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나는 배호가 남긴 [아빠품에]라는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다.

‘나를 버리고 떠나갈 때는 당신은 좋았지만 나는 괴로웠다.…’ 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노래.

▲ 영화 <변호인> 장면. ⓒ변호인 누리집 갈무리

아내는 들은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써놓은 글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림 사건’ 80년대 공안정국이 조작한 사건이 모델이었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그 당시를 살아 온 사람, 더구나 아직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석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혼자 감정 이입과정을 겪었던 셈이었다.

하지만 각오했던 것만큼 눈물을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억지스러운 장면도 거의 없었던 연기자들의 절제된 연기. 주인공들도 그랬지만 악역을 맡은 연기자들이 보여준 사실적인 연기도 좋았다. 속물 변호사의 의식화 과정, 정의를 향한 저돌적인 변론 과정도 기억에 남을 장면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절규를 보면서 자살한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과 함께 국가 권력이 조작했던 사건 때문에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새삼 정권 유지를 위해 젊은 청년들을 희생물로 삼았던 당시 권력자들의 작태가 생생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한참 말을 잊었다. 식은 밥에 체한 것 같은 답답함.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밖에 없었던 노여움. 지나가다가 괜히 욕을 먹은 것만 같은 괘씸함. 소매치기 당한 뒤처럼 허탈함.

내 것을 빼앗기고도 하소연할 데 없었던 억울함 그리고 인간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 그리고 원망….
아주 복잡한 감정이 가슴을 휘젓는 바람에 말을 잊은 것이다.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졌다는 71년 대통령 선거의 기억. 72년 10월 유신에 동원되어 퇴근 후에는 마을로 홍보를 다녔던 기억. 권력의 언론 탄압 사례로 꼽히는 동아일보 광고사태의 기억. 무시무시한 간첩 사건이 연달아 터지던 시절의 기억. 긴급조치에 떨었던 시절의 기억.

그리고 10.26으로 끝났던 유신의 종말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어서 80년 광주학살. 교육민주화 선언과 전교조 건설 기억….

변호인은 80년대 그런 역사 속에서 살았던 나에 대한 또 다른 훈계이면서 기본적인 인권이 국가권력에 의해 동물화 되었던 시절, 그건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현실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서는 노래조차 나오지 않았다.

▲ 영화 <변호인> 장면. ⓒ변호인 누리집 갈무리

우리 역사를 보면. 국가 권력의 기본권 침탈로 인해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신 된 사건은 언제나 피해자만 남고 가해자는 숨어버렸다.

총격에 죽은 사람은 있는데 발포책임자를 찾지 못하는 사실, 죄 없는 학생들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병신 만들었음에도 가해자가 없는 사실은 그런 사례 일 것이다.

영화에도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학생들이 나온다. 그런 학생들에 대한 원천적인 책임은 국가가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맞다.

최근, 특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 인권위가 구성되면서 7, 80년대의 독재시대에 얼울하게 죽거나 다쳤던 사람들에 대한 많은 재심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또 많은 사건이 무죄가 되고 더러는 보상도 받았다고 들었다. 때문에 국가가 늦게라도 일정부분 책임을 져주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사건 조작에 가담한 경찰 경찰의 기록을 근거로 기소했던 검찰, 뻔히 무죄임을 알면서도 판결을 했던 판사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그들에게 고문의 죄, 잘못된 기소책임을 물었다는 기록은 물론 오판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권력의 개였음을 인정하고 양심 선언했다는 인간들의 이야기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시절 조작의 공으로 포상을 받고 승승장구 정치적으로 출세했다는 이야기만 심심치 않았다.

