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광주'의  실체를 말하다(3)

동계올림픽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그중에 세상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은 이규혁이다. "여러분, 이규혁을 아십니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른여섯 노장, 6번째 올림픽에 도전한 스피드 스케이트선수쯤은 아시리라.

이규혁선수의 연습과정을 보여준 방송에서 그의 코치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이규혁 선수의 문제점은 아직 모릅니다.... 그에게는 숨겨진 보석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가 문제점을 찾는 일은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입니다."

아내가 "운동코치가 어쩌면 저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할까!"하는 탄성을 던졌다. 우리 정서는 훈련량이 어떻다, 이 선수는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말하는데 급급하지 않던가. 그 코치의 말은 메달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그의 풍부한 언어감각은 어디서 온 걸까?

우리는 여전히 불구적인 교육 수혜자를 기르고 있다. 느긋한 유머도, 입체적인 즐거움도, 여유를 담는 표현도, 재치와 위트도 배우지 못하는 게 우리 교육현실이다. 아니 아이들에게 능력에 맞는 안목을 찾아주는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 막상 학교를 졸업해도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이 못 되지 않는가.

이 땅의 교육은 자기인생을 찾고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삶을 그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않는다. 희망을 꿈꿔야할 젊은 세대들에게 아날로그적 문학이 없는 것이 그것이요, 감성을 담을 예술능력도 부족하고 감동을 끌어내는 가치판단도 성숙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디지틀 정보의 늪에 갇혀 개인으로 고립되고, 통신 휴대기기에 갇힌 채 감성과 감동이 기계부품처럼 방치되어도 교육적 논의가 사회담론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나라가 현실 아닌가.

삶의 희노애락을 묶고 풀어내는 실력이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불구적이다. 운동선수가 되어도 문학이 덧대지고 예술이 운동감각으로 승화되어 가치가 빛날 수 있을 때 살아있는 실력이 진짜 실력이 아닐까?

기실, 이 시대의 실력은 중요한 삶의 도구로 전락된지 오래다. 실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흔히 자격증을 갖출 능력,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공부, 취업준비 능력을 갖추는 스펙이 실력이다. 그것을 살아있는 실력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위정자들이여! 느낌이나 정치적 구호로 그럴싸한 메시지를 만들지 말라. '실력광주'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교육감을 뽑는 정치적인 시기에,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들도 공허하게 맴도는 꼬드기는 이야기는 그만 두길 권한다. 누구 한 사람 맥을 짚는 맞장토론을 열자고 책임지는 사람 역시 없지 않는가.

살아있는 실력은 뭔가? 내 앞에 닥친 문제의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정리할 줄 아는 것이며, 대안을 끌어낼 수 있는 분별적 사고력이다. 암기중심의 절대적 지식을 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정체성을 만들 수 있는 자기성찰 능력이 진짜 실력이다. 인생은 내 멋을 내며 사는 것이 제 맛임을 아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그렇게 실력이 쌓일 때 타인과 협동적으로 어울리며 홀로 설 수 있는 독립능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력은 앞뒤 이야기를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구성할 줄 아는 능력이다. 그렇게 실력이 될 때 공정한 가치판단은 분명해진다. 숨소리조차 죽여가면서 매달린 학교공부가 졸업하는 순간 공수표가 되는 성과주의 공부를 넘어 실속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이해관계의 이치를 알고 역사적 눈을 뜨는 교육이 실력교육이다. 그리고 내 삶 안에서 무엇이 가치있고 의미있는지 알게 되면 예술적인 삶으로 가치롭게 꽃필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진보교육이요, 실력교육의 틀이다. '내가 내 멋을 담을 수 있는 삶'이 진보적인 가치라고 믿는다.

이를 담는 실력이 우리 시대의 진보교육의 지표여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코치가 선수를 읽고 선수 스스로 퍼즐을 맞춰나가는 능력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이규혁선수가 메달을 꿈꾸면서 즐기는 올림픽을 하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이 갈망하는 현실가치를 담을 줄 알 때 '실력광주'는 제대로 세워질 것이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