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의 불씨 다시 살리자 

가슴이 아리다. 참교육운동의 산실, 광주지부만 보면 마음이 울컥 잠겨온다. "토론문화가 실종된 채 끼리끼리"라는 비난 소리를 들을 때는 그래도 나았다. "참교육하는 숫자가 많을 수록 실력이 떨어진다"는 비아냥 앞에 손가락 마디가 저려왔다.

진정 맞는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교육적 헌신보다 교육모순을 권력으로 정리해왔다. 희망을 불태우는 의욕은 빛이 바래 보일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열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얼마나 멋진 주제였던가. 참교육정신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 이 슬로건 앞에 밤잠을 설친 날들이 몇 날이던가. 통일을 꿈꾸는 세상, 차별없는 정의로운 세상, 사람사는 멋을 담으려는 세상을 꿈꾸며 뜻이 이어지는 사람들과 가슴을 붙잡고 시대를 엮어갈 수 있었다.

'민족, 민주, 인간화'. 아리고 저린 시름에 겨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시대어다. 암울한 시대를 넘는 희망의 메시지, 장강의 물줄기를 이룬 교육희망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사명이 되었었다. 아이들이며 학부모들 역시 맑고 여린 희망의 박수로 염원에 가득찬 시선을 쏟아주었다.

참교육이 던진 화두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이 담겨있었기에 멋졌다. 가슴 뭉클하게 젖어오는 애잔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청년이 된 참교육 지금은 어떤가? 씩씩한 기상은 사라지고 애늙은이가 되었다. 희망을 넘는 고뇌와 노력이 이어지지 않았다. 참교육 출신 교육감이다. 그 역시 새롭게 '혁신'의 슬로건을 높이 외쳤지만 가슴을 여는 그 다음이 없었다. 흉흉한 소문만 무성하다. 누가 혁신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도 애매했다. 따라와주지 않는다고 탓이 먼저였다. 서로를 비난했다.

개인적으론 참교육현장에서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다. 멋진 세상을 그려가자고 고민을 함께 하는 동지애가 있었던 것도 모두 참교육동지들이었다. 그래서 더는 안타까움을 털 수 없었다.

고백하건데 창립시기 던졌던 참교육운동의 시야를 넘어서야 하는 게 우리가 찾아야 할 시대적 책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교육운동을 말해야 할까, 내부개조로 달라지기를 주문해야 할까?

다시 몇 날을 고민했다. 말문을 여는 순간 이래도 저래도 배신자다. 입으로만 외치면서 조직의 뜻을 받들지 못하면 배신자 아닌가. 최선은 뭘까? 탈퇴할까. 도덕적으로나, 이상적인 지표로나 모두 빛을 잃었다고 나마저 남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지역 교육이 대한민국 교육을 더 키우려면 내 안의 적들이 가장 먼저 문제다. '게으름' '남탓'의 고질을 털자고 고해성사를 결심했다.

몇몇 사람들만의 신념으로 조직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고, 과거 업적주의로 냉소를 보낸 채 남탓으로 돌리지 말자고. 스스로 노후세대로 전락시킨 채 청년의 나이가 된 참교육운동의 자양분을 차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먼저 할 일을 찾자. 시대를 넘는 희망이 부단히 이어질 수 있도록 알맹이를 찾아 채우자. 정년하는 그날까지 사심을 넘어 모두의 마음을 적시는 헌신을 다짐하자.

모두 '내' 탓임을 명심하자. 원인은 밖에 있지 않다. 내가 어디서 2%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안아야 할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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