이라고 몰아세우는 나라에서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걸핏하면 언제든 보따리를 싸야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조성하며, 법과 질서를 말하면서도 가진자들의 편을 들어 서민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

정경 유착으로 인한 부정과 부패의 골이 깊다. 자신의 존재와 생명이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구가 되거나 사다리 기능밖에 할 수 없는 나라가 아니가 하는 의심만 커지고 있다.

날마다 보고 듣고 당하는 차별과 소외 억압 생명경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상존하는 나라, 더구나 분노를 말하는 것이 표현할 수 없는 환경….

이런 나라에서 국민은 정부의 말을 신뢰하고 불안에 덜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나라, 이런 환경에서 화병 없이 산다는 것은 스스로 지배집단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바보임을 증명하는 말밖에 아닐 것이다.

화병은 또 다른 화병을 재생산한다.

국가 구성원들에게 만연된 [화병]으로 인한 병폐는 가족 붕괴의 가속화시키고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흐리게 한다. 각종 인명을 경시하고 타인의 재산을 약탈하는 각종 범죄는 증가하여 화병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 국민적인 [화병]을 깊게 한다.

그럼에도 국민적인 화병을 치유해줄 장치는 이 나라 어디에도 없고 정부도 그런 화병의 원인이나 치료 방법은 외면한다.

정치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화병! 문제가 터져야 상담과 치유를 말하지만 국민적인 화병 치료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가슴에 가득한 울분을 풀 길이 없는 화병을 앓는 사람들이 넘치는 나라. 허나 언제까지 두고만 볼 수 없는 일이다. 화병을 치유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정치제도의 민주적 개선과 헌법이 명시한 양심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정권안보 차원에서 전쟁 위기를 조성했던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 어떠한 외침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는 자주적이고 든든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여 국민들의 마음에 남은 불안을 없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정부는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설치는데, 정작 정치 경제적으로 기득권자들의 개조와 혁신이 필요한 마당에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말은 자기 부정과 적반하장의 궤변이요 넌센스일 뿐이다. 때문에 정권 안보를 위한 국가 개조는 포기해야 한다.

우선 정부와 국민,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에 상호 존중과 신뢰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부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의 관행과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상하 좌우가 소통하는 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재벌 중심의 경제가 개조되고 경제적인 평등사회가 되어야한다.

돈보다 사람의 생명을 중시하며 서민들도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국민적인 [화병]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정치를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 가지 더, 이제 국민들도 골방에서 술로 화를 달래지 말고 밖에 나와 촛불을 들고 자신들의 요구를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말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56일째.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죽어간 여교사의 이야기가 가슴을 친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성찰 없는 그네와 새누리당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 더구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하고 있을까?

국회특위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을까? 수 백 명의 사람, 더구나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지켜보는 죽었는데 사참사의 원인도 못 밝히는 국회, 책임져야할 사람을 찾지 못하는 울화병 키우는 나라에서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절망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있다는 자책, 그럼에도 말 못하는 비겁한 자신을 보는 노여움,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불안이 불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현실에서 ‘한국적인 화병’을 앓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참, 유병언은 누구의 도움을 받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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