▲ 영화 <변호인> 장면. ⓒ변호인 누리집 갈무리

어떤 신문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당시 부림 사건의 판사와 검사였던 인물들이 새누리당의 현역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문 경찰, 몰염치한 정치 검사, 무능한 판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현실, 오히려 그런 인간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있는 정치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지금도 경찰과 검사 그리고 판사는 과연 법 절차에 부끄럼 없는 수사였으며 법의 정의에 비추어 어긋나지 기소였고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들의 대다수가 청년들의 고문과 엉터리 기소 그리고 재판을 당시로서는 정당한 법의 집행이었다고 우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자신의 과실은 인정하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비굴하게 변명하며 빠져 나갈 것만 같다.

나아가 그들은 청년들을 고문한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범죄를 합리화하며 그들이 종북 타령의 축인 새누리당에 빌붙어 종북몰이의 사냥개가 되어 용공, 친북 종북 좌빨 들을 확대 재생산하는 공격에 가담하고 있을 것 같다.

소름끼치는 엉터리 민주공화국이 된 오늘의 대한민국과 그들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버릴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은 나만의 추측일까?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할 국가가 [리바이어던]이 되어 한 국민을 고문하여 평생 정상적으로 살 수 없게 했다면 그런 과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국가가 책임지는 자세도 옳다. 그러면서 우리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지는 못할망정 국가 권력에 영합하여 인간을 파괴한 고문 현장, 법정에 섰던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한다.

개인에 대한 구상권이라도 행사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서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설사 미필적 고의라고 할지라도 공직에 있으면서 인간을 파괴한 행위는 범죄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물어야한다.

치료하려다가 환자를 죽인 의사에게 과실 책임을 물으면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파괴했다면 그건 먹고 살기 위한 절도와 강도죄보다 흉악한 반인권 반국가적인 범죄라고 할 것이다.

▲ 영화 <변호인> 장면. ⓒ변호인 누리집 갈무리

폭력에 의한 자백으로 인해 억울하게 몸과 마음을 다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폭력에 가담한 하수인들도 처벌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외적에 항복하고도 “어쩔 수 없었다.”거나 “힘이 곧 정의”라는 비굴하고 비겁한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던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안다면 현재 우리가 공권력을 빌어 가해자가 되었던 인간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아직도 친일하고도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던 인간들이 저지른 폭력의 상처는 우리나라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야만의 시대에 권력을 업은 자들의 폭력에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주장하지만 국민을 향한 부당한 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에 이어 폭력에 가담한 자들의 책임도 꼭 물어야한다.

설사 과실이라고 할지라도 상당한 지위에 있는 자의 과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만약 자신의 과실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건 “서울대학씩이나 나온”수재가 아니라 인식있는 과실을 저지른 정신병자로 간주하여 현재의 지위를 박탈하고 정신 병원에 수용해야한다.

적어도 그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법을 만들거나 그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전자 팔찌라도 채워야 한다. 그리고 법의 오판 법 권력의 남용, 부당한 공권력 의한 인권의 침해 그로 인한 인간성의 말살에 관한 범죄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당한 폭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우슈비츠를 찾아 빗속에서 무릎을 꿇었던 서독 수상 빌리브란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면서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선조들의 잘못을 속죄하고자 했던 그의 진정성이 오늘 독일을 살렸다고 믿는다.

2013년의 노엘, 노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모처럼 영화관에 갔다가 그 야만의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에 한숨만 몰아쉬었던 날이었다.

“빨갱이!”라는 얼굴모르는 목소리의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념의 횡포를 모른다. 한 밤중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잡혀가보지 않은 사람은 공권력이 주는 공포를 모른다.

잡혀가는 양팔을 붙잡은 경찰 하나가 중얼거리듯 “씹할, 떨고 있구만!”하며 비웃는 소리에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국가권력이 주는 치욕과 분노를 모를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가 몽둥이가 되고 법이 국민의 살갗을 파고드는 꼬챙이가 되었던 야만의 시대.
혓바닥을 비틀며 살았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변호인은 단순한 관객일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은 그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헌법 27조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를 옮긴다.

정말 다시는 권력에 의해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야만의 시대가 없기를!
간절한 소망을 담는다.

2013.12.26.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